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야곱이 겪었던 지난 주말의 그 시간. 홈페이지에서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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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마지막 촛불 시위.
부랴부랴 나간다고 나갔는데 늦었다. 광장에 모인 수많은 시민들은 이미 행사를 마치고 촛불을 밝힌 채 삼삼오오 짝을 지어 행진을 준비 중이다.
오늘의 목표는 청와대.
국민의 목소리는 귓등으로도 안 듣는 대통령에게 그래도 대화를 시도해 보려는 모양이다.
마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와 그 친구분을 만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시청 뒤로 우회해 종로로 가는 대열에 끼어 걷는다.
가는 곳마다 전경들이 막아서고, 경찰차가 막아서고, 시위대는 길을 찾아 자꾸만 빙글빙글 돌아간다. 그래도 별로 힘들지 않다.
꽉 막혀 아예 정지해 있는 차도에서도 누구 하나 짜증을 내거나 볼멘소리를 하는 사람이 없다. 오히려 정지된 차안에서 손님들은 어디서 꺼냈는지도 모를 <쇠고기 수입 절대 반대>, <협정 무효> <이명박 OUT> 같은 붉은 피켓을 들고 시위대를 향해 나도 한마음이라고 흔들어 준다. 왠지 힘이 난다. 어떤 멋쟁이 버스기사 아저씨는 구호에 맞춰 빵빵빵빵, 클랙션을 울려 마음을 전한다.
이명박은(빵빵빵빵), 물러가라! (빵빵빵빵!)
거리에서 들었으면 시끄럽다고 한참 거슬렸을 클랙션 소리가 이때만은 듣기 좋은 음악 같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골목길로 들어섰는데 어어, 하는 사이에 일행을 잃어버린다.
그래도 뭐, 가다 보면 만나겠지 느긋하게 생각하며 무작정 걷다 보니, 이중 유모차에 쌍둥이를 나란히 태운 아주머니가 인도 턱에 힘없이 앉아 있는 게 보인다. 아기 혼자라도 힘들 텐데 쌍둥이라니.
"아이고, 힘드시겠어요. 괜찮으세요?"
나도 모르게 안쓰러워 인사를 건네자 아주머니가 살포시 웃으신다.
"그러게요. 너무 힘들어서 그냥 앉아 있네요. 그렇다고 집에서 쉬면서 안 나올 수도 없고. 차암."
그러게, 안 나올 수도 없고, 차암.
이런 아주머니까지 거리에 나오게 한 이명박은 차암, 지옥에나 가라지.
교보문고 쪽에서 길이 막혀 잠시 멍하니 서 있다.
부끄럽게도 나, 이때까지만 해도 길이 조금 뚫리면 집에 갈 생각을 하고 있었더랬다.
어찌어찌 길이 뚫려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나왔는데, 거리 가장자리는 온통 닭장차와 전경이 점거하고 시민들은 마치 우리에 갇힌 것처럼 서성이고 있다.
사람들을 따라 조금 걷다 보니 내자동인가, 효자동인가, 하여튼 경복궁 역에서 청와대 올라가는 길목에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행렬을 따라 가는데 누군가 툭 어깨를 친다. 돌아보니 어라, 한홍구 선생님이시다.
"어, 선생님. 혼자 오셨어요?"
"아니, 학생들과 함께 왔지."
으허허, 언제 봐도 사람 좋은 웃음을 크게 터뜨리며 한홍구 선생님이 말씀하신다. 그리고 마치 비밀이라는 듯, 아니, 실은 자랑스럽다는 듯 한마디하신다.
"이 길이 전에 4.19 시위를 하던 길이야."
아하. 역사는 돌고 도는가. 억누르는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오히려 백성들의 저항은 더욱더 강해지기 마련인 것을.
한홍구 선생님이 전에 강의에서 하셨던 말씀이 기억난다.
마침 그때가 대선 끝난 지 얼마 안 되어서였는데, 수강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이제 이명박이 당선됐는데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견뎌야 하느냐고. 그때 선생님 말씀이 인상 깊다.
- 박정희, 전두환 시대도 견뎠는데 까짓, 이명박 시대를 못 견디랴.
그리고 덧붙이기를, "그래도 단 하나 좋은 것은, 아마도 이명박이 맥이 끊긴 학생운동을 다시 일으켜 세울 것. 그렇게 사람들을 움직이게 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말이 정말 예언이었던 듯하다.
이번 촛불 시위에서 가장 빛나는 존재는 바로 아이들, 학생들이다. "노무현은 조중동과 싸웠고 이명박은 초중등과 싸운다"는 말처럼 이 뜨거운 촛불 시위의 주체는 아이들이다. 솜털 보송보송하고 똑같은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거침없이 거리로 나와 어른들의 부당함을 질타하고, "살고 싶다"고 외치고, 말 그대로 어이상실인 대통령과 정부에게 "미친 소, 너나 먹어!" 하고 통쾌하게 한방 날린다. 아이들의 주장은 자유롭고 정직하며, 굳고 올바르다.
그 앞에서 우리는 그저 부끄러울 뿐.
