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사마리아인들 - 장하준의 경제학 파노라마
장하준 지음, 이순희 옮김 / 부키 / 2007년 10월
구판절판


세계화 경제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일들은 부자 나라들에 의해 결정된다. 설령 부자 나라들이 의식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려 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된다. 부자 나라들은 세계 생산고의 80%를, 국제 무역의 70%를, (해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전체 외국인 직접투자의 70~90%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부자 나라들의 국가 정책이 세계 경제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부자 나라들이 가진 막강한 영향력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그 영향력을 발휘해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세계 경제의 규칙을 만들고자 하는 부자 나라들의 의도이다. -58쪽

개발도상국들의 정책 형성에 있어 보다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내가 '사악한 삼총사'라고 부르는 다자적 기구들, 즉 IMF, 세계은행, WTO이다. 이들 사악한 삼총사는 부자 나라들이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은 아니지만, 주로 부자 나라들에 의해 통제되고, 부자 나라들이 원하는 나쁜 사마리아인 같은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에 옮긴다. -58쪽

부자 나라들은 IMF와 세계은행의 전체 투표권 중 60%를 장악해 절대적인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다. 심지어 미국은 가장 중요한 18개 영역에서 사실상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이다. -62쪽

세계화와 관련해서 불가항력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세계화의 주된 추진력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주장하듯 기술이 아니라 정치, 즉 인간의 의지와 결정이다. 만일 기술이 세계화의 정도를 결정한다면 (증기선과 유선전신에 의존하던) 1870년대보다 (인터넷을 제외하고는 모든 현대화된 운송과 통신 기술을 확보하고 있던) 1970년대에 세계화가 덜 진전된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기술은 세계화의 외부적인 경계를 규정지을 뿐이다. 엄밀하게 말해 세계화가 어떤 형태를 취할 것인지의 여부는 우리가 어떤 국가 정책을 만들고, 어떤 국제 협정을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이렇게 본다면 '대안 없음'이라는 명제는 잘못된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대안은 있다. 그것도 한 가지가 아닌 다른 여러 가지 대안들이 있다. -67쪽

남북전쟁 이전의 미국 정치에서 노예 제도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분열적 요소가 아니었다. 노예 제도 철폐론자들은 일부 북부 주들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매사추세츠 주가 특히 심했다. 그러나 북부에서도 노예 제도 철폐론이 우세한 견해는 아니었다. 노예 제도에 반대하는 많은 사람들조차 흑인들이 인종적으로 열등하다고 생각해 투표권을 비롯한 완전한 시민권을 부여하는 것에는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예 제도를 당장 철폐하자는 급진론자들의 제안을 대단히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다. '위대한 해방자'인 링컨도 같은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링컨은 즉각적인 노예 해방을 촉구하는 신문 사설에 대해 "노예를 해방시키지 않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모든 노예를 해방시켜야만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 일부 노예만 해방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남겨 두고 연방을 구할 수 있다면, 역시 나는 그렇게 할 것이다."라고 썼다. -88-89쪽

당시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은 링컨이 1862년에 노예 제도를 철폐한 것은 도덕적인 확신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적인 조처였다는 데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실제로 남북전쟁을 초래한 노예제만큼이나 중요한 문제, 아니 어쩌면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무역 정책을 둘러싼 불화였다. -89쪽

독일의 경우는 항상 관세가 낮았다. 19세기와 (제1차 세계 대전 이전까지) 20세기 초에 걸쳐 독일의 평균 공업 관세율은 5~15%로, 영국과 미국의 (1860년대 이전) 평균 공업 관세율 35~50%보다 낮았다. 산업 보호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한 1920년대에도 독일의 평균 공업 관세율은 20% 근처에 머물렀다. 독일의 이런 사례를 고려할 때 파시즘과 보호 무역주의를 동일시하는 자유 무역 이론은 사실을 오도하고 있는 셈이다. -93쪽

