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8
아시하라 히나코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6년 4월
평점 :
절판


만약에 내가 아직 보지 못한 '하백의 신부' 뒷권과 내가 아직 보지 못한 '모래시계' 뒷권이 동시에 내 손에 들어온다면, 나는 아마도 하백의 신부를 먼저 읽을 것이다.  더 궁금한 것은 하백의 신부가 맞지만, 그러나 더 잘 쓴, 완성도 높은 작품을 고르라고 한다면 단연코 '모래시계' 쪽이다.  그러니까 이건 드라마로 치면 '온에어'와 '한성별곡'을 비교하는 것이랄까? 온에어 엔딩이 더 궁금하지만, 내 속에 오래오래 남을 명드라마는 한성별곡을 제칠 수 없다. 꼭 그런 느낌.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또 보여주는 그 무수한 메시지들과 감동에 비해 '모래시계'라는 제목은 좀 안 어울린다. 모래시계가 중요한 상징으로 등장하지만 아무래도 13년 전 '우우우우~'그 음악과 함께 최민수, 고현정을 먼저 떠올리게 하니 우리나라 독자에게 제목은 좀 미스다.

실질적으로 '완결'편이다.  번외편으로 두권이 더 있지만 내용은 완결을 맞는다.  시원하고 또 동시에 섭섭하다.

안은 확실히 엄마보다 할머니를 닮았다.  결코 떨쳐낼 수 없었던 엄마의 죽음의 그림자보다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추억, 그들에게 안길 상처가 더 크게 다가왔다.  살고 싶었고, 살아야만 했다.  그리고 그녀를 살려낸 구원은 곧 그녀로부터 구함을 받는다.

다이고와 평생 함께 해달라고 빌었던 꼬마 적의 소원. 그 소원을 털어내고 그의 순수한 행복을 빌어주는 안.  욕심과 상심과 또 집착을 버릴 때 그녀 안에 새 길이 열렸다.  진심이 담긴 그 순수한 마음이 기적을 이뤘달까.

회사 여직원들의 미팅 씬이 압권이었다. 엘리트 집단이라고 모두들 잔뜩 기대하고 나갔는데 평균 나이 45세의 머리 벗겨진 아저씨들의 폭탄!  그 다음엔 자뻑 왕자님.  그래도 스무 살의 그 미팅 때보다 안은 더 성장했고 당당해졌고 여유로워졌다.

일본 내의 많은 가정들이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아버지의 재혼으로 새엄마가 생기고 이복 동생이 생겼는데, 이들의 관계가 참 이상적이다.  언니의 친모 무덤 앞에서 쫌 미안해 하며 그래도 언니를 낳아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어린 동생이 예쁘고 사랑스럽다.

갑작스런 기상 악화로 열차가 멈추고 그 바람에 하룻밤 신세지게 된 시골 어느 가정. 그 식구들의 꾸밈없는 웃음과 순수한 도움이 참 따뜻했다.  친절을 사기로 되갚아 버리는 무서운 세상에 살면서, 그런 그림 같은 인심이 더 그리워진다.

하나의 추억과 또 하나의 추억과 또 하나의 추억을 모아모아 삶을 이뤄간다.  사랑하고 있음에도 감당할 수 없는 상대의 아픔에 헤어졌던 그들이, 이제 서로의 짐을 무거워하지도 않고 애써 함께 지고 가려고 하지도 않은 채, 있는 그대로의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인다.  누군가에 기대어 행복을 원하던 안이, 이제는 자신으로 하여금 행복을 주게 만드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그들이 이뤄낸 사랑의 결실이 너무 곱고 예뻐서, 또 그 동안의 아픔이 참으로 가여워서 한껏 눈물이 났다.  게다가 부럽기까지 했다는....;;;;

시이카도 당당히 자신의 길을 가고, 후지도 출사표(?)를 던진 셈인데, 번외편에선 후지 이야기도 좀 보고 싶다. 그나저나 일본에선 사촌끼리의 결혼이 가능한가 보다. 그러고 보니 '네가 없는 낙원'에서도 야가미의 사촌이 야가미를 좋아하긴 했다.  그녀가 수상한 게 아니라 가능한 얘기였구나....(어째 남자끼리 사랑하는 것보다 더 충격적인 느낌이다...ㆀ)

좋은 작품을 만나 행복하다. 나중에 나의 야곱에게 빌려준 뒤 감상을 물어봐야겠다. 나만큼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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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24 1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에게 '모래시계'란 그 드라마를 의미하겠죠.
우리도 삼국시대는 친족끼리 결혼했죠~ 형이 죽으면 도련님이 형수와 결혼하기도 했고...
추억을 모아 모아서 삶이 이어진다는 것 좋지요! ^^

마노아 2008-05-24 12:21   좋아요 0 | URL
드라마 모래시계의 포스가 강하긴 하죠^^ 삼국시대야 지켜야 할 골품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이야 어디 그런가요. 게다가 가까운 친족끼리 결혼하면 유전적으로 문제가 있는 아이가 생길 확률이 크다는 것을 아는 세상인데요. 아무래도 사촌은 너무 가깝다라는 생각이 들어서 놀라웠나봐요. 엘에이에서 동성 간의 결혼을 허한다는 기사를 지난 주엔가 보았는데 그쪽이 덜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아무래도 순정만화의 영향 때문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