그리고 이제는 그 바통을 드디어 대학생이 이어받은 듯하다. 오늘 보니 이제껏 거의 침묵하고 있던 대학생들이 각자 학교 깃발을 높이 들고 시위에 참가하고 있다. 그래 봤자 아직은 소수라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곧 더 많은 학생들이 참가하고 뜻을 함께할 것이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우리의 어린 딸들이 꽉 막힌 길을 단숨에 돌파해 버린" 이 뜨거운 활로를 어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정권이 무능하면 할수록, 정권이 거짓말을 하면 할수록, 국민을 짓누르면 짓누를수록, 더욱 국민은 그 무겁고 쓸모 없는 정권을 속히 어깨 위에서 치워 쓰레기로 내다버리려 한다. 국민의 신뢰를 잃은 정부란, 솔직히 쓰레기와 무엇이 다르랴.
어쨌거나 4.19 때의 혁명 선배가 지금 이 길을 함께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든든하다.
움직이던 행렬이 경복궁 역에서 청와대 가는 길목에서 멈춘다. 당연한 일이지만, 길에는 길다란 닭장차 두 대가 떡 하니 길 복판을 가로막고 있고 촘촘히 무장한 전경들이 꽉 차 있다.
시민들이 그 앞에 나란히 서서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른다.
"이명박, 나와라!"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협정 무효, 고시 철회!"
"조중동은 폐간하라!"
그러다 재미있는 구호가 들린다.
"머슴아, 물러가라!"
맞다, 맞어, 머슴이다. 대통령이라는 직위가 결국은 국민이 뽑아준, 그래서 늘 국민에게 감사하고 봉사해야 하는 머슴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쥐머슴께서는 자기가 주인인 줄 착각하는 것도 모자라 남의 집에 주인 생목숨을 팔아 자기들만의 호화로운 영화를 구걸한다.
또 하나 인기 폭발이었던 구호는 이거.
"이명박, 뷰웅신."
누군가 깃발에 이 말을 써서 갖고 나왔는데, 깃발을 보고 사람들이 다 입술을 쭈욱 빼고 뷰웅~에 힘을 주어 구호를 외쳤다. 이명박, 뷰~~웅신! (한번 해 보시라, 속이 시원해진다.)
간혹 <님을 위한 행진곡>도 부르고, <아리랑>도 부르고 <애국가>도 부른다.
어디서 났는지, 커다란 태극기가 시위대 머리 위를 넘실대며 돌아다니기도 한다.
애국가와 태극기라니. 국가주의와 애국주의에 갇혀 있던, 그래서 자못 권위적으로만 느껴졌던 두 상징이 남다르게 뜨겁게 다가온다.
그런데 어라라, 닭장차 위로 무슨 대포 같은 것이 올라오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주르륵, 대포에서 물줄기가 새어 나온다. 주르륵, 주르륵, 물대포에서 몇 번 더 물줄기가 흘러나온다.
비로소 사람들이 수군거린다. 저거 살수차 아냐, 살수차. 물대포 맞지? 그렇지? 그런데 설마 저걸 우리에게 쏜다는 거야? 에이, 설마......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촤아아, 좀 전과는 비교도 안 되는 거센 물줄기가 아무 예고도 없이 다짜고짜 사람들을 향해 쏟아진다. 설마 진짜 쏘랴 방심하고 있던 시민들을 향해 마치 돼지몰이라도 하는 것처럼 거침없이 물대포를 쏘아댄 것이다. 악! 비명이 터지고 그나마 가장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괜찮았지만 가운데 있던 시민들은 완전히 펑펑 맞고 생쥐 꼴이다.
"그만해! 그만해!"
"비폭력! 비폭력!"
시민들이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는데 들은 척도 않고 쏟아지던 물줄기는 물탱크에 쟁여둔 물이 다해서야 서서히 그쳤다.
흥분한 시민들이 외친다.
"독재 타도! 독재 타도!"
맞는 말이다. 이것이 독재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 독재일까. 대화를 하자는 평화로운 시위대에 경찰로 막아서고 물폭탄을 쏘아 버리는 정부가 독재가 아니면. 국민의 생목숨을 담보로 제 뱃속만 불리면서 항거의 목소리는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 정부가 독재가 아니면.
그나저나 지금 시간이 얼마일까, 어느새 한홍구 선생님 일행하고도 헤어졌다. 그 흔한 핸드폰은커녕 시계조차 없는 원시인인 나는 시간을 가늠할 수가 없다. 하지만 혼자라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여기 이 사람들 다 함께 평화를 위해 싸우는 동지가 아니던가.
바로 앞에 예쁘장하게 생긴 여학생과 남학생이 보인다. 어린 연인인 듯싶은데 대화가 재미있다. 남학생은 자꾸 앞으로 간다 하고 여학생은 열심히 말리고 있다.
"은하야, 나 놔라. 앞에 갈란다. 시위해야지."
"누가 하지 말래. 그래도 여기서 해."
"앞이 비었잖냐. 이렇게 다 물러서면 누가 앞을 지키냐."
"그러니까 누가 하지 말래. 여기서! 하라고."
"은하야야~."
"여기서! 해!"
하하. 그렇지만 여학생이 말하는 '여기'도 그다지 안전한 곳은 아니다.
닭장차와 불과 2~30 미터 떨어진 곳에 불과하니까.
마침 뒤에 있는 사람이 하는 전화통화가 불쑥 귀에 들어온다.