안타깝게도 부자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들을 상대로 '사다리 걷어차기'를 하면서 자유 시장, 자유 무역 정책을 강요해 왔다는 사실 역시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이미 안정된 자리를 차지한 나라들은 자신들이 과거에 사용해 효과를 보았던 민족주의적인 정책들ㅇ르 통해 경쟁국들이 늘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부자 나라들의 클럽에 최근 합세한 나의 모국 한국도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한국은 한때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보호주의적인 나라였지만, 지금은 WTO에서 완전한 자유 무역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제조업에 대한 관세를 크게 낮출 것을 주장하고 있다. ...... 더욱 어이 없는 현실은 한국에서 자유 시장을 옹호하는 이들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과거 어느 시기에 국가 개입주의와 보호 무역주의 정책을 입안하고 실행에 옮겼던 장본인들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99쪽

다행스럽게도 역사에서는 선진국들이 반드시 나쁜 사마리아인처럼 행동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더 나아가 나쁜 사마리아인 행세를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부자 나라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을 명백하게 입증하는 사례들도 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중요 사례로는 1947년 마셜 플랜이 시작되고 나서 1980년대의 신자유주의가 부상하기 전까지의 기간을 들 수 있다.
......
실제로 투입된 금액이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마셜 플랜은 필수적인 수입 비용과 사회간접자본의 재건 비용을 조달함으로써 전쟁으로 파괴된 유럽의 경제 발전에 시동을 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마셜 플랜의 경우 미국이 과거이 적국들까지 포함된 다른 나라들의 번영이 자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것으로 본다는 신호였다는 것이다. 미국은 또한 다른 부자 나라들을 설득하여 가난한 나라들이 민족주의적 정책을 통해 경제를 발전시키려는 것을 돕거나, 아니면 최소한 허용이라도 하도록 이끌었다. -100쪽

부자 나라들의 이같은 태도 변화는 부분적으로 영국과 프랑스 같은 나라들이 가진 식민주의에 대한 죄책감에 원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원인은 세계 경제의 새로운 주도권자로 나선 미국이 가난한 나라들의 경제 개발에 대해 (계몽된)깨인 태도를 가지게 되었던 것을 꼽을 수 있다.
이런 '깨인' 전략은 눈부신 결과를 낳았다. 부자 나라들은 이른바 '자본주의의 황금기'(1950-1973)를 경험했다. ...... 엄청난 성장의 달성과 함께 소득 불평등 완화와 경제 안정도 이루어졌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이 시기 동안 개발도상국들 역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는 점이다. -101쪽

미국이 1947~1979년 사이에 가난한 나라들에게 너그럽게 굴었던 것은 소련과의 경쟁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냉전 상황 때문이라고 깎아내리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냉전이 미국의 외교 정책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땅히 치하해야 할 공적을 외면하는 것은 옳지 않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의 강국들은 극심한 경쟁을 하면서도 약소국들에게 얼마나 지독하게 굴었던가. -102쪽

내가 여섯 살 먹은 아이를 노동 시장으로 몰아넣는다면 아이는 약삭빠른 구두닦이 소년이 될 수도 있고,돈 잘 버는 행상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뇌수술 전문의나 핵물리학자가 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만일 아이가 그런 직업을 가지려면, 내가 앞으로적어도 10년 이상의 세월 동안 보호와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108쪽

나의 이런 터무니없는 주장은 개발도상국에는 급속하고 대대적인 무역 자유화가 필요하다는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의 주장과 근본적으로 논지가 일치한다. 이들은 개발도상국의 생산자들이 생존을 위해 자신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려는 동기를 가질 수 있도록 지금 당장 가능한한 경쟁에 많이 노출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호는 안이함과 나태함만 유발할 뿐이므로, 경쟁에 노출되는 것이 빠르면 빠를수록 경제 발전에 더 많은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기 부여 외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능력이다. ...... 개발도상국의 산업 역시 너무 일찍부터 국제적인 경쟁에 노출되면 살아남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선진 기술을 익히고 효율적인 조직을 만드는 등의 능력을 키워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108쪽

