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밍 2
강풀 지음 / 문학세계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오이디푸스 왕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늘 생각했었다.  그의 아버지가 신탁을 받고서 아들을 죽이려 들지 않았더라면 그들의 비극도 없었을 것이라고. 미래를 안다는 것은 그렇게 위험한 일이다. 어떻게든 그 미래를 바꾸려고 애를 쓰지만 용을 쓰면 쓸수록 더 꼬이고 결국엔 예정된 길로 가고 만다. 인간은 원래 그렇게 미약한 존재니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내려고 애쓰고 노력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시간이라는 것.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손을 써서 거스를 수 있는 영역의 것이 아니었다.

처음 예지안을 갖고 있어 십분 후를 내다보던 세윤이가 붙잡아 세웠던 남자를 기억한다. 그는 청혼을 하려고 꽃다발과 반지를 들고 연인에게 달려가던 중이었다. 마음은 이미 저만치 가고 있는데 세윤이가 위험하다고 붙잡았다. 십분 후 당신이 죽는다고. 남자는 황당해 했고 그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사고를 당해서 죽었다. 만약 세윤이가 붙잡지 않고 그대로 보내줬다면 남자는 벌써 그 길을 건너갔을 것이고 차에 치이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사건을 모두 일으킨 범인은 말했다. 너희들 덕분에 일을 이렇게 꾸민 거라고. 강민혁도 이야기한다. 우리는 만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 말이 옳다. 그게 정당한 것은 아닌데, 그들의 착한 마음씨가 나쁜 게 아닌데 결과가 그랬다. 무슨 까닭일까. 범인 역시 시간 능력자였다. 이들은 자신들만이 시간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자라고 생각한 우를 범했고 그 결과는 비참했다.

영어 선생 자기가 본 옥상 위의 그 사람들. 그들은 산자들이었을까, 망자들이었을까. 저승사자도 어찌하지 못한 그 한 많은 존재들. 이들이 다 죽어서야 모든 것이 원위치로 돌아갈까?

작품 속에서 강민혁의 집 근처에 나오는 '부실 축대' 문구가 자꾸 걸린다. 축대 무너져서 또 누가 죽는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이 시간 능력을 사용해서 덕을 보는 이들도 있었다. 타임리와인더 강민혁이 시간을 돌리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그 아이, 그리고 타임스토퍼 김영탁이 시간을 멈춰준 덕분에 남자도 아이도 살았지 않았던가.

허면, 처음부터 더 살 수 있는 사람은 살아남은 것이고, 애초에 죽을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일까. 그렇게 끊임없이 운명과 숙명의 고리를 반복하게 된다.

언제나 모든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구상하고 시작한다는 강풀 작가. 그 감각과 창의력이 기이하고도 무섭다. 이 밤중에 보자니 좀 소름 끼치는 편.

그래도 멈출 수가 없다. 보통 재밌어야 말이지... 3편을 마저 보고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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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8-08-15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좋아요. 이 데쟈뷰, 벌써 3번째랍니다. ㅡ.,ㅡ
같은 기분, 같은 대문, 같은 책, 같은 리뷰.
단지 장소만 달라졌을까? 나는 계속 같은 시간을 사나봅니다.

마노아 2008-08-15 22:31   좋아요 0 | URL
우리 사이에 시간 능력자가 있나봐요. 우리 사이의 우주에 뭔가 큰 비밀이 있는 것 같아요!

L.SHIN 2008-08-16 01:21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정말!
그 시간 능력자를 찾아서 엿 한 바가지를 주고 짤라 먹은 시간을 되찾아야겠습니다!

마노아 2008-08-16 02:30   좋아요 0 | URL
되찾아서 저한테도 풀어주세요. 저도 시간이 많이많이 필요해요^^ㅎㅎㅎ

L.SHIN 2008-08-16 15:47   좋아요 0 | URL
옛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