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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텐베르크의 조선 1 - 금속활자의 길
오세영 지음 / 예담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발상이 신선하다.
한글창제와 반포를 둘러싼 임금과 신하들의 대결 구도. 그 와중에 뜻밖의 실수를 저지르고 곤 80대라는 무거운 형벌을 받고 실종된 장영실. 하지만 장영실은 세종과의 모종의 계획에 의해서 자처해서 죄를 입고는 명나라에 밀입국하여 세종의 밀명을 받들고 있었던 것.
보다 강하고 정교한 금속활자를 제조하기 위한 장영실과 그의 제자 석주원의 위험천만한 실험들, 그리고 무대는 확장되어 사마르칸트로, 다시 독일로... 그리하여 서양에서 최초로 금속활자의 아버지가 된 구텐베르크와의 운명적인 만남...
소재가 신선하고 동시대에 있었던 역사적 사건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한 솜씨가 일품이다. 그같은 생각을 해낸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무대가 넓어지면서 사건의 크기도 커지고 이야기도 확대되며 등장인물도 많이 늘어난다.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건을 다루기 때문에 이야기의 결말은 이미 짐작할 수 있지만, 그 결말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스토리들이 독자의 관심과 흥미를 충분히 끌어당긴다.
주인공 석주원이 장명실이라는 거대한 스승의 그림자를 뛰어넘지 못하다가 장인으로서의 자존심과 자부심을 자각하고, 또 나름의 승부욕도 불태우면서 성장하는 모습이 흥미롭고 때때로 그가 깨닫게 되는 의미들은 폐쇄적인 시대를 살았던 그에게는 꽤나 충격적인 것들이었고, 그것을 지켜보는 것도 독자로서 재미있는 일이었다.
다만 등장인물들이 주어진 설정에 비해 뚜렷한 개성이 확연하게 드러나지 않아 조금씩 밋밋하다고 느껴지는 것이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이를테면 구텐베르크는 '열정'을 가진 인물이라고 설정되어 있지만 상인으로서의 자질 이외의 '대의'를 위한 열정은 찾기가 어려웠고, 발트포겔의 분노와 장인 정신도 조금은 약하게 느껴진다. 제일 경계가 흐린 인물이 '이레네'인데 미모의 똑똑한 여성으로 집안에 관련한 비밀이 있다라는 설정인데, 그녀의 지성을 보여주는 예가 드물고, 굳이 이 작품에서 꼭 그녀가 필요한 지는 의문이다. 석주원과의 로맨스를 위해서 부러 등장시킨 것이라면 조금 실망스러운 선택이라고 하겠다.
이역 먼 곳에서 실력을 발휘하게 된 석주원이지만, 그 과정에서 보여지는 그의 고뇌가 조금 부족하고 언어소통은 어찌했는지, 또 너무나 확연히 다른 이방인인 그가 신변의 위협 없이 이국 땅에서 그 정도로 일을 할 수 있는 것인지 당시 상황에 대해서 의문이 든다. (아무리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몇몇 2%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내용들이 있긴 했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라인으로 볼 때는 몹시 재미있고 또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뒷부분까지 어여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