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를 사랑합니다 1 강풀 순정만화 3
강풀 글 그림 / 문학세계사 / 2007년 11월
평점 :
절판


강풀 작가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지난 밤 '타이밍'에 너무 열광한 나머지 사두고서 오래도록 보지 않던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꺼내들었다. 드물게 노인들의 사랑을 소재로 한 수작이란 얘기를 들어왔었는데, 이 따뜻한 이야기 한자락 내 마음에 담아둘 여유가 없었나 잠시 반성도 해보았다.

시작할 때 어느 분의 장례식 장면에서 호통 할아버지가 '호상'이라는 말에 버럭 성을 내신다. 아무리 나이 차서 맞닥뜨린 죽음이라도 잘 죽었다는 게 말이 되냐며...

우리는 나이 여든에 돌아가셨다고 한다면 대체로 호상이겠거니 말을 하지만, 고인과 고인의 가족에겐 그 여든이라도 맞이한 죽음이 당연할 리가 없다. 할아버지 말씀이 백번 옳다. 정말 잘 죽었다는 문자 그대로의 말이 아님을 알지만, 사람을 잃은 사람에게는 무엇이든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그게 맞는 거다.

작품이 진행된 배경은 IMF 직후인 1998년이다. 우유 배달을 하는 할아버지와 파지를 수거해서 파는 송씨 할머니, 그리고 주차장에서 근무하는 할아버지가 등장했다.  그들에게는 모두 배우자가 있었다. 우유배달 할아버지는 가부장적 남편의 전형이었던 분이었고 할머니는 그런 남편을 받들면서 살아오신 수줍은 여인이었다. 그 할머니가 위암 말기로 돌아가셨고 할아버지는 뒤늦게 후회의 눈물을 흘리셨다. 그리고 자기처럼 늙어 고물이 된 오토바이를 끌고 우유배달을 한 지 어언 5년. 그 시끄러운 시동 소리가 새벽 4시 산동네의 새벽의 깨운다. 그 소리에 맞추어 사람들은 기상을 하고 하루를 준비하며 5분만 더를 외치며 이불을 끌어당기기도 했다.

송씨 할머니는 이름이 없다. 딸로 태어난 죄로 이름없이 살아온 할머니. 시골 구석에서 서울로 도망쳐 와 보란듯이 성공하고 싶었지만 인생의 굴곡이 굽이굽이져서 눈물로 평생을 사신 분이다. 그 할머니에게 느즈막이 황혼의 꽃이 핀 것일까. 버럭 할아버지의 마음씀과 애씀이 심상치 않다.

가장 짠했던 부분은 5년 전 치매에 걸린 아내를 헌신으로 보살피는 주차장 할아버지의 이야기.  위험하기 때문에 문을 자물쇠로 채우고 출근을 하는데, 새벽 5시에서 밤 12시까지의 근무시간을 채우고 돌아오면 할머니가 버려놓은 속옷 뒷처리를 해야 하고 하루종일 혼자 있어 지루했던 할머니에게 온종일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맨정신이었을 때는 그토록 수다스러웠던 것이 때로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 반대가 되어버렸다. 그 할머니가 길을 잃어 보내고 돌아온 하루의 이야기를 할 때, 말을 못한 것이 아니라 할 얘기가 없었던 까닭이었음을 깨달으며 할아버지는 애달파 하신다. 치매 걸린 할머니를 잃어 헤매다가 찾았을 때 보여주었던 그 뜨거운 눈물에 독자도 함께 울고 말았다. 송씨 할머니는 그 모습이 차라리 부러워 같이 눈물 지으신다.

이렇게 평범한 그림 형식으로 장식 없이 심플하게 보여주는데도, 강풀 작가의 그림에선 마음을 움직이는 찐한 무언가가 있다. 곳곳에 배치된 유머러스한 장치들이 한껏 고조된 감정들을 적당히 풀어주면서 긴장감도 풀어주고, 그러면서 또 독자의 마음을 한껏 쥐고 흔드는 마이더스의 손을 가졌다.

순정만화에서 등장했던 그 편의점 총각이 이번에도 깜짝 출연한다. 여전히 볼멘소리 가득하다. 작가의 전 작품을 함께 따라오면서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재미 중 하나다.

전편을 다 읽고 리뷰를 쓸까 하다가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게 해준 것이 고마워 2권 읽기 전에 리뷰부터 남긴다. 이 책 다 보고나면 '이웃 사람' 출간까지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텐데 벌써부터 속이 좀 탄다. 그래도 즐겁게 기다리련다. 어쨌든 멋진 작가 우리 곁에 있으니 고마운 마음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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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8-16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인이라고 순정이 없는 건 아니겠죠~~ 몸만 늙었을 뿐, 마음은 그대로일 테니까요.^^

마노아 2008-08-16 19:47   좋아요 0 | URL
마음은 절대로 늙지 않는다고, 지난 주에 김혜자 언니가 말했던 게 생각나요. 마음은 언제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