"어, 아무개야. 어디 있니? ......나? 최전방에 있다."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는 어투의 그 말이 맞다. 바로 코앞에 닭장차와 전경들의 바퀴벌레 등딱지같이 반짝이는 헬맷이랑 줄줄이 다 보였으니까.
마침 잘됐다 싶어서, 최전선에 함께 있는 동지(;;)에게 핸드폰을 빌렸다. 흘낏 시간을 보니 12시가 다 되었다. 집에 전화를 해 시위가 늦어질 것 같다고, 조금 늦을 것 같다고 하자 언니가 야단치듯이 걱정한다. (우리 언니는 늘 걱정을 야단치며 한다. 시쳇말로 내 나이가 몇 갠데, 으이구. 동생으로 태어난 죄이지.)
뭐, 이때까지도 나, 2시쯤에는 집에 가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꿈도 야무졌다.)
지리한 대치 상태가 계속된다.
시민들은 "전경은 물러가고, 이명박 나와라!"를 외치는데 꿈쩍도 안 한다.
그런데 웬 아저씨 한 분이 닭장차 위로 올라간다. 무언가 말씀을 하시는데 소리가 영 안 들린다. 아, 확성기라도 하나 있었으면. 저 위험한 곳에서 대체 무슨 말을 하고 계신 걸까. 그런데 갑자기 뒤에 세워둔 닭장차 위에 올라가 일렬로 서 있던 전경들이 무슨 명령을 들었는지 확 아저씨를 덮친다. 어찌나 눈 깜짝할 사이인지 어어, 하면서 보고 있던 우리들은 악! 비명을 지르는 것도 잊고 말았다. 앞줄의 여섯 명이 그야말로 전광석화처럼 확 아저씨를 낚아챈다.
"비폭력! 비폭력! 비폭력!"
발을 동동 구르며 미친 듯이 구호를 외쳤지만 결국 아저씨는 멱살을 휘어잡는 거친 손길에 끌려 닭장차 너머로 훌떡 넘어간다. 길을 막은 닭장차 하나로 저곳과 이곳이 얼마나 다른데, 맙소사, 저 너머에서 얼마나 험한 꼴을 당하고 있는 걸까. 안타까워 마음이 조이는데 전경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척척척척, 다시 구열을 맞춰서 닭장차 위에 선다.
빌어먹을, 절로 욕이 나온다.
"폭력경찰 물러가라! 폭력경찰 물러가라!"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고 길을 막고 있는 닭장차를 마구 흔들어 보지만 이 넘의 닭장차는 꿈쩍도 안 한다.
"연행자를 석방하라! 연행자를 석방하라!"
안타까운 시민들의 외침은 벽 앞에서 지르는 비명이다. 목에서 피가 쏟아져라 외치는데 벽은 꿈쩍도 안 하고, 오히려 뒤에서 음흉하게 기습할 기회만 노린다.
"평화시위 보장하라! 평화시위 보장하라!"
그러나 평화를 바라는 한결같은 목소리에 대한 대답은 무차별 살수.
살수차에 물탱크를 얼마나 꽉꽉 채워 왔는지 이번에는 그야말로 무차별로 살수를 한다.
내가 있는 쪽으로도 갑자기 눈앞으로 하얀 물 포말이 날아든다. 나도 모르게 등을 돌리고 허리를 팍 꺾는다. 저거 위력이 사람을 날리고 갈비뼈를 부러뜨리게 한다는데 갑자기 와락 무섬증이 든다.
화르르르, 물비가 쏟아지고 머리와 어깨가 온통 펑펑 물에 젖는데 어라, 의외다. 생각보다 참을 만하다. 살짝 눈을 뜨니 바로 옆에 서 있던 청년이 허리를 꼿꼿이 한 채 나와 쭈그리고 앉은 여학생 둘을 감싸고 앞에서 물 폭탄을 막아주고 있다. 긴팔 옷을 단단히 챙겨 입은 나와는 달리 짧은 반팔에 체격도 그다지 크지 않은 마른 청년이. 생전 처음 보는 여자들을 위해서.
그만 찡해서 보는데 잠깐 멈춘다 싶던(사실은 다른 방향으로 돌았던) 호스가 다시 콰르르르 우리 쪽으로 불길 같은 물줄기를 뿜어낸다. 여전히 우리를 감싸느라 허리를 꺾지 않고 있던 청년의 몸이 고스란히 그 충격을 받고 부르르, 부르르, 전기를 맞은 듯 떨린다.
그만 와락 눈물이 돈다. 이게 뭐야, 대체 이게 뭐야. 그저 촛불을 들었을 뿐인 평화 시위에 살수차가 웬 말이며, 왜 우리를 떠받들고 지켜야 하는 대통령이 우리에게 짐승한테도 차마 못할 이런 끔찍한 일을 하는 것인데? 이게 정말 1960년대나 70년대가 아닌, 서기 2008년 대한민국 서울에서 엄연히 일어나는 현실이냐고!
거세진 살수차의 공격에 시민들의 기는 오히려 더욱 펄펄 살아난다.
"수도세가 아깝다!"
"물 뿌려도 안 간다!"
"머슴아, 나오너라. 머슴아, 나와!"
