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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 지다 - 강요배가 그린 제주 4.3
강요배 지음, 김종민 증언 정리 / 보리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학창 시절의 역사 수업은 근현대사라는 이름으로 배우지만 현대사까지 가게 된 적은 드물었다. 일제시대 수탈의 역사는 자세히 배우지만, 해방의 기쁨과 그 뒤 찾아온 좌절과 극복의 역사는 제대로 들어본 기억이 없다. 있어봤자 다 건너 뛰고 88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쳤노라... 정도의 이야기?
대학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사 전공자인 내게도 낯선 현대사. 4학년 1학기 때 겨우 현대사를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교생 실습과 맞물려 역시나 한국 전쟁 정도에서 그치고 만 이야기. 제주 4.3 사건을 언제 처음 들어보았는지 기억이 아득하다. 교과서를 통해서 본 기억은 없다. 설령 적혀 있었다 할지라도 진도가 거기에 이르러 본 적이 없다. 누구를 통해서 들어본 기억도 없다. 내가 책을 찾아서 만나게 된 충격적인 사건. 한국전쟁을 공부할 때 보도연맹 사건에 경악한 것과 마찬가지의 집단 학살의 흔적.
그렇게 제주4.3 항쟁은, 부러 찾아 공부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전체 도민 열명 중 한 명 꼴로 죽어 나간 사건인데, 그토록 많은 피흘림을 남겼는데도 불구하고, 그 억울함을 토로할 수 없었던 서럽고 아픈 이야기. 그래서 더 쉬쉬하고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 그 제주의 이야기가 책으로 출간되었다. 98년도에 학고재에서 출간되었던 동명 책이 보리에서 재출간되면서 강요배 화백의 그림에 생존자들의 육성이 덧입혀졌다.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지만 한반도와 가장 이국적인 풍경을 갖고 있는 제주도. 고려 시대 몽골의 침략기 때부터 수탈의 역사는 시작되었지만, 그때마다 항쟁의 역사도 함께 간직하고 있는 제주도. 밭이 99%를 차지하여 땅이 척박하고 소출이 적은 까닭인지, 육지에 비해서 계급 갈등의 소지가 적은 곳이 이곳 제주도라고 한다. 때문에 혈연 공동체적 성격도 유난히 강하다 한다. 이런 사회 경제적 요인은 도민들이 쉽게 단결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1948년 4.3 사건의 발달은 한 해 전 1947년 3월 1일부터 시작되었다. 삼일절 기념 행사에서 경찰이 시민을 향해 발포했던 것. 이 사건으로 주민 6명이 죽었다. 이에 대한 항의로 3월 10일에 관민 총파업이 벌어졌는데 미 군정의 대응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는 쪽으로 몰고 갔다. 당시 경찰청장 조병옥은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이 불온하기 때문에 싹 쓸어버릴 수 있다는 내용의 연설을 하였다. 육지에서 응원 경찰이 속속 도착했고 서북청년회(서청) 단원들도 대거 투입되었다. 검거 열풍이 불어 닥쳤고, 유치장은 차고 넘쳐 더 이상 수용이 불가능할 정도가 되고 말았다. 사태는 점점 악화되고 경찰과 주민의 충돌이 일어났으며 고문, 테러, 강간, 금품 갈취가 빈번히 일어났고 그 중심에는 서청 단원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단순히 정치 깡패로 동원된 서청의 테러 탓이었을까? 그들이 제주도에서 저지른 만행은 물론 용서받을 수 없는 성질의 것이지만, 그들의 뒤에 또 누가 있었는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1948년 5월 10일로 내정된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 그 선거를 꼭 장악하겠노라 결심한 이승만. 함께 손 잡은 미 군정. 모두 다 진정한 배후이자 공범이라고 할 수 있겠다. 실제로 한 서청 단원 출신은 "이 대통령의 허락 없이 어느 누가 재판도 없이 민간인들을 마구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있겠습니까?"라고 증언한 바가 있다.
일년에 걸친 탄압은 1948년 제주도민의 4.3 항쟁으로 맞불이 붙었지만 애초에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가족이 입산했다는 것이 들키는 순간 부녀자건 노인이건 상관 없이 처형이 이루어졌고 이들에게 붙여진 연좌제는 그 후 수십 년간 이들의 발목을 붙잡으며 족쇄가 되어버렸다. 물론, 무장대가 토벌대에게 살의를 보인 예도 쉽게 눈에 띈다. 비율로 따진다면 상대가 되지 않을 테지만, 피가 피를 부르는 증오와 분노의 살풀이가 거듭 이루어졌다.
일년 여를 버티다가 무장대의 총대장 이덕구는 해산을 명령한다.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했고, 그 이상의 죽음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산하였지만 또 많은 사람들이 절벽에서 뛰어내리거나 목을 매어 자살을 하기도 했다. 마치 꽃이 시들지 않고 한꺼번에 저버리는 동백꽃처럼.
해방이 될 때, 수많은 사람들이 친일파를 처단하고 새로운 조국에서의 새 삶이 열릴 거라고 기대했을 것이다. 새롭게 들어설 정부의 주인이 되고자 제 나라 국민들을 먼저 핍박하고, 좌익과는 손을 잡을 수 없다고 등을 돌리면서 친일파를 껴안는 그런 몰상식을 넘어선 만행이 자행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전두환도 박정희도 너무 미운 상대이지만, 첫 단추를 제대로 잘못 채운 점에 있어서 이승만이 가장 밉다. (모 대안 교과서에서는 건국의 아버지라고......;;;;)
그 후 오랜 시간이 흘렀다. 진상 규명 특별법이 통과하고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듣기까지 6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지만, 어쨌든 세상은 변했고 이제는 더 이상 침묵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도착했다. (18대 국회에서 제주 4.3 특별법을 폐기할 것이란 흉흉한 소문이 들려오던데 제발 그냥 소문이길...;;;;;) 찢기고 패어진 상처는 치유가 되어야 한다. 새살이 돋을 수 있게 약도 발라주고 새 붕대로 동여매 주어야 한다. 그리고, 아팠다는 것을... 지금도 많이 아프다는 것을 함께 알아주어야 한다. 때로, '무지' 자체만으로도 죄가 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 책이, 그때 희생된 사람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역할만 할 것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 피흘림을 넘어서 화합과 상생의 길을 가기 위한 노력을 촉구하는 진한 울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모두가 함께 작업해 가야 할 공동의 목표이기도 하다. 더 이상 '몰랐었다'라는 변명은 통하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