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목만치 2 - 단심의 여인들
이익준 지음 / 예담 / 2007년 2월
평점 :
삼국 통일의 주역이 신라였던 것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아쉬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고구려의 그 광대한 영토를 모두 상실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사에 있어서 IF란 아무 의미가 없다. 과거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젊어 잘 나가던 때 있었노라고 큰소리 땅땅치는 노년의 모습처럼 괜시리 그리워하고 아쉬워하는 것은 그닥 모양새가 보기 좋지 않다. 삼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게 되면, 혹은 고구려나 백제의 드넓었던 영토가 언급될 때가 되면 작품 속 주인공을 통해서 보여주는 작가의 속내가, 그리고 그런 속내를 드러내게 만드는 대한민국 사람들의 정서가 불편해질 때가 있다. 이 책이 내게 그랬다.
작가는 치우천황의 이름을 등장시키며 중원 땅을 지배했었던 때를 그리워한다. 고구려의 평양은 압록강을 훌쩍 뛰어 넘어 요동 땅에 들어가 있고, 우리가 알고 있는 평양은 '하평양'이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백제는 황해를 건너 산둥반도와 요서 지역을 아우르며 '서백제'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역사란 승자의 입장에서 기록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치우천황이 중원을 호령했던 신화적인 존재였을 수 있다. 기간과 범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그가 중국인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것을 의심치 않는다. 고구려의 평양이 요동지역에 절대로 있지 말란 법 없고, 백제의 영향이 미쳤던 그곳을 서백제라 칭했을 수도 있다. 그걸 전부 아니라고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모두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 책은 소설이니까, 그런 가정쯤이야 얼마든지 용인할 수 있는 문제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내가 아쉬운 부분은 그런 것들을 말할 때의 가치관이다.
주인공 목만치는 백제 땅에서 위사령 자리에서 쫓겨나면서 변방의 성주로 내쳐지고, 그곳에서 고구려로 암행을 떠나고, 그 자리에서마저 쫓겨나자 이번엔 중국 땅으로 여정을 잡는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 지역은 모두 과거 백제의 땅이었었노라고 안타까워하고, 그 땅을 꼭 되찾고 말겠노라고 '사내 대장부'로서 다짐하고 또 재차 확인한다. 장군으로서, 또 남아로서 마땅히 그 정도 그릇은 가져야 한다고 작가는 강조하는 것처럼 들린다. '목만치'라는 인물이 불세출의 무장이었고 왜에 건너가 소아가문의 뿌리를 이루었다고 알고 있다. 5~6세기를 살았던 목만치라는 인물은 작가가 표현한 것처럼 검으로 일가를 이루고 싶었고 또 중원 땅을 제 발밑에 엎드리게 만들고픈 야심이 있었을 수 있다. 그의 포부는 그처럼 광활했는데 나라의 국운이 기울어 뜻을 펼치지 못하고 왜로 건너가 또 다른 역사의 한 획을 그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목만치 말고 작가는, 우리의 역사가 그랬었다라는 강조를 꼭 해야만 우리가 초라하지 않은 것처럼 말하는 듯 보인다. 우리가 변방의 작은 반도 안에 갇힌 폐쇄적인 역사를 살지 않았다고 말하기 위해서 화려했던 영역을 거듭하여 지적하는 듯 보인다. 우리 안에 있는 자신감과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 사회를 지탱해 나가는 힘을 말하기 위해선, 꼭 그런 것들만 필요한 것일까? 넓은 영토를 말하기 위해선 침략의 역사를 같이 말해야 하고 전쟁으로 인해 피폐해진 백성이 삶이 같이 있었는데, 그게 꼭 그리워해야만 하는 대상일까? 또 그 대단했던 땅덩어리 유지하지 못하고 이토록 작아진 영토, 그나마도 반토막 난 이 한반도는 어찌 설명하려는지 의문이다.
고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일지라도, 과포장된 민족주의적 시각 말고, 좀 더 사람의 영혼과 마음과 보다 중요한 가치관을 말해주는 그런 책을 보고 싶다. (그래서 내가 '천자의 나라'를 사랑한다!)
이 책은 역사 소설보다는 무협지에 더 가까운 설정과 전개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대뜸 이쯤에서 능욕을 당하는 여자가 나올 것 같고, 그것을 도와주는 주인공 무리가 있고, 그로 인하여 얽히는 삼각관계와 너무도 뛰어난 무용을 자랑하는 주인공의 화려한 에피소드가 나올 것 같은데 그 예상을 전혀 비켜가지 않는다. 전혀 재미가 없는 시간 죽이기용 책은 아닌데 뭐랄까... 재벌2세가 꼭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트랜디 드라마를 보는 그런 느낌이다. '전형성'으로의 탈피가 많이 아쉽다.
빼어난 군주 밑에는 그 군주를 뒷받침 해주는 훌륭한 재상이나 명장들이 있기 마련이라고, 역사를 통해서 증명해 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임금답지 못한 군주 밑에도 그에 어울리지 않게 훌륭한 신하들이 있어왔던 것도 사실이다. 선조 때의 이순신이 그랬고, 이 책의 배경처럼 개로왕 밑의 목만치가 대표적이다. 선조는 이순신을 거둘 그릇이 못 됐고 개로왕은 목만치와 함께 나라를 뻗어나가게 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개로왕 사후의 백제 역시 목만치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번 편에서는 고구려 장수왕의 남정으로 끝을 맺었고, 3편에서는 목만치가 왜에서 어떻게 역사의 한 주역으로 등장하는 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답답했던 2권의 내용보다는 훨씬 더 즐거운 독서가 되리라고 예상한다. 마땅히 그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