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 깊은 이성 친구 (작은책)
장 자끄 상뻬 글 그림,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5월
품절


그녀는 겉멋만 잔뜩 든 멍청한 녀석과 팔짱을 끼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나를 보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내가 그녀를 알아보았다는 기색은 털끝만큼도 내비치지 않았다. 마침, 아주 예쁘게 생긴 여자 하나가 택시에서 내려 길 건너편의 어떤 가게로 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여보!>라고 소리치며 길을 건넜다.
그날 밤 텔레비전을 보는데, 프로그램들은 그날따라 더욱 재미가 없고, 기분은 그저 처량하기만 했다. -20쪽

우리는 서로에게 감탄하고 서로를 존경하는 사이였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우정은 더욱 높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끊임없는 선의의 경쟁이 되었다. 그가 어떤 선행을 하면, 나는 기어이 그보다 더 착한 일을 한 다음 그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직성이 풀렸다. 그 사람 역시 오기가 대단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지 며칠도 안 돼서, 그는 내가 행한 것보다 훨씬 더 착한 일을 하고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그를 따라갈 수 없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 다음날, 나는 홧김에 우리의 약속 장소에 조금 늦게 나갔고, 또 그 다음날에는 두 시간 넘게 지각을 했다. 그 다음 주에는 그를 바람맞혀 종일토록 기다리게 만들고도 나몰라라 하였다. 그 다음 달에 그는 나에게 알리지 않고 여행을 떠났다. 그에 질세라 나는 일언반구도 없이 이사를 가버렸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그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생각하니 기분이 별로 나쁘지 않았다.-62쪽

너는 기분이 좋으면 멍멍하고 짖는다. 화가 났을 때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짖지. 너는 감정의 미묘한 차이를 나타내는 데 많은 한계가 있어. 네가 표현할 수 있는 뉘앙스는 별로 많지 않아. 하지만 나는 너와 달라. 기분이 좋을 때, 나는 그 좋은 기분의 미묘한 차이를 여러가지로 표현할 수 있어. 싱긋거리거나 껄껄거릴 수도 있고, 때에 따라서는 엉엉 울 수도 있어. 화가 났을 때도 마찬가지야. 나는 허허 웃는 것까지 포함해서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내 감정을 드러낼 수 있어. 그 이치는 아주 복잡하고 대단히 혼란스러워. 예를 들면 이런 거야. 너는 착한 개야. 그리고 내가 개를 좋아한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지. 그런데도, 나는 이따금 네가 고양이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8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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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22 0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자끄 쌍뻬..^^ 나도 이 책 중고샵에서 건졌어요.

마노아 2008-05-22 09:12   좋아요 0 | URL
전 며칠 전에 얼굴 빨개지는 아이랑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를 중고샵에서 건졌어요.
요 책은 다른 서점에서 샀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