무역 자유화는 이 밖에도 여러 가지 문제를 낳고 있다. 가난한 나라들의 입장에서는 관세 수입의 축소로 말미암아 정부읭 ㅖ산 압박이 커지는 것도 아주 심각한 문제이다. 가난한 나라들은 세금 징수 능력이 취약한데, 관세는 개중 가장 징수하기 쉬운 세금이다. 따라서 가난한 나라들은 (관세 수입이 전체 세입의 50%를 넘는 경우도 있을 정도로) 관세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 게다가 무역 자유화로 말미암은 경제 활동의 약화와 높은 실업률 역시 소득세 세입을 감소시켰다. 그런데 이 나라들은 IMF로부터 예산 적자를 줄이라는 상당한 압력을 받고 있었던 만큼 세수 감소는 곧 극심한 지출 감축을 의미했고, 이것은 대개 교육, 의료, 사회간접자본 등의 필수적인 분야에 대한 재정 지출을 줄여 장기적인 성장에 악영향을 주었다. -112쪽

나쁜 사마리아인인 부자 나라들은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 무역을 권장하면서, 자신들이 모두 오나전한 자유 무역은 아니더라도 그에 가까운 무역을 하고 있다는 걸 강조한다. 그러나 이것은 마치 여섯 살 먹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를 보고, 성공한 어른들은 부모에게 의지하지 않으며, 또한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대면서 여섯 살 먹은 그 아이를 일터로 보내라고 충고하는 것과 같다. 성공한 어른들은 성공을 했기 때문에 자립을 한 것이지, 자립을 했기 때문에 성공을 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실제로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으로 든든한 지원을 받아온 사람들이다. ...... 요컨대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무역 자유화는 경제 발전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발전의 결과이다. -119쪽

하지만 무역이 경제 발전에 필수적이라는 논리와 자유 무역이 경제 발전에 가장 좋다(또는 무역이 자유로울수록 더 좋다)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논리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ㅇ른 반대론자들의 기를 꺾기 위해서 자유 무역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진보에 반대하는 사람이라고 암시하는 교묘한 속임수를 효과적으로 이용해 왔다. -130쪽

한국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자유 무역을 해야만 국제 무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일 유치산업을 장려하지 않고 자유 무역주의를 추구했다면 한국은 지금과 같은 중요한 무역 국가가 되지 못하고, 아직도 1960년대에 주된 수출 품목이었던 (텅스텐 원광, 생선, 해초 등의) 원료들이나 (직물, 사람의 머리털로 만든 가발 같은) 낮은 기술, 낮은 가격의 상품들을 수출하고 있을 것이다.-131쪽

핀란드 사람들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집착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의 언어는 우랄 알타이어계로 가까운 이웃인 스웨덴이나 러시아 말보다는 한국이나 일본 말에 더 가깝다. 핀란드는 또 스웨덴 식민지로 600여 년을 지냈고, 러시아 식민지로 다시 100여 년을 보냈다. 수천 년 동안 한족, 훈족, 몽고족, 만주족, 일본, 미국, 러시아 등 주변에 있는 민족들에게 시달려 온 한국인의 한 사람으로서 나는 핀란드 사람들의 이런 심정에 공감할 수 있다.
따라서 핀란드 사람들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한 1918년 이후로 외국인들을 멀리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해 온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135쪽

핀란드는 1930년대에 외국인이 20% 이상을 소유한 기업들 모두를 공식적으로 '위험한' 기업으로 분류하는 법률을 도입하기까지 했다. 결국 핀란드는 외국인 투자를 거의 받지 못했다. ......
핀란드에서 외국인 투자가 전면적으로 자유화된 것은 1993년의 일이었는데, 이것도 1995년에 유럽연합에 가입하기 위한 준비 조치의 일환이었다.
신자유주의 정통파의 견해에 따른다면, 50년이 넘도록 지속된 이런 극단적인 외국인 배척 전략은 핀란드의 경제 전망에 극심한 악영향을 미쳤어야 했다. 하지만 핀란드는 1990년대 중반 이후 세계화의 성공적인 본보기로 칭송 받고 있다. -136쪽

