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리 달이네집 낮은산 어린이 1
권정생 지음, 김동성 그림 / 낮은산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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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 사람 다리가 몇 갠지 아니?"
"두 개."
"개 다리는 몇 개?"
"네 개."
"그럼 달이 다리는?"
"세 개."
"에구, 달이는 사람도 짐승도 아닌 도깨비구나. 아니면 무시무시한 괴물이고."
"아니야, 달이는 그냥 달이야."

경상도 북쪽에 있는 어느 깊고 깊은 산골 비나리 마을. 늦게 해가 떠서 일찍 해가 지는 그런 깊은 골짜기.
달이네 집은 그 비나리 마을 한쪽 가장자리에 있다. 통나무로 지은 납작한 집에 늙수그레 아저씨와 같이 살고 있는 쪼꼬만 강아지 달이.

아저씨는 달이와 대화를 나눈다. 누구도 달이가 말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아저씨의 생각에 의하면 달이는 확실히 말을 할 줄 아는 녀석이다.

달이의 다리가 세개가 되어버린 까닭은 3년 전에 덫에 걸려 오른쪽 앞 다리를 잃었기 때문이다. 누구도 보지 못했지만 아저씨는 달이가 덫에 걸렸다고 말하는 것으로 알아들었다. 다행히도 달이는 세 개뿐인 다리로도 옛날처럼 잘 걸어다니고 잘 뛰어다녔다. 하나뿐인 아저씨의 식구로서 달이가 톡톡히 제 몫을 해내고 있다.

사람들처럼 전쟁을 벌이지도 않고 거짓말도 하지 않고 쓰레기도 버리지 않는 달이는, 그래서 때로 도사님처럼도 보이고 예수님 같기도 하다. 달이뿐 아니라 세상 모든 짐승들이 스님 같기도 하고 도사님 같을 수 있는 것.

아저씨는 5년 전까지 성당 주임 신부님이셨다. 하느님은 무서운 분이 아닌데 왜 사람들은 미사 때 조마조마해 하는지, 아저씨 신부님은 달이에게 대답해 줄 수가 없었다. 하느님도 성당 안에만 있지 말고 밖으로 나와 살면 좋겠다는 말에 아저씨 신부님은 아마 뜨끔하셨을 것이다. 점점 더 기업화하는 종교단체들을 떠올리며 달이의 질문이 쓰게 박힌다. 그런 고민들을 끌어안고 아마도 아저씨 신부님은 시골에 오셔서 농사짓고 살게 되셨나보다. 시끄러운 도심 속이 아니라 한적하고 깊은 산골 마을에서 달이와 함께 흙냄새 맡으며 살기...

함께 사는 강아지에게 '달'이라는 이름을 붙인 아저씨의 마음을 떠올려 본다. 아득히 멀지만 눈에 보이는, 돌아보면 늘 뒷편에 묵묵히 있어주는 존재. 신과 함께 가던 그 신부님도, 실은 많이 외로우셨을 것이다. 그 마음 한 켠을 채워준 사람보다 더 든든한 존재 달이.

며칠 뒤 달이는 꿈을 꾸었다. 생전 처음 보는 널따란 풀밭. 그림 작가 김동성은 아련하게 넓고 포근한 색채로 몽환적인 느낌을 배경으로 깊게 깔아준다. 아저씨가 물었다.

"달아, 사람 다리는 몇 개지?"
"두 개."
"그럼 개 다리는 몇 개?"
"네 개."
"달이 다리는?"
"네 개."

세개였던 달이 다리가 네개가 되어버린 순간. 새들도 나비들도 날아오르고 꽃들이 마구 피어오르는 그 아름다운 풍경 속을, 달이가 멀쩡해진 네 개의 다리로 달려간다. 아저씨도 그 뒤를 따라간다. 넓고도 너른 그 아름다운 곳, 그들이 달려간 그곳은 어느 세상 어떤 낙원일까.  적어도 전쟁도 욕심도, 거짓말도, 쓰레기도 없는 세상이지 않을까. 달이가 말을 한다고 해도 누구도 놀라지 않고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곳.

언제나 어린 시절 겪었던 전쟁의 그 참혹함을 새기고 사셨던 권정생 선생님. 선생님의 작품은 늘 깨달음을 주고 메시지를 주고 교훈을 주지만 아무리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한 책이라 할지라도 가슴 한켠에선 늘 잔잔한 아픔이 배어나온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선생님. 달이가 뛰노는 그런 곳에서 이 땅을 안타까이 바라보실까.

참 좋아하는 권정생 선생님과 참 좋아하는 김동성 작가의 그림이 만난 고운 책이다. '비나리', '달이'란 단어조차도 얼마나 예쁘던가.  중고샵에서 선생님 이름 보자마자 휙 잡아채어 주문했는데 역시나 탁월한 선택이었다. 초등 저학년이라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인다. 어쩐지 좀 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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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8-31 0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짠하지요~~~~~ 권정생 선생님이 읽혀지는 책, 아이들은 조금 어려워하더라고요.ㅜㅜ

마노아 2008-08-31 10:22   좋아요 0 | URL
곳곳에서 권정생 선생님 느낌이 묻어나서 짠했어요.ㅜㅜ
아이들에겐 좀 어려운가요? 조카에게 지금 선물주는 건 좀 이르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