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사랑합니다 2
강풀 글 그림 / 문학세계사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사람의 삶이라는 게, 참으로 절절하다. 무수한 시간 속에 무수한 사연이, 그리고 희노애락이 녹아 있다. 나이를 먹는 것만큼, 그 나이에 비례해서, 아니 곱으로 추억이 쌓이고 그 속에 또 많은 인연과 눈물이 섞여 있다.

송씨 할머니에게 밤을 지새워 쓴 연서를 보냈건만, 글씨를 읽을 줄 모르는 할머니는 그 편지를 읽을 도리가 없다.  할머니에게 보낸 두번째 메시지는 그림 편지가 되어버렸다. 시계의 침은 여섯 시를 가리키고, 그것이 새벽이 아닌 저녁이라는 것을 표현해 주기 위해 별도 띄웠다. 약속의 장소를 그리고 두 사람의 모습도 그려넣었다. 일흔 여섯 역정 많은 노인이 꼼꼼하게 그려넣은 사랑이 담긴 편지에 콧날이 시큰거린다.

버럭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정부 보조금을 받게 해드리려고 동사무소에서 생애 처음 주민등록증이라는 것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 15만원의 보조금을 억만금처럼 고맙게 여기는 할머니, 갑자기 한맘으로 뭉쳐서 애써주는 동사무소 직원들의 따뜻한 마음씨에 독자가 감동을 받을 때, 작가는 여지 없이 코믹을 터트려주신다. 이 작품에서 코믹 담당은 버럭 할아버지와 고물상 아들, 그밖에 동네 주민들이 담당한다. 그저 잠깐 지나가는 엑스트라 같은 인물로 보이지만 그들은 알게 모르게 작품 속에서 긴밀한 연을 갖고 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 치밀한 구성과 전개에 독자는 거듭 감탄을 하게 된다.

신분증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받아보고, 글자라는 것을 처음 배우게 되었을 때, 할머니는 제 이름을 제일 먼저 써 본다. 이름을 갖는다는 것, 그것은 곧 '나'를 찾는다는 것이었다. 칠십 년이 더 넘는 시간 억제되어 있던 나를 찾아가는 길. 그 삐뚤삐뚤한 글자 위에 그녀의 삶이 녹아내린다. 아름답고 아픈 장면이었다.

버럭 할아버지의 센스있는 손녀 딸의 조언. 여자니까, 꼭 사랑하는 마음을 '말'로 표현해 주라는 당부! 버럭 할아버지는 당황하신다. 그런 말은 수년은 지나야 쓸 수 있는 거라고... 하지만, 수년이라니... 여든을 눈앞에 두고 있는 그들에게 그렇게 기다릴 시간은 없다. 있어도 알지 못한다. 지금, 바로 지금 말해야 했다. 손녀 딸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라고 하지만, 할아버지는 그건 아니라고 잘라 말하신다. 그건 이미 죽은 아내에게 허락할 수 있는 말이라고.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당신이 아주 감동깊게 보았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얘기해 주신 적이 있었다. 사형수의 아내가 어렵게 어렵게 면회를 왔는데, 짧은 면회시간 내내 아무 말도 못하다가 시간이 다 되어 돌아가야만 했을 때 딱 한마디를 터트렸다고. 그게 "당신"이었다. 그 당신이라는 말이, 사형수 남편을 마지막으로 면회한 아내의 모든 회한과 절절함을 다 담아내었노라고. 아직 십대였던 나였는데도 그 말 '당신'이 짠하게 박혀버렸었다. 그 말을, 십수년 지나 이 책에서 다시 만나버렸다. '당신'......

그래서 할아버지가 선택한 사랑의 고백, "그대를 사랑합니다."

너무도 아름다운 그 말, 그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할머니 생애 처음 받아본 생일 케이크, 생일 선물, 그리고 생일 축하 노래까지. 문방구에서 산 조잡한 장식의 어린이용 꽃장식 핀. 그 핀이 할머니에게는 잠잘 때도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 되고 만다. 아름다운 에피소드다.

군봉이 할아버지의 가족 이야기가 잠시 나왔다. 먹고 살기 빠듯하기에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살 수 없다고 분가해 버린 아들 둘, 그리고 시집 간 막내 딸 하나. 그들은 '찾아 뵈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다. 어려운 시국에, 자식들은 급한 돈이 필요할 때 부모를 찾는다. 잘 지내시고 계시느냐는 질문에는 반드시 잘 지내고 있다라는 대답만 허용할 것 같은 눈길이 따라온다. 자식 아픈 것은 더 아픈 우리의 부모님들은 그 눈길에 모범답안만 말씀해 주신다. 아, 부모란... 그리고 자식이란......

치매 걸린 군봉이 할아버지의 할머니는 병이 깊으시다. 아마 오래 버티지 못하실 것이다. 그 사람을 잃고 혼자 살수 없다고 눈물 짓는 할아버지를 보면서 그들이 함께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감히 짐작해 본다. 치매 걸려 똥오줌까지 다 받아내야만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아내의 존재에서 위로와 안식을 찾는 남편. 그것은 자식이 감히 대신할 수 없는 거리였다. 희생과 박애의 마음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그것이 그들이 함께 쌓아온 사랑과 믿음과 시간의 가치였고 그들의 삶이었다. 세상사 닳고도 닳은, 추하고 험한 가족사도 참으로 많건만, 이렇게 귀하고 선한, 소중하고 아름다운 가족애도 여전히 살아있음에 안도의 숨을 쉬어본다. 이 착하고 예쁜 사람들이 행복하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깨끗한 세상을 소망해 보면서......

앞서 순정만화와 바보는 모두 연극으로 만들어졌었는데 이 작품도 연극 무대에 올라갔는지 모르겠다. 혹여 그렇다면 이 작품도 꼭 다른 매체와 만나볼 생각이다. 영화도 마찬가지고. 여러 번 말하지만, 강풀 작가가 참으로 좋다. 참으로 고맙다. 덕분에, 조금 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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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8-16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풀만화~ 노인의 사랑을 얘기했다니 관심이 가는데요~~ ^^

마노아 2008-08-16 19:45   좋아요 0 | URL
순정만화 시즌3에 해당하는데 앞의 두 이야기 '순정만화'와 '바보'보다 훨씬 완성도 있고 감동적이에요. 아흑...대박이에요(>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