아아, 정말이지 꼴등 대통령에 일등 시민들이다. 그래, 물 뿌려도 안 간다, 머슴아.
이때쯤 되니 정말 밤을 새리라, 끝까지 함께 하리라, 저절로 이를 악물고 만다.
덜덜 떨며 물을 털고 가방에 넣어온 여벌 잠바를 꺼내는데 갑자기 재채기가 난다. 목과 코가 맵고 주위 공기조차 어딘가 싸하다. 나도 모르게 쓰윽, 얼굴을 문지르는데 지나가던 아저씨가 큰일난다는 듯 손을 내젓는다.
"아가씨, 그 손으로 함부로 눈 닦지 말아요. 큰일나요, 큰일나. 이거 물에 최루탄이 섞였어."
손이 절로 우뚝 멈춘다. 기가 막혀, 그냥 살수를 한 것만도 땅을 칠 일인데 물에 최루탄 성분을 탔다고? 대체 국민을 뭘로 보는 거야? 그저 짓밟고 누르기만 하면 되는 지렁이로라도 보는 거야? (지렁아, 미안. ㅠ.ㅠ) 스스로를 국민이 뽑아준 대통령이 아니라, 전제국가 시대 무소불위의 황제로라도 착각하는 거 아냐? 어떻게 이렇게까지 무식하고 폭력적이고 한심할 수가 있는 거지?
부글부글 분노하는 사이 뭔가 하얀 것이 허공을 휙휙 날아다닌다. 뭔가 하고 봤더니 우비다. 어느새 시민들이 우비를 사와 앞에 있는 시위대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대체 그 한밤중에 어디서 구해 왔는지 모를 대형 비닐까지 등장해서 시위대의 앞부분을 가려준다.
그때 날렵해 보이는 하얀 우비 차림의 아저씨가 물을 툭툭 털며 길가로 나선다.
뭔가 눈에 확 들어오는 카리스마가 느껴져서 바라보자니, 얼래? 진중권 선생이다. 옆에는 인터넷 생중계를 하는 기자들과 노트북이 따르고 있다. 진중권 선생이 물이 축축한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기자와 함께 뭐라고뭐라고 그 특유의 시원하고 거침없는 말투로 분노를 성토한다.
다가가 말이라도 붙여볼까 하다가 그만둔다. 우리야 그쪽을 알아도 그쪽에서야 우리는 무명이니까. 다만 옆에 있던 학생이 얼굴을 알아보고 얼른 착 핸드폰을 꺼내든다.
"우히, 진중권이다. 인증샷 찍자. 인증샷."
그러면서 멀리서 진중권 인증샷 한 번, 슬며시 다가가 자기 얼굴 들이밀고 셀카로 다시 인증샷 한 번, 그러고는 만족한 듯이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하하. 왠지 웃음이 나온다. 조금 전까지 물대포를 맞으며 용감하게 싸우던 전사(戰士)는 간 데 없고 갑자기 스무 살짜리 보송보송한 소년 같은 얼굴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 모습이 왜 그리 예뻐(;;) 보이는지.
그러고 보면 나, 시위하면서 내내 울컥했다, 웃었다, 또 울컥했다, 웃었다를 반복하고 있다.
어쩌면 이 힘든 시위를 하면서도 지치지 않는 힘은 이런 웃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시위나, 또는 혁명을 오로지 투쟁 위주로만 한다는 것은 끝까지 가기 힘들다. 그건 사람을 지치게 하고 때로는 포기하게 만든다. 그 어떤 혁명도 '현실'을 바탕으로 두지 않으면, 현실에 단단히 뿌리를 박고 있지 않으면, 그저 허망한 주장으로 그치기 쉽다. 어쩌면 이 촛불 시위가 작은 한걸음 한걸음에서 시작해 점차 거대한 불꽃으로 타오를 수 있는 것도 이 현실에 뿌리박음, 내 아이들이 건강한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고, 내 아이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하고 싶다는 소박한 현실에서 시작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내 아이들, 또는 나 자신, 또는 우리 모두. 가장 평범하지만 또한 가장 소중한 이 땅의 사람들 모두가 다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하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 또한 지극히 귀중한 바람에서 시작했기에.
아, 이런, 괜히 생각이 잡다했다. 그나저나 나중에서야 이 날 한홍구 선생님과 진중권 선생이 함께 있던 시민들과 더불어 체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그때 헤어지지 않고 한홍구 선생님과 계속 같이 있었거나, 또는 진중권 선생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면 아마 나도 함께 연행되었을지도. 아니, 그런데 왜 그것도 나쁜 경험은 아니었으리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왠지 두 분 선생님, 오히려 경찰을 쩔쩔매게 했을 듯한 느낌이니까.
새벽 3시쯤 되었을까,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진다.
둘러보니 가로등이 하나둘씩 꺼지고 있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이러나, 가슴을 조이는데 아니나 다를까, 전방에서 안내방송(?)이 나온다.
- 시위대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불법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불법을 묵과할 수 없으니 자진 해산하십시오. 불법시위를 계속할 때는 살수차에서 살수를 하겠습니다.
하이고, 이제는 아주 대놓고 살수를 하겠단다. 기가 차서 있는데 "안 들려! 안 들려!", "노래해! 노래해!" 외치던 시민들이 '불법'이라는 말에 여봐란 듯이 다시 외친다.
