늑대를 막기 위한 사냥꾼을 둘 만큼 헨티에는 많은 늑대가 살았다고 합니다. 이제는 옛 얘기로 기억될 뿐이지만요.

칭기즈칸의 고향으로 알려진 몽골 동쪽의 헨티산맥 일대는 1992년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어요. 헨티지역은 넓게 펼쳐진 야생화 군락으로도 유명하지요.



이곳은 1200여 종의 다양한 식물이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헤를렝강(케룰렌강)은 1000km 넘게 흘러갑니다. 헨티 산맥은 여러 크고 작은 강들이 시작되는 수원지이기도 하지요. 강 주변은 새들에게 이상적인 서식지에요.


8월. 여름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낮아지고 산 높은 곳은 이미 단풍이 물들기 시작했지요. 날이 추워지면서 집집마다 늑대로 인한 가축의 피해가 심해지고 있어요. 늑대에게 물려죽은 동물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강가에 버린다고 합니다. 몽골인들은 직접 잡은 가축이 아니면 먹지 않거든요. 가까운 곳에 사체를 놓아두면 늑대가 또 올 수 있으므로 마을에서 4km 떨어진 강변까지 가서 송아지를 버렸대요. 촬영팀이 찾아가 보니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이미 앙상한 뼈만 남아있었지요. 

기온이 낮은곳부터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 산 정상에서 아래로 번져가는 단풍을 따라 늑대도 인가 근처로 내려옵니다. 숲속에서 다른 야생 동물을 사냥하는 것보다 유목민들이 기르는 가축을 노리는 게 훨씬 편하다는 걸 녀석들도 알고 있거든요. 해질녘부터 활동을 시작하는 늑대. 무리 생활을 하는 녀석들은 함께 울부짖으면서 영역을 확인하고 동료들의 결속을 다집니다.  방송에선 늑대 울음소리를 한동안 들려줬는데 여기에 함께 담을 수가 없네요.^^;;;; 

초원의 일과는 이른 새벽부터 시작됩니다. 젖을 짜기 전 반드시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유목민들. 자연을 숭배하는 풍습이 하나나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하면 젖을 짜기도 훨씬 수월해지거든요. 일종에 모성애를 이용한 수법이랄까요.

물이 풍부해 초지가 발달한 헨티는 다른 지역보다 소가 많습니다. 방목해 키우기 때문에 종종 늑대의 습격을 받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안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지요. 혹독한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하루 한 시가 아쉬운 계절인 이때, 사람에게도 자연에게도 가을은 턱없이 짧기만 하지요.

초원의 대표동물 타르박도 겨울 준비에 한참 바쁩니다. 긴 겨울을 버티기 위한 녀석의 전략은 동면이에요. 엄청난 양의 먹이를 먹으며 지방을 비축하지요. 겨울잠을 자지 않는 생토끼도 바쁘기는 마찬가지에요. 겨우내 먹을 수 있도록 많은 풀을 모아야 하거든요.  건초 더미는 굴에서 가까운 데에 둡니다. 눈이 쌓여도 길을 내고 풀을 먹을 수 있어야 하니까요. 문득 울릉도의 우데기 집이 생각나네요^^;;; 

죽음을 찾아다니는 새 독수리. 녀석들이 날던 곳에는 피비린내 가득하지요. 죽어간 것은 송아지였는데 녀석을 해친 것은 늑대로 보입니다. 덤불까지 5,60m를 끌고 간 뒤 배를 채우고 사라졌군요.  자기가 사냥한 먹이에 집착이 강한 늑대는 다시 나타날 것으로 예상, 촬영팀은 100m 밖에서 잠복촬영을 시도합니다. 5부에서 일지를 보니까 잠복촬영은 인내와의 싸움이더군요. 텐트 안에 혼자 들어가서 하루 온종일 기다리기도 하구요. 그 사이 문을 열 수가 없어서 안에서 모든 것을 다 해결해야 한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모든 생리 욕구를 다....(고생에 묵념을...!)

