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지랑이와 신기루는 빛의 묘기 [제 738 호/2008-03-28]
 


풀과 나무가 들과 산을 가득 채우기 시작하는 3월말,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한결이네가 동물원으로 봄나들이에 나섰다. 한결이네 가족은 동물원 입구까지 한참을 걸어야 하지만, 봄 햇살이 좋아 코끼리열차와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걷기로 했다.

한결 : 수련아, 빨리와!
수련 : 알았어, 오빠. 그런데 저기 도로위에 뭔가가 일렁이는 거 같아. 저게 뭐야?
한결 : 응, 그거. 아지랑이야. 아빠 맞죠?
아빠 : 그래.
한결 : 그런데 아빠, 왜 이 맘 때면 아지랑이를 자주 보죠?
아빠 : 글쎄, 왜 그럴까?
수련 : 뭐가 타오르는 것이랑 비슷해보이는데...
아빠 : 우리 수련이 눈썰미가 좋으네. 모닥불을 피울 때 어른거리는 것과 아지랑이는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한결 : 왜요?
아빠 : 아지랑이는 햇빛이 강하게 내릴 쬘 때 지표면 부근에서 불꽃과 같이 아른거리며 위쪽으로 올라가는 공기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빛의 굴절 현상이란다. 보통 봄날에 도로와 들판에서 쉽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완연한 봄의 전령사로 알려져 있지.
한결 : 그럼, 겨울에 난로 근처에서 뭔가가 일렁이는 것도 아지랑이예요?
아빠 : 그렇지. 아지랑이는 봄에만 볼 수 있는 건 아니거든. 여름에는 도로나 모래와 같은 지표면에서, 겨울에는 뜨거운 물체 주변에서 종종 발견할 수 있단다.

수련 : 그런데 아까 빛의 굴절이라고 아빠가 얘기했는데 그게 뭐예요?
아빠 : 아, 빛의 굴절은... 음... 작년에 수영장에 갔을 때 물 속에 들어가면 다리가 짧아보였던 기억나니?
수련, 한결 : 네!
아빠 : 우리가 공기중에서나 물 속에 있는 물체를 볼 수 있는 건 빛이 공기나 물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통과하지 못하면 볼 수 없지. 그런데 빛이 공기나 물을 통과할 때 그냥 지나가는 게 아니고, 약간의 변화가 생긴단다. 통과하는 물질의 밀도에 따라서 빛이 꺾이는 정도, 즉 굴절각이 다르거든. 물은 밀도가 높아서 많이 꺾이고, 공기는 상대적으로 밀도가 낮아서 적게 꺾이지. 그러니 물 속에 들어가면 공기에서보다 빛이 많이 꺾여(굴절) 짧아보이는 거란다.
한결 : 아하, 그런 원리군요.
수련 : 그럼 물이 든 컵에 수저나 젓가락을 넣었을 때 휘어져 보이는 것도 이거랑 같은 거예요?
아빠 : 그렇지.
수련 : 얼마전에 프리즘을 봤는데 이것도 빛의 굴절을 이용한 거예요?
아빠 : 응. 프리즘은 빛의 색, 즉 파장에 따라 굴절률이 다른 특징을 이용한 거란다. 그래서 햇빛을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다양한 색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는 거지.
한결 : 그런데, 아빠. 아지랑이는 같은 공기 중이니까 굴절이 일어나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니예요?
아빠 : 아빠가 얘기를 덜 했나 보구나. 아스팔트는 빨리 뜨거워지기 때문에 아스팔트 부근의 공기도 빨리 뜨거워져 가벼워진단다. 이때 가벼워진 공기덩어리는 위로 올라가고, 약간 차가우면서 무거운 공기덩어리랑 만나게 되지. 빛이 이들 사이를 지나다가 경계면을 만나면 휘게 된단다. 보통 공기 밀도는 일정해서 앞에 보이는 것이 뚜렷하지만 아스팔트 위와 같이 갑작스런 온도 차이가 생기면 공기 밀도 차이가 발생해 빛이 휘어 일렁이는 현상인 아지랑이가 나타나는 거란다.

한결 : 아빠, 아지랑이와 프리즘 말고, 빛의 굴절로 나타나는 거 뭐가 더 있어요?
아빠 : 너희들, 신밧드의 모험이라는 만화에서 신기루 나온거 기억나니?
수련, 한결 : 네!
아빠 : 신기루도 빛의 굴절에 의해 일어나는데 가짜를 진짜처럼 보는 착시현상이 강하게 나타나는 예란다. 사막의 신기루는 지표면 가까이에 뜨거운 공기층에 의해 빛이 굴절되면서 파란 하늘의 일부분이 지표면에 떠 있는 것처럼 파랗게 나타나 호수의 물처럼 보이는 거란다.
수련 : 그래도 어떻게 파란 하늘을 호수로 봐요?
아빠 : 나도 직접 보진 못했지만 빛의 묘기에 빠지면 그렇게 볼 수밖에 없단다. 신기루에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를 말해주마. 이집트에 원정 온 나폴레옹의 군인들은 머리 위에 산이 떠있고, 분명히 보이던 호수가 사라지는 현상을 경험했단다. 그들은 이것을 종교적인 관점에서 최후의 심판의 전조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기도했단다. 그런데 이때 단 한 사람, 프랑스의 물리학자 몽즈는 이 현상을 냉정하게 관찰하고는 사막 표면에서 발생하는 뜨거운 공기층에 의해 발생하는 이상 현상이라는 것을 최초로 밝혀냈단다.
수련 : 몽즈라는 분, 굉장하네요.
한결 : 그럼 땅에 있는 게 거꾸로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나타날 수도 있나요?
아빠 : 그렇지. 지표면 부근의 공기가 차갑고 위의 공기가 따뜻하면 먼 곳에 있는 물체가 공중에 떠있거나 거꾸로 뒤집어진 채로 보인단다. 이런 현상은 바다에서 자주 나타나 바다의 신기루로도 불리는데, 바다 표면 바로 위 공기밀도가 조금 더 높은 곳의 공기 밀도보다 높아 빙산이나 배가 거꾸로 보이는 현상을 만들어낸단다.
수련 : 아빠, 어제 인터넷에서 러시아에 3개의 태양이 떴다는 사진을 봤어요. 이것도 같은 거예요?
아빠 : 응. 네가 말한 러시아의 3개 태양도 빛 굴절에 따른 착시현상이란다. 러시아와 같은 추운 지역의 공기에는 얼음알갱이가 있단다. 이 알갱이들이 햇빛을 약 22도 정도 굴절시키기 때문에 해 주변에 또다른 해가 있는 것처럼 착시 현상이 일어나는 거지. 해가 왼쪽과 오른쪽 중 한쪽에만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고, 위쪽에도 있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단다.
한결 : 빛은 참 재미있는 녀석 같아요.
아빠 : 우리 한결이가 빛의 재미에 푹 빠진 것 같네.

수련, 한결 : 아빠, 동물원 입구예요.
아빠 : 그래, 이제 동물들의 재롱을 맘껏 즐겨보자꾸나.

(글 : 박응서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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