"불법주차, 차 빼라! 불법주차, 차 빼라!"
하하. 맞다. 불법으로 치자면 거리를 완전히 막아버린 닭장차가 먼저다.
빼라는 운율이 맘에 들었는지 새로운 구호가 연이어 나온다.
"이명박은 방 빼라! 이명박은 방 빼라!"
정말이지 구호들이 어찌나 생기발랄하고 시의적절한지.
전에, 특히 운동권 구호는 거의 살벌한 수준이었다. 피를 토하는 듯한 강렬함이 투쟁의 한 몫을 차지하는 듯한 느낌. 그러나 요즈음의 시위는 마치 축제 같다. 아니, 축제다. 즐기고, 반항하고, 자유롭게 사유한다. 그리고 그 반항과 자유 속에 오히려 더 큰 힘이 숨어 있다. 생생하게 살아 있는 대중의 느낌. 얼마나 보기 좋은가.
그나저나 가로등도 껐겠다, 경고도 했겠다, 살수차가 아주 작정을 하고 거의 용트림을 하면서 물대포를 쏘아댄다. 그래도 시민들은 꿋꿋하다. 그래서 더 안쓰럽다.
한바탕 살수비가 지나가고 대충 정리를 하는데 한 여학생의 상태가 심각하다.
꼼짝도 않고 서 있는데 저체온증이 오는지 여학생의 몸이 쉼 없이 떨린다.
고개 숙인 긴 머리가 흠씬 젖었고, 앉지도 걷지도 못하겠는지 그냥 허수아비처럼 제자리에 서 있기만 한다. 저 뒤에 가서 불을 쬐라고 하는데도 아예 움직일 수가 없는지 옆에 있는 선배로 보이는 사람이 여학생을 대신해서 "조금만 쉬고요, 조금만" 하고 대답한다. 물론 그 선배로 보이는 사람도 흠씬 젖기는 마찬가지. 그래도 후배 옆을 열심히 지키고 있다.
그때 옆에 서 있던 아저씨가 보다 못하겠는지 불쑥 자기 잠바를 벗어 내민다.
"그럼 이걸로 닦기라도 해요."
선배 쪽이 멍하니 본다. 후배는 여전히 고개도 못 들고 있다. 아저씨가 절박하게 말한다.
"갈아입으라는 거 아냐. 어떻게 내 걸 입으라고 하겠어요. 그냥 닦으라고요. 이건 안 젖었으니까 거기 머리랑 옷이랑 다. 걸레로라도 좋으니까 제발 좀 닦아요."
아, 난 왜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을까.
걸레로라도 좋다니. 아저씨에게는 소중한 잠바였을 텐데, 행여 여학생이 거절할까 봐 그런 말로 열심히 자기 옷을 내미는 저 마음이라니.
"......고맙습니다."
이내 선배 쪽이 물기 젖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잠바를 받아든다. 그리고 아저씨의 '안 젖은' 면 잠바로 열심히 후배의 젖은 머리와 젖은 어깨를 닦아 준다. 후배가 아주 조금, 간신히 고개를 끄덕여 감사 인사를 전한다.
빌어먹을, 정말 돌겠다.
대체 누가 이 선한 사람들에게 물을 쏟아붓고 최류탄을 터뜨리고 방패로 내리찍고 군홧발로 찍으며 잡아간단 말인가. 아니, 이 사람들이 어디가 폭력 시위대고, 배후 조정을 당하는 어리석은 대중이란 말인가.
맹세코 시위 현장에서 나는 그 흔한 짱돌 하나, 꽃병(화염병) 하나 본 적이 없다. 정당방위로라도 바닥에 돌 하나 깨서 던지는 사람을 못 봤다. 기껏해야 사람들 연행할 때 때리지 말라고 생수병 던지는 거 정도가 시민들이 하는 최고의 방어이다.
그리고 짱돌과 꽃병 대신 요즘의 시민들이 든 것은 그저 촛불이다. 제 몸을 태워 주위에 밝은 빛을 전해 주는 그저 작은 촛불. 그 불을 들고 조용히 걸을 뿐이다. 웃으면서, 떠들면서, 광우병 쇠고기를 어떻게든 막아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자고 간절히 바라면서. 저 끔찍한 물대포에도 아무 저항 없이 그저 우비와 비닐, 우산을 구해 몸으로 막았을 뿐이다.
오히려 흥분해서 울컥 앞서가는 사람이 있으면 "비폭력! 비폭력!" 외치며 말리고 다독인다. 전경들도 누군가의 자식이고 동생이고 오빠일 테니 이해하자고 도리어 헬맷에 꽃을 달아 주기도 한다. 대체 이런 시민들이 어떻게 폭력 시위대고 진압해야 할 폭도란 말인가. 조중동은 미쳤고 정부도 미쳤고 이명박은 더 미쳤다.
누군가가 또 닭장차에 오른다. 손에 태극기를 든 청년인데 한가운데 떡 버티고 서서 펄럭펄럭 태극기를 휘날린다. 또 다른 사람이 오른다. 구호를 적은 붉은 피켓을 들고 으쓱으쓱 흔들어 보인다. 힘내자고 하는 듯하다. 다들 한마음으로 박수를 친다. 게다가 태극기를 휘날리자 월드컵 때가 생각나는지 사람들이 웃으면서 경쾌하게 박수를 치고 구호를 외친다.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박수와 환호 소리.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하다.