늑대는 후각과 청각이 예민합니다. 가까이 있는 것엔 청각을, 1,2km 떨어진 곳에는 후각이 민감하게 반응하지요. 걸음 한 걸음 옮길 때에도 조심스러워하는 녀석. 주변에서 들려오는 새소리에도 걸음을 멈춥니다. 늑대의 출연에 놀란 까마귀들이 경계음을 냈어요. 잔뜩 겁을 먹은게지요.  늑대에게도 매순간이 긴장의 연속이에요. 그 와중에도 제 영역표시를 잊지 않는 녀석은 배설물로 확실한 흔적을 남깁니다. 결국 먹이 근처엔 와보지 못하고 숲으로 돌아가버려요. 보통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게 아닙니다. 무리 생활을 하며 강력할 결속력을 자랑하는 게 늑대인데 이 녀석은 왜 혼자일까요?  야생동물 전문가의 얘기로는, 늑대무리는 강력한 순위제 계급사회라고 합니다. 보통 두 번째 순위가 리드를 잡기 위해 대장 늑대한테 도전을 하는데, 도전에 성공하면 다행이지만 실패하게 되면 무리에서 축출된다고 해요. 이땐 홀로 다니는데 몹시 위험해진다고 합니다. 눈치를 보면서 혼자 먹이를 구해야 하는데 송아지를 노렸던 저 늑대도 그런 케이스겠지요. 고독을 씹으며 살고 있는 늑대를 보니 좀 짠하기도 하네요.

하룻밤 사이 헨티는 눈보라 휘말리는 겨울로 뒤바뀌어 버렸습니다. 9일 간의 맹추위가 9번 계속된다는 몽골의 겨울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법! 시베리아 낙엽송들은 단풍든 잎들을 채 떨어뜨리기 전에 눈으로 뒤덮이고 말았어요.

겨울은 독수리에게도 녹록치 않은 계절입니다. 영하의 날씨 속에 눈이라도 쌓인다면 먹이 찾기가 어려워지지요. 먹잇감이 생겼을 때 최대한 배불리 먹어둬야 해요. 독수리는 번식기 이외에는 늘 무리지어 살기 때문에 다른 동료들의 움직임으로 먹이 있는 곳을 알아차리지요. 하지만 우선권은 역시 힘 있는 놈이 갖기 마련.

11월 말. 검독수리를 만나기 위해 촬영팀은 울기로 이동을 했습니다.  헨티에서 2,000km 이상. 꼬박 5일을 달려가야 하는 먼 길. 몽골의 서쪽 끄트머리 땅이에요. 워낙 먼 데다가 추위까지 더해 유목민들에게 신세를 지며 갈 수밖에 없었지요. 찻잎을 끓인 물에 우유를 넣어 만든 수테채를 건네며 잠시 들러가는 이방인들을 따듯하게 맞아주는 사람들. 유목민들에게 손님은 언제나 그립고 반가운 친구같은 존재입니다. 게르 주인은 자신이 사냥한 붉은 여우 모피를 자랑삼아 보여주기도 했어요. 울기에 가까워지면서 사람들의 옷이며 분위기, 그들을 둘러싼 풍경까지 이전과 확연히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몽골의 소수민족 카자흐족이 살고 있는 곳이거든요.  (요즘 '생 배노?몽골'이란 책을 읽고 있는데 책 속에 등장한 몽골 서쪽 끝 카자흐족이 많이 사는 쳉겔마을이 이 근처일 듯 싶네요)

2000여 km에 달하는 거대한 산줄기 알타이. 우리말로는 황금산이라고 합니다. 알타이 지방의 황량한 풍경에는 신비하고 오래된 삶의 흔적이 남아 있었어요. 어렵지 않게 발견되는 알타이의 암각화는 석기 시대부터 이곳에 인류가 살았다는 흔적을 보여주지요. 험준한 알타이 산맥 한자락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카자흐족. 몽골인들과 마찬가지로 유목 생활을 하지만 최근엔 많은 수가 정착해 살아가고 있다 합니다. 몽골인들의 게르와 달리 알록달록 장식된 집안 풍경. 몽골인들은 주로 불교를 믿는데 이들은 이슬람교를 믿고 있지요.

