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 042 3
코테가와 유아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06년 5월
평점 :
절판


책은 5권 완결까지 다 읽었는데 3편에만 리뷰가 없길래 3편 책에다가 리뷰를 쓴다. ^^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아마도 2006년도였던 것 같다. 내이름은김삼순님이 리뷰를 썼었는데 인상 깊어서 담아두었던 책. 중고샵에서 책을 건졌는데 무려 3번의 주문으로 5권을 갖추게 되었다. 그 세번의 주문 동안 내가 총 얼마를 썼는가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ㅡㅡ;;)

사형제도 존폐문제에 자신의 입장을 어떻게 정할 것인가를 뚜렷하게 말하는 일은 참 힘들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중학생들 토론대회 지도를 잠깐 했었는데 그때 주제 중 하나가 사형제도 찬반 논의였다. 아이들은 모두 사형제도 찬성의 입장을 갖고 있지만 반대의 입장에서도 원고를 준비해야 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했었다. 당시 나는 사형'제도'를 반대한다고 생각했었다. 내 자신이 피해자의 가족이거나 당사자라고 생각한다면 모든 가정은 다 의미 없어지게 마련이지만, 그러한 가정을 떠나서 생각한다면 사형제도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죽음으로써 단죄할 것이 아니라 살아 더 큰 고통을 주어야 한다는 생각도 하였고, 만에 하나 만만에 하나 잘못된 판결에 의한 희생자도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되풀이 하여 생각하면 또 흔들리기 마련이다. 그만큼 어렵고 또 어려운 문제다.

일본에서도 그같은 논의가 분분할 것이다. 작가는 사형제도 없애기 위한 실험으로 7명을 죽인 사형수의 머리에 자폭 칲을 넣어두고 이 사형수가 사회에 나와서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관찰하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그가 흥분해서 살의를 느낀다거나 폭력을 휘두르려고 한다면 머리에 박혀 있는 칲이 터지고 만다. 일종의 보험. 료헤이란 이름이 있지만 죄수번호 042호로 불리는 그 사내가 처음 도착한 곳은 고등학교였다.  학교는 실험 연구지가 되는 바람에 수업료를 반액으로 인하하고 학부모들의 동의를 구하기 위한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인다. 이 만화가 가장 설득력이 없는 부분이 바로 학교에서 이 실험을 한다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나는 읽는 동안 이 실험이 성공할 수 없겠다는 상상을 했었다. 만약 실험이 성공을 해서 새로운 발견이 가능하다면, 정말로 사형수에게 자유의 기회를 다시 줄 것인가? 거기서 사회적 논의가 또 얼마나 시끄러워지겠는가. 성공을 해도, 성공을 하지 못해도 이 실험은 문제가 많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작품을 읽으면서 실험의 결과보다는 그 과정 속에서 사형수와 사람들이 맺어가는 '관계'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아마도 작가 역시 거기에 더 깊은 의미를 두었을 것이다.

9년간 독방생활을 하면서 손발이 다 묶여 있는 채로 인격체가 아닌 그저 살아있는 유기물로서 생존했던 042호는 감옥을 나와 처음으로 햇살을 마주하는 순간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학교 안에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그 호기심과 불순한 눈길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말을 걸어준 앞을 못 보는 소녀와의 만남에서 또 다시 눈물을 보였다. 그렇게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이 그에게 얼마만의 일이었을까. 어린 시절 무려 6년 동안이나 유괴를 당해서 그 사이의 행적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그였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스무살 야쿠자가 주최한 죽음의 링에서 상대 선수 일곱명을 감정 없이 죽였다. 어머니의 면회를 내내 거절하고 살아온 그의 속 이야기를 듣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가 사형수라 할지라도 진심을 갖고 대해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것을 이용해서 괜히 튀고 싶은 철없는 고등학생도 있었고, 또 자신의 손주가 희생자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서 한 사람의 자라지 못한 아이의 모습을 발견해 주는 황혼의 노인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그를 실험의 대상으로 정하고 끊임없이 관찰하며 그의 보호자 역할을 한 박사의 모습이 제일 인상적이었다. 그들이 함께 한 3년이라는 시간은 그들을 거의 가족처럼 만들었다. 늘 험한 인상만 짓던 042호는 학교 정원을 가꾸고 흙을 밟으며 꽃을 피워내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 감화된다.

뭐랄까. 소재 자체는 신선했는데,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법은 조금 덜 세련되었다고 줄곧 생각했다. 그러니까 어느 정도는 예측 가능한 전개를 보여주니까 다소 거리감을 두면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림 스타일도 조금 전형적이었고. 그런데, 자꾸 읽다 보니 어느샌가 작품에 깊이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건 '재미'의 문제가 아니라 '진심'의 문제였다.  살아서 기뻐하고 감사하게 된 이 사형수의 마음이, 그에게 최소한의 자유를 주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그를 그렇게 만들어 갔던 이 사회의 어떤 모습들에 대한 답답한 마음들이 자꾸 작품에 깊이 매료되게 만든 것이다.

결말은 조금 뜻밖이었다. 말해주면 재미가 없을 테니 그건 생략하고..;;;;

작품이 다섯 권으로 비교적 짧은 편인데, 그 와중에도 작가가 하고 싶은 일은 다 해낸 듯 보인다.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꽤 임팩트가 있을 듯하다.  용서받을 수 없는 극악무도한 죄를 지은 범죄자에게 과도한 동정심이나 감상적인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그들에게도 무수한 사연이,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것을 애써 무시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면죄부가 될 수 없을지라도.

문득, 소금꽃나무에서 김진숙씨가 감옥에서 만났던 여자 사형수 얘기가 생각난다.  가슴을 치게 만들었던 한 구절을 옮겨본다.

세상 어느 누구도 그를 사랑한 적이 없는데 누구에게 그를 죽일 권리가 있는가라는 허탈한 질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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