그런데 갑자기 퍼억, 태극기 청년이 앞으로 밀린다. 경찰이 무자비하게 뒤에서 물대포를 쏘아댄 것이다. 무방비한 사람을 향해, 절대 직선으로 쏘아서는 안 되는 물대포를, 그것도 돌아선 등에 대고. 퍼억, 퍼억, 등으로 쏟아지는 물대포를 견디지 못하고 청년이 결국 지붕 바닥으로 미끄러진다.
"쏘지 마! 쏘지 마!"
시민들의 비명과 구호가 터지고 그러거나 말거나 바닥에 쓰러진 청년 위로 계속 물폭탄이 쏟아진다. 그 와중에도 청년은 정신이 남아 있는지 태극기를 흔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 모습에 안 되겠다 싶었는지 어! 어! 소리가 나더니 한 떼의 전경들이 그대로 와르르 덤벼와 청년을 낚아챈다. 청년은 기를 쓰고 반항하고, 보다 못해 말리러 올라간 몇몇 시민들은 도리어 구타를 당한다. 어떤 아저씨는 옷이 마구 벗겨져서 시뻘건 맨살이 드러난 채로 그대로 밀어 뜨려져 버스 밑으로 떨어진다. (나중에 구급차가 왔는데 아저씨, 모쪼록 무사하시기를.)
"사람 죽이자는 거야, 뭐야? 그만해! 그만해!"
여학생들이 악을 쓰고 시민들은 성나게 구호를 외치지만, 닿지 않는 먼 메아리일 뿐이다. 전경들은 반항하는 사람들을 진압하고는 이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멀쩡하게 선다. 그들 머리 위에서 검은 핼맷만 빤딱빤딱 빛난다.
마음이 답답하다. 아니라는 거 아는데, 저들은 깃털이고 명령대로 움직이는 허수아비일 뿐, 실제로 분노해야 할 대상은 따로 있다는 거 아는데, 그래도 눈앞에서 저런 모습을 보자니 속이 뒤집힌다.
결국 태극기 청년은 잡혀갔다.
우리는 말릴 수도, 도와줄 수도, 아니, 볼 수조차 없는 저 닭장차 너머로. 그는 아마도 물대포에 흠씬 맞아 흐물흐물해진 몸으로 또다시 군홧발과 욕설과 끝없는 폭행을 견딘 뒤에 살인 죄인처럼 연행되어 갔을 것이다.
젠장할!
애꿎은 땅을 발로 쾅쾅 차다가 문득 현기영 소설 <변방에 우짖는 새>가 떠오른다.
오래 전에 읽어서 기억이 조금 가물가물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제주 민란과 이재수의 난을 다루는 이 소설에서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부분은 민란군의 주동자를 일컫는 '장두'라는 말이었다. 가혹한 탄압과 착취에 시달려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민초들은 한목소리로 난을 일으키고, 최고 지휘자인 장두를 중심으로 관을 압박해 요구를 관철한다.
이때 장두는 물론 이 민란군의 최고 지휘관이고 대장이며 결정권자이지만, 그렇다고 어떤 권력이나 복락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민란이 끝나면 당연하다는 듯이 관군의 오라를 받고 끌려가서 목이 잘린다. 왜? 관군은 민중의 요구를 마지못해 들어줄지라도 주동자인 장두는 본보기로 꼭 처형을 했으므로. 민란이 승리로 끝나도, 그래서 민중의 요구를 모두 수락 받아도, 마치 그 대가처럼 장두는 끌려가 목이 베이고 처참하게 죽는다. 그것이 민란의 마지막. 서글픈 끝. 아마도 그것은 '제주'라는 섬이 갖는 독특한 구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어떻게 해도 육지에서 완전히 독립할 수 없는 섬이라는 한계.
그래서 누구도 함부로 장두로 나서지 못한다. 온 힘을 다해 민란을 승리로 이끌어 봤자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죽음뿐이니까. 그렇다고 장두 없이 민란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최고 수장의 죽음을 담보로 난을 일으켜야 하는 서글픈 딜레마. 그런데도 소설에서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그 장두가 나온다. 죽을 줄을 알면서도, 승리해도 결국 목이 베일 것을 알면서도, 사람들은 장두로 나서서 민초들을 이끈다. 그리고 의연하고 꿋꿋하게 칼을 받는다.
닭장차에 올라가 태극기를 휘날리고 구호 피켓을 드는 사람들, 아니, 비단 그렇게 눈에 확 뜨이게 앞에 나서지 않더라도 곳곳에서 한마음으로 응원하는 사람들, 생전 처음 보는 낯선 이를 대신해 몸이 부르르부르르 떨릴 만큼 물대포를 막아 주는 사람들......에게서 왜 나는 그 장두 이미지가 겹쳐 보이는 걸까.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있다면 오히려 가혹한 폭행과 처벌뿐이겠지. 그런데도 나서는 사람들, 나설 수밖에 없는 사람들. 강도야 물론 조금 다르겠지만 그이들이 제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들의 안녕을 지키는 장두와 무에 그리 차이가 날까.