개발도상국들이 1980년대 및 1990년대에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강권에 못 이겨 자본 시장을 개방한 뒤로 금융 위기를 훨씬 자주 경험하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는 없다. 탁월한 경제 사학자 두명이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세계 금융의 개방화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1945~1971년 사이에 개발도상국들은 금융 위기는 단 한 번도 겪지 않았고, 통화 위기는 16번, (금융 위기와 통화 위기가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 '쌍둥이 위기'는 한 번 겪었다. 그러나 1973~1997년 사이에 개발도상권 국가들에서는 17번의 금융 위기와 57번의 통화 위기, 그리고 21번의 쌍둥이 위기가 발생했는데, 이는 1998년 이후 (브라질, 러시아, 아르헨티나 등에서) 발생한 대규모 금융 위기는 포함되지도 않은 숫자이다. -139쪽

미국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까지 외국인 투자를 가장 많이 받았던 나라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외국인 투자에 대해 다방면으로 엄격한 통제를 실시했는데, 이는 최근 중국의 경우와 비슷하다. 중국 역시 최근 몇 십 년 동안 초국적기업을 엄격하게 규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양의 외국인 직접투자가 중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외국인 투자를 규제하면 투자의 흐름이 줄어들고, 외국인 투자 규제를 완화하면 외국인 투자의 흐름이 증대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세율의 유지와) 외국인 투자에 대한 엄격한 규제에도 불구하고-부분적으로는 바로 그런 규제 덕에-19세기부터 1920년대까지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했던 경제였다. 이는 외국인 투자 규제가 경제의 성공 전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일반적인 견해의 토대를 허무는 것이다. -148쪽

외국인 투자는 경제 성장의 원인이 아니라 경제 성장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다. 명백한 진실은 규제 체계가 아무리 개방적이라 해도 해당 국가의 경제가 매력적인 시장과 높은 품질의 (노동, 사회간접자본 등의) 생산 자원을 제공하지 않으면 외국 기업들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외국 기업들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허용하는 데도 불구하고 그다지 외국인 직접투자를 끌어들이지 못하는 개발도상국들이 많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나라만이 초국적기업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156쪽

공산주의가 경제 시스템으로서 실패했다는 데에는 이의를 제기할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결론에서 국영 기업이나 공기업이 비효율적이라는 주장을 이끌어 낸다면 이는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다. 이런 견해는 1990년대 초반 영국의 마거릿 대처가 주도했던 선도적인 민영화 프로그램 이후 널리 퍼져 나갔고, 과거 공산주의권 경제들의 '체제 전환'이 이루어지던 1990년대에는 거의 종교에 가까운 신조의 지위를 얻었다. 과거에 공산주의에 속했던 세계는 한동안 전부 '민영은 좋고, 국영은 나쁘다.'는 주문에 홀린 것 같았다. 이런 국영 기업의 민영화 역시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지난 사반세기 동안 대부분의 개발도상국들에게 강요했던 신자유주의 방침의 주요 항목이었다.-164쪽

자유 시장을 공언하는 정뷰가 대규모 민간 기업에 대해 국가적인 금융 지원을 시행한 사례는 실제로도 많다. 스웨덴의 조선 산업은 1970년대 말 파산에 이르렀는데, 당시 44년 만에 처음으로 정권을 장악한 우파 정부의 국유화 조치에 의해 구제되었다. 그런데 이 우파 정부는 국가 규모 축소를 공약으로 내걸고 집권한 정부였다. 미국의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는 1980년대 초 위기에 직면했지만, 당시 신자유주의적 시장 개혁의 선봉에 섰던 로널드 레이건 공화당 정부에 의해 구제되었다. 칠레는 부실하게 계획된 금융 자유화를 때 이르게 실시했다가 1982년에 금융 위기를 맞은 뒤 전체 은행 부문을 구제하기 위해서 공적 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자유시장과 사적 소유를 방어한다는 명목으로 유혈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은 피노체트 정부에 의해서 말이다. -169쪽

