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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랑별 때때롱 (양장) ㅣ 개똥이네 책방 1
권정생 지음, 정승희 그림 / 보리 / 2008년 4월
평점 :
권정생 선생님이 남겨주신 마지막 동화책이다. 랑랑별 때때롱. 발음을 할 때마다 입안에서 구슬이 또르르 굴러간다. 맑고 명랑한, 순수함이 느껴지는 단어들이다.
선생님께서는 과학의 무모하고도 오마한 발전으로 탄생시킨 복제 생명에 대한 탄식과 함께 이 작품을 쓰셨다.
지구 소년 새달이와 마달이는 어느 날 하늘 저 편에서 낯선 음성을 듣는다. 그것은 랑랑별에 싸는 때때롱과 동생 매매롱의 목소리였다. 지구 소년들과 마찬가지로 개구쟁이 랑랑별 소년들과의 낯선 만남. 모험과 우정은 그렇게 시작된다.
재밌게도, 새달이와 마달이의 부모님은 외계 행성으로부터 날아온 메시지들에 대해 의심을 하지 않는다. 정말 믿어주는 것인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믿어주는 척을 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아이들의 흥분된 목소리를 '헛소리'로 치부하시지 않는다.
아이들은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지만 일기장을 통해 서로 다른 행성에서 비슷한 삶을 사는 것을 목격하고 신기해하기도 한다. 간간히 지구별을 무참하게 더럽히고 훼손하는 인간들에 대한 자연의 경고도 아이들의 눈을 걸러 얘기해주는 것도 작가는 잊지 않는다.
집에서 기르는 흰둥이는 랑랑별 때때롱이 일러준 대로 주문을 외워 날개가 돋았고, 그 뒤를 누렁이가 또 왕잠자리와 새달이 마달이가 따라잡아 랑랑별로의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때때롱의 동생 매매롱과 그들의 부모님, 또 할머니도 만난다. 할머니는 투명 망토를 선물해 주시면서 500년 전 랑랑별로 여행을 시켜주는데, 그곳은 마치 22세기 지구의 모습이 아닐까 싶은 모습이 펼쳐진다. 모든 것이 기계화되어 있고 로봇에 의한 노동력 대체로 사람들은 할 일이란 게 없이 무미건조한 삶을 산다. 유전자를 검열하고 조작하여 최상의 아이를 생산해 내지만 부모 자식 사이의 끈끈한 정은 없다. 사람들은 놀줄도 모르고 재미도 모르고 낯선 것을 보고 놀라거나 당황하여도 우왕좌왕할 뿐, 심지어 뛰어다닐 줄도 모른다. 그 사회에서 때때롱 일행은 그저 '원시인' 취급을 받을 뿐이다.
랑랑별에선 500년 전에 그렇게 살다가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문명이 온통 파괴되는 격변을 맞은 것일까, 아님 인간 스스로 이렇게 살아선 안 된다는 자각으로 정화운동을 벌였을까. 아무튼 500년 뒤의 랑랑별은 지구의 수십 년 전 순박했던 시골 모습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때때롱의 할머니가 새달이 마달이에게 보여준 것은 결국 지구의 미래가 아니었을까. 이대로 윤리 없는 과학의 발전이 만들어갈 세상이 500년 전 랑랑별의 모습이고, 그러한 지구가 지향해야 할 세상이 또 500년 후의 랑랑별의 모습은 아닌지.
메시지는 쉽고도 분명하게 전달되고 있다. 권장 독서 나이가 초등 5학년 정도이던데,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이라면 권정생 선생님이 우려하고 불안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 아이들이 학원에 과외에 치여 이런 책 한권 읽을 수 있는 여유가 없다면 그거야말로 또 진짜 비극이지만.
그림이 독특하다. 중요한 실루엣들은 모두 검은색 그림자처럼 처리하고 그 밖의 배경을 화사한 칼라로 장식했다. 빛이 많지 않은 시골의 논두렁 풍경의 느낌이다. 반딧불이나 하늘의 별과 달 정도만 빛이 되어주는 그런 세상의 모습과 같은 인상.
랑랑별에 도착해서 그곳 아이들과 물장구 치며 노는 모습이다. 도시에서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캐리비언 베이를 가면 모를까...;;;
점점 더 하늘 쳐다보기가 힘들어진다. 무심코 걷기만 하고 음악을 들을 줄은 알아도 고개를 들어 하늘 올려다보는 것은 정말 작심하지 않고는 쉬이 떠오르지 않는 행위가 되었다. 보름달이 이지러질 무렵의 오늘 밤은, 먹구름이 걷혀 달이 뜨기만 한다면 목이 아파라 실컷 하늘을 보았으면 좋겠다. 저 멀리 어디선가 랑랑별에서 신나게 놀고 있을 때때롱과 매매롱의 모습이 보일지도 모르니까. 권정생 선생님의 흔적처럼 따뜻한 느낌의 별빛일 것이다. 우리가 함께 품어 안아야 할 그 별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