참 장하다. 아무리 봐도 정말 장한 사람들이다. (어, 그러고 보니까 장두가 그런 뜻인가? 장한 우두머리??)
그렇게 4시쯤 되었을까, 가로등이 꺼졌어도 주위가 뿌옇게 드러나 보일 때쯤 저쪽에서 뭔가 다른 반응이 나오기 시작한다. 전경들이 "어! 어! 어! 어!"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방패로 바닥을 찍고 위협을 하더니 불법시위니 당장 해산하라는 방송도 계속 이어진다. 곧 대대적인 연행이 있을 거라는 수군거림이 여기저기서 들린다. 그리고 갑자기 누군가 소리친다.
"뛰어! 쳐들어온다!"
그리고 사람들이 무작정 돌아서서 광화문 대로를 향해 달리기 시작한다. 누가 쳐들어와? 경찰이? 사람 잡으러? 전투하듯이? 온갖 생각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두려움. 잡힐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공포. 그냥 나도 무작정 앞뒤 볼 것 없이 대로를 향해 달려간다.
그 와중에도 "천천히! 천천히!", "괜찮아! 괜찮아!" 구호가 뒤에서 울린다. 나는 차마 무서워서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달려가는데 오히려 그 뒤를 지키는 사람들이 천천히 가라고, 다치니까 천천히 가라고, 이쪽은 괜찮다고 구호를 외쳐 주는 것이다.
다시 울컥 눈물이 고인다. 아, 빌어먹을. 이 사람들, 왜 이리 멋진 게야. 우리나라 국민들, 왜 이리 멋진 거냐고!
대로로 무작정 나와서 좀 거리가 생겼다 싶자 비로소 뒤를 돌아볼 여유가 생긴다.
맙소사. 절로 입이 딱 벌어진다. 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이제껏 우리가 시위하고 있었던 청와대 가는 길을 꽉 막고 착착착착 열을 지어서 수많은 전경들이 마치 군단을 이룬 바퀴벌레들처럼 우글우글 걸어 나온다. 쾅쾅쾅쾅 방패를 찍으며. 그들의 땡글땡글한 핼맷 위로 부윰한 새벽빛이 번쩍인다. 한순간 시간이 회귀해서 엄혹했던 박정희, 전두환 시대로 돌아가는 것 같은 아찔한 소름이 돋는다. 2008년 5월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서 이런 광경을 볼 줄이야.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아, 이게 뭐야. 나는 잠시 눈을 깜빡깜빡했다.
밤새 내내 닭장차와 대치한 청와대 안쪽 길에만 있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솔직히 감을 못 잡았다. 그나마도 2, 3시가 넘으면서는 사람들이 많이 빠져서, 그래서 쟤네들이 마음놓고 진압을 하러 나온 거라고 얼핏 그런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세상에, 광화문 그 넓은 대로가 무수한 시민들로 끝이 안 보일 만큼, 아직도, 아직도 한참, 가득한 것이다. 여기저기서 추위를 견디느라 신문지를 태우기도 하고, 인도에 쭈그리고 앉아 친구와 온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냥 바닥에 앉아 옹기종기 모여 있기도 하고, 구석에서 몸을 옹송그리고 졸기도 하고...... 그런데도 그 많은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차가운 밤을 지새우며 청와대를 향하는 시위대를 지켜준 것이다. 그 밤 내내, 우리는 단 한 번도 고립된 적이 없이 올곧이 이 모든 사람들과 함께였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내내 목이 메었던 것 같다.
탱크 같은 살수차가, 1번이니 2번이니 번호까지 착착 붙은 살수차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물을 채워서 시위대를 향해 미친 듯한 물대포를 쏠 때도, 무수한 전경 행렬과 물탱크에 밀려 시위대가 점점 밀리고 흩어지고 쫓길 때도, 그 와중에도 "온수! 온수!" 외치는 귀여움에 눈물이 핑 돌 때도, 그렇게 내내 목이 메었다. 의료 자원봉사대를 지날 때면 깨지고 지친 아이들의 모습에 또 목이 메이고, "물대포를 맞아 날아간 안경을 찾았는데요, 안경알이 없어요" 울먹이는 어린 학생의 모습에 또 목이 메이고, 스스로의 직장 투쟁도 힘들었을 텐데 촛불 시위까지 나온 이랜드 노조원을 만나서 또 목이 메이고.
그리고 목이 메어 온힘을 다해 외쳤다.
"이명박은 물러가라! 이명박은 물러가라!"
그래, 제발 물러가라......
어느새 길가로 밀려난 나는 차마 다시 그 안으로 들어가 스크럼을 짜지 못했다. 다시 물대포를 맞을 용기도, 빤들빤들한 군복 차림으로 방패를 쾅쾅 쳐대는 전경들을 바로 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그저 길가를 걸으면서 내내 시위대와 함께했을 뿐이다.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살수차에게 주먹도 휘두르고, 폭행하는 전경들에게 거칠게 욕도 해대고.
나중에 듣기로, 나보다 훨씬 더 용감한 후배 하나는 그 스크럼 가장 안쪽에 있었다고 한다. 성격이 괄괄하기는 하지만 그래 봤자 겨우 스물네 살짜리 여자아이가. 스크럼을 짜고 있는데, 옆에서 함께 팔을 결고 있는 남학생이 부들부들 떨더란다. 무서워서. 그래도 끝까지 물러서지 않더란다.