거의 모든 토지가 국가 소유로 되어 있는 싱가포르에서는 정부 관련 회사들이 전화, 전력, 운송 등의 일반적인 공익 '시설' 산업뿐만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민간 부문이 소유하고 있는 반도체, 조선, 엔지니어링, 해운, 은행 등의 분야까지 운영한다. -170쪽

한국에도 (과거 포항제철이라 불렸으며 지금은 민영화된) 제철회사 포스코라는 공기업의 성공 사례가 존재한다. 한국 정부는 1960년대 말에 현대적인 제철 회사를 세우기 위해 세계은행에 융자를 신청했는데, 세계 은행은 이 사업 계획이 실행 불가능한 것이라고 판단하여 융자를 거절했다. 당시 한국의 최대 수출품은 어류와 값싼 의류, 가발, 그리고 합판이었다. 한국에는 또한 제철에 필수적인 주요 원료 철광석과 점결탄 광산조차 없었다. 그렇다고 가까운 중국에서 원료를 수입할 수도 없었는데, 이는 동서 냉전 때문이었다. 결국 한국은 제철에 필수적인 원료를 멀리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실어와야 할 형편이었다. 그런데다 한국 정부는 이 모험적인 사업을 국영 기업으로 운영하겠다고 주장했다. 실패를 위한 처방으로 이보다 더 완벽한 것이 있겠는가? 그러나 (일본의 은행에서 조달한 자금으로 설립된) 이 회사는 1973년에 조업을 시작한 지 10년도 채 안 되어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효율적인 제철회사가 되었고, 지금은 규모 면에서 세계 3위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171쪽

이렇게 성공적인 공기업들이 많은데 우리는 왜 이런 기업들에 대한 소식을 듣지 못한 걸까? 이는 언론계 혹은 학계에서 행하는 보고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언론은 전쟁, 자연재해, 전염병, 기근, 범죄, 파산 따위의 나쁜 사건들만 보도하는 경향이 있다. ...... 언론계와 학계가 국영 기업에 대해 조사를 하는 경우는 대개 (비효율성이나 부정부패, 또는 태만 같은) 좋지 못한 일과 관련되었을 때뿐이다.

그러나 국영 기업에 대한 긍정적인 정보가 적은 데에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다. 지난 20~30년 동안 신자유주의의 득세로 인해 국가 소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퍼져 나간 상황 탓에 성공한 국영 기업들 스스로가 국가와 연관되어 드러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싱가포르항공은 자사가 국가 소유라는 사실을 광고하지 않는다. (지금은 모두 민영화되었지만) 르노, 포스코, 엠브라에르 역시 자사가 국가 소유 시절에 세계 일류 기업이 되었다는 사실을 눈에 띄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소유권의 일부가 국유인 경우에는 대개 그 사실이 은폐된다. 예컨대 독일의 니더작센 주 정부가 폭스바겐의 최대 주주라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174쪽

국영 기업은 '자연 독점'이 있는 분야에도 설립될 수 있다. 자연 독점은 기술적인 조건 때문에 공급자를 하나만 두어야 시장의 요구를 가장 효율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는 상황을 이르는데, 전기, 수도, 가스, 철도, 그리고 전화 같은 것이 자연 독점의 사례라 할 수 있다. -176쪽

정부가 국영 기업을 설립하는 세 번째 이유는 국민들 사이에서 형평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민간 기업에게 맡겨 둘 경우 외진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우편, 수도, 교통 등의 중요 서비스를 이용하기 어려워진다. 예컨대 스위스에서는 외딴 산간 지역의 주소지로 편지를 보내는 비용은 제네바의 주소지로 보내는 비용보다 훨씬 높다. 이윤에만 관심이 있는 기업이 우편 업무를 맡을 경우 이렇듯 산간 지역으로 보내는 우편 요금이 올라가게 되고, 그러면 그곳 주민들은 우편 서비스 이용 횟수를 줄이거나 아예 이용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는 모든 국민들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핵심적인 서비스에 대해서는 손실을 감수하고라도 공기업을 세워 그 사업을 운영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177쪽

