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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황옥 루트, 인도에서 가야까지 - 고고학자 김병모의 역사 추적 시리즈
김병모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이전에도 김수로 왕비 허황옥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책에서도 가끔 보곤 했지만 그녀의 출신에 대해서 딱부러지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인도의 유사한 지명과 중국 지명을 같이 얘기했지만 그 시절 그녀의 이동 수단에 대해서 자신있게 말하지 못해왔던 것이다. 그래서 나 역시 거의 신화 시절의 이야기이기에 어느 정도 가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진실'성에 큰 점수를 부여하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역사적 진실과 사실성에 이만큼이나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는 점에서 크게 놀랐다.
저자는 자신의 검은 얼굴에 대한 의문점에서 이 길고 긴 여정의 시작을 울렸다. 김해 김씨와 김해 허씨의 시조 김수로왕과 허황옥 왕비. 허왕비는 아유타국에서 왔으며 보주태후라고 불렸다. 배를 타고 온 그녀가 왔다는 아유타국은 인도의 아요디아를 뜻하는 것이었다. 허면 2천년 전에 배를 타고 인도에서 우리나라 가야까지 갔다는 말인가. 저자는 그 이동 경로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갖지만 인도까지 찾아가서 아요디아를 직접 밟아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마리의 물고기가 서로 마주보고 있는 상징 표시를 곳곳에서 발견한다. 이 쌍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왜 동시에 발견되는 지를 추적하는 것이 이때부터 저자의 평생 숙제가 되고 만다.
인도에서 이렇다 할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한 저자는 허왕비가 '보주'태후라고 불렸다는 것에 집중한다. 보주라는 중국 지명을 찾아내고, 동시대에 있었던 반란 사건과 허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개입됐다는 점을 알아냈을 때 저자는 만세를 외친다.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저자의 퍼즐들은 하나씩 하나씩 그 정체를 드러내며 그림을 완성시켜 나간다. 쌍어 상징은 아시리아에서 스키타이에게로, 다시 인도 간다라 지방에서 아요디아로, 그리고 중국 운남성에서 보주, 무창을 거쳐 한국의 가야로, 그리고 일본의 구마모토까지 전해지며 그 흔적을 남겼다. 곳에 따라서는 현재까지도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남아있는 쌍어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는 그들의 신앙이었고 신념이었다. 신어로 추앙된 물고기 그림은 자신들을 보호해 주는 절대적 존재였으며 인류평화의 상징이었다.
또 왜국의 히미코 여왕이 어쩌면 가야의 허왕비의 딸이 아닐까 하는 가정도 매우 설득력 있게 들렸는데, 가야와 일본에서 전해지는 역사적 정황들이 기막히게 맞아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진심으로 갈망하면 온 우주가 자신을 도와준다고 했던가. 저자의 열망과 노력, 숙원 등은 세계 곳곳에서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또 운명처럼 도움의 손길이 되어 저자의 연구를 돕게 된다. 캐나다의 타밀학회의 회원이 보내준 이메일은 경이로운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스리랑카의 타밀 명칭이 한일 명칭과 너무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이를 저자는 가야인들이 한반도를 인도로, 일본 섬을 스리랑카 섬으로 감정이입시키는 대위법을 적용한 까닭이라고 보았다. 역시 설득되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는 북방 기마 민족과의 연계성은 반가워하지만 남아시아 쪽에서 전파된 문화라는 말을 쓰면 어쩐지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다. 이는 왜곡된 순혈주의 신봉 현상으로서 우리 모두가 지양해야 할 부분이다. 이는 우리의 객관적인 사고와 과학적인 실험과 탐구에 대한 도전을 방해하는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 사고로부터 자유로웠고, 또 호기심에서 시작했지만 그 호기심을 무시하지 않고 끊임없이 탐구하여 이토록 큰 결과물을 내놓은 저자에게 박수의 갈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