몽골인들의 게르와 달리 흙으로 지은 집은 언뜻 우리나라의 온돌을 떠올리게 합니다. 



여우의 앞다리 털로만 만든 겨울모자 부쉬파크마흐. 이 모자 하나 만들어지는데 11마리의 여우가 필요하다고 하네요. 사냥한 여우의 가죽은 시장에 팔거나 집에서 모자로 만들어 씁니다.

사냥을 나가는 날 아침은 식구들 모두가 분주해지지요. 

사람의 다섯 배 이상의 시력을 갖고 있는 검독수리. 맹금류의 사냥 비결은 이 눈에 있습니다. 사냥에는 암놈만 사용한다고 해요. 수컷보다 힘이 세고 훈련에도 빨리 적응하기 때문이지요. 목덜미에 금빛 털 때문에 골든 이글이라 불리는 검독수리는 맹금류 중에 가장 용맹합니다. 우리에서 꺼내올 때는 제일 먼저 눈가리개를 씌우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축들을 노리기 때문이에요. 



사냥을 시작하기 앞서 눈가리개를 벗겨주자 검독수리는 무서운 속도로 여우를 향해 날아갔다. 녀석은 단숨에 머리를 움켜쥐고 사냥감을 제압하지요. 한쪽 발톱으로 목덜미를 누르고 다른 한쪽으로 주둥이를 눌러 숨통을 조여 가는데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어요.


사냥에 성공한 뒤에는 재빨리 검독수리를 떼어내야 합니다. 가죽이 망가지면 안 되기 때문이지요. 사냥한 여우의 가족은 시장에 내다팔고 고기는 검독수리의 먹이로 써요. 사냥에 나오기 몇 주 전부터 먹이를 주지 않고 굶기는데, 사냥에 성공한 뒤 먹이를 주는 것도 계속되는 훈련의 과정이랍니다. 현지인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몽골의 카자흐족은 옛날부터 검독수리를 길들여 사냥을 하며 살아왔어요. 아이들도 한겨울에 검독수리로 여우를 잡아서 생활합니다. 우리 부족에게 가장 소중한 동물이 검독수리입니다. 몸이 아프거나 병들었을 때 검독수리와 함께 초원에 나가 여기저기 구경하다 보면 몸이 낫는 것 같아요.“

그야말로 생활의 일부분이 되어버린 검독수리에요. 몽골인들이 말을 그렇게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촬영팀이 떠날 때가 되자 집에 있는 모든 음식을 내놓고 손님을 대접하는 순박한 사람들. 이웃들까지 모두 모여 떠남을 아쉬워했습니다. 넘치도록 정이 많은 카자흐 사람들. 결국엔 집집마다 들러 대접을 받고서야 마을을 떠날 수 있었지요. 사냥꾼들은 돈버린(? 기타처럼 생겼네요.)이란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습니다. 제목은 크란부르크트. 최고의 검독수리란 뜻이에요. 카자흐족 남자들에게 검독수리란 자부심과 용맹의 상징이지요. 가사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부를 때마다 다르게 부른답니다.  그야말로 느끼는 대로 즉석 작사가 되는 거지요. 자기 검독수리가 최고의 검독수리란 내용의 가사는 모두 같지만요.

척박하고 거친 땅에서 더욱 혹독한 계절을 보내는 생명들. 자연이 그들에게 보내는 시련은 삶을 단련시키는 축복의 또 다른 모습이라고 할 수 있지요.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영역의 축복이지만, 분명 그들은 자연을 정복하기보다 순응하며 거스르지 않고 어우러져 사는 사람들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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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9-17 16: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카자흐에도 몽골인들이 살까요?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마노아 2008-09-17 17:43   좋아요 0 | URL
아마 거의 없지 않을까요? 일단 거기는 유목이 안 된다고 하던데요. 십년 전에도 이미 유목민이 거이 사라졌다고 하는 걸 보면 지금은 더 그럴 것 같구요. 유목을 포기한 몽골인이라면 가능할지도요. 샌드위치가 되어버린 카자흐 출신의 유목민들이 좀 안쓰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