정부는 대개 부실한 기업, 정확히 말하면 잠재적인 구매자들로부터 거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기업을 팔려고 한다. 이 경우 정부는 민간 부문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성과를 향상시키기 위해 해당 부실 기업에 대해 막대한 투자 및 구조 개편을 선택적으로 혹은 병행해서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 소유 하에서 성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면 어째서 민영화를 하려 한단 말인가?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부의 강력한 민영화 의지 없이는 어떤 공기업의 재건이 정치적으로 불가능한 경우가 아니라면, 민영화를 하지 않도고 공기업이 가진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민영화 대상 기업은 '적절한 가격'으로 매각되어야 한다. 그것이 국민의 재산을 위탁 받은 정부의 의무이다. 국영 기업을 지나치게 싼 값에 매각하는 것은 공공의 부를 구매자에게 넘겨주는 것으로, 바로 여기서 분배라는 중요한 문제가 제기된다. 더구나 이전된 부가 나라 밖으로 빠져나갈 경우에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부의 손실이 일어난다. 구매자가 해외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경우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보다 높아진다. -181쪽

국영기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정부패 문제를 자주 들먹이곤 하는데, 얄궂게도 민영화 과정에도 역시 부정부패가 개입하는 경우가 많다. 안타깝지만 분명한 것은, 정부가 국영 기업 내의 부정부패를 통제하거나 일소할 능력이 없다면 민영화를 한다 해서 갑자기 부정부패를 막을 능력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183쪽

정부의 세금 징수 능력 혹은 규제 능력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경우에는 자연 독점 산업에 속하는 기업들이나 대규모 투자와 높은 이험도를 수반하는 산업에 속하는 기업들, 그리고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은 국영 기업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다른 조건들이 동일하다면, 국영 기업은 선진국에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자본 시장이 발전되어 있지 않고 규제와 징세 능력이 취약한 개발도상국에서 더 필요하다. -185쪽

특허 제도를 비롯한 다른 유사한 지적소유권 보호 제도의 독점으로 인한 비효율성과 '승자 독식' 구조에서 빚어지는 경쟁으로 인한 낭비는 그 제도가 가진 유일한 문제점도 아니고 가장 중요한 문제점도 아니다. 지적소유권 보호 제도의 가장 치명적인 영향은 경제 발전을 위해 선진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술 후진국으로 지식이 흘러들어 가는 것을 차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 발전의 핵심은 선진적인 외국 기술의 흡수이다. -197쪽

역사적 사실은 분명하다. 짝퉁 제조나 복제품 제조는 현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발명된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선진국들은 지식의 관점에서 볼 때 후진적이었던 시절에 하나같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특허권과 상표권, 저작권을 닥치는 대로 침해했다. -206쪽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지적인 노력들이 혼합된 발효조에서 튀어나오는 것인데, 어떤 발명품에 '마지막 손질'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영예-그리고 이익-를 독차지하는 것이 정당한 것이냐는 의문에서이다. 토머스 제퍼슨은 바로 이런 근거에서 특허에 반대했다. 그는 아이디어는 '공기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소유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소유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았고, 실제 수많은 노예를 소유하고 있었다.)-212쪽

솔직히 말해 가장 큰 문제는 새로운 지적소유권 제도가 경제 발전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부자 나라들이 전체 특허의 97%를, 그리고 저작권 및 상표권의 대다수를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적소유권 보유자들의 권리가 강화되면, 개발도상국들의 지식 획득 비용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216쪽

지식을 낮은 곳을 향해 흐르는 물에 비유한다면, 오늘날의 지적소유권 제도는 비옥한 경지가 될 가능성이 있는 땅으로 흘러드는 물을 막아 기술의 황무지로 바꾸어 놓는 댐과 같다. 이런 상황은 뜯어고쳐야 마땅하다.-2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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