"하여튼 살수차에 한번 맞으면 돌아버리게 아프니까. 돌덩이를 맞는 거 같다니까."
다음날 만난 후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낄낄거린다. 온몸이 몽둥이로 때려 맞은 듯 욱신거린다면서도. 그렇지만 그때 나는, 후배 얼굴에 물대포를 맞아 실명했다는 꽃다운 여고생도 떠오르고, 군홧발에 짓밟혀서 차 밑으로 숨어 들어간 여대생도 떠오르고, 태극기를 휘날리다 물대포를 맞고 연행된 청년도 떠오르고, 떠오르고......
시위대는 광화문 이순신 동상 있는 곳까지 밀렸다가 긴급 투입된 경찰특공대의 무자비한 진압으로 결국 해산되었다. 그때 시간이 새벽 6시 반.
행사가 전날 7시부터 시작했으니 시위가 무려 12시간 가까이 이어진 셈이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날이 샜다. 온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뻣뻣하게 늘어진다.
근처 버스 정류장 벤치에 멍하니 앉아 있자니, 광화문을 둘러싼 으리으리한 빌딩 유리창이 온통 햇빛을 받아 번쩍거린다. 그 눈부심이 칼로 찌르는 듯 가슴을 벤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 햇빛은 너무 눈부시고, 빌딩들은 너무 높다.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 길도 지나치리 만큼 평화롭다.
집안은 아직 꿈나라다. 언니와 형부, 돌이 갓 지난 조카는 아직 잠들어 있는 듯하고, 늘 일찍 깨는 다섯 살짜리 조카 혼자 홀짝홀짝 물을 마시고 있다가 들어서는 나를 반긴다.
"어, 이모! 어디 갔다 와?"
"글쎄, 어디 갔다 올까?"
힘없이 장난처럼 한마디하자 조카는 손뼉을 딱 치며 바로 대답한다.
"산! 이모, 또 산 갔다 오는 거지?"
하하. 그러게. 산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모가 늘 산만 다닐 수 있다면.
"꼬맹아, 뽀뽀. 이모 많이 힘들었거든."
뺨을 내밀자 조카가 새까맣고 맑은 눈을 또그르르 구르면서 나를 쳐다본다. 요 녀석이, 안 해 줄 생각인가? 전에는 시키지 않아도 잘 하더니 요즘은 머리가 굵었는지 통 뽀뽀를 안 해 준다. 그러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뾰로록 붕어 입을 하고 다가온다.
"응, 이모. 뽀-."
그리고 기막힌 말로 인심을 쓴다.
"사랑해, 이모. 힘들지 마. 히히."
아아, 다시 눈물이 핑 돌고 왠지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우리가 힘들어도 참 잘했구나, 하는 느낌. 우리는 옳은 일을 했구나, 하는 느낌.
적어도 이 아이들을 끝까지 지켜야겠구나, 하는 새로운 다짐까지.
어느 책에서 읽었더라, 전투에 나서는 혁명군에게 아이가 묻는다.
"삼촌, 왜 싸워? 싸우면 아저씨들 다 아프고 다치고 죽는데, 왜 싸워?"
그때 주인공은 무릎을 꿇어 아이와 눈높이를 맞춘 뒤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한다.
"너희들을 지키려고. 너희들이 사랑하는 이 꽃과 나무와 산과 들을 지키려고."
싸울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손에 비장한 칼을 잡고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때가 있다. 5월 광주가 그러했듯, 4월 제주가 그러했듯. 1960년 4월 19일이 그러했듯, 1987년 6월 10일이 그러했듯.
하지만 기쁘다, 숨이 차게 기쁜 것 하나는 우리 손에 총과 칼을 들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저 촛불 하나면 족하다는 것.
촛불 하나 밝혀들고 이웃과 친구와 동료와 함께 거리에 나서고 마음을 합하면 된다는 것. 밝고 건강한 아이들과 함께 축제처럼 시위를 즐기고, 미친 정부에게는 가운뎃손가락을 멋지게 치켜들고 "미친 소, 너나 먹어!" 야유도 하고, 평화 시위를 도저히 말도 안 되는 폭력으로 억압할 때조차 "온수! 온수!", "비폭력! 비폭력!"을 외칠 수 있는 장하고 넉넉한 여유를 잃지 않으면서, 끝까지 내내 지치지 않고 한마음이기만 하면 된다는 것.
우리는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모두 하나 되어 함께하는 마음이 어떻게 그 뜨거웠던 87년, 이 땅에 민주화의 불씨를 가져다 주었는지를.
세상 그 어떤 권력도, 민의(民意)를 이길 수는 없다.
세상 그 어떤 강한 폭력도, 사람들 마음에 피어나는 자유와 열정의 꽃을 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한다면 세상 그 무엇도 두려울 것이 없다.
촛불은, 우리들의 저항이자 희망이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 행위로는 절대 사회 변혁의 의지를 멈추게 할 수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인민의 손으로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길을 열게 될 것입니다...... (살바도르 아옌데, 죽기 직전에 한 마지막 연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