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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
서경식 지음, 박광현 옮김 / 창비 / 2006년 12월
평점 :
재일 조선인 서경석씨가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쁘리모 레비의 자취를 추적하며 쓴 기행 에세이이다.
쁘리모 레비는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줄곧 살았으며, 그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자각도 그리 하지 못하고 살았다. 그런 그가 전쟁 막바지였던 1944년 빨치산 조직에 가담하여 투쟁하다가 잡히고 아우슈비츠에서 강제 노역에 시달리다가 이듬해 겨우 풀려나게 된다. 그가 아우슈비츠에서 버틴 시간은 1년 남짓된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은 한 사람의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온전히 박탈 당하기에 부족하지 않았다.
레비는 아우슈비츠의 생존자로서 그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화학자로 살았지만 증언문학가로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고, 전쟁으로 도배되었던 그 험한 시기를 겪고 난 뒤의 사람들이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을 끊임 없이 던져주었다. 그러나, 살아남았다는 사실 자체가 곧 그에게 축복이 될 수는 없었다. 어떻게 인간이 인간에게 그리 잔인할 수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그는 같은 '종'으로서 수치심을 느꼈다.
고통스러웠던 기억과 모멸과 수치심,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우울증까지. 그 모든 상황들은 그를 끝내 '자살'로 몰아갔다. 그의 자살 원인을 딱부러지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그가 자살로서 선언한 '침묵'에 대해서 남겨진 자들은 존중할 필요가 있다.
저자 서경식씨는 재일조선인으로서 일본어를 모어로 알고 성장했지만 일본 사회에서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다. 또한 나찌 독일과 마찬가지로 전범 국가인 일본을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는 기묘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더군다나 그의 두 형은 박정희 유신 정권 때에 19년, 17년 형을 살면서 모진 고문을 받고 단식 투쟁까지 했던, 그야말로 죽음을 늘 곁에 두었던 자들이었다. 이런 태생적 환경과 가족 기반은 그에게서 쁘리모 레비의 삶을 더욱 애처롭게 바라보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흔히 독일은 침략전쟁에 대해서 제대로 사죄를 했다고 알고 있지만, 그 독일조차도 60년대까지는 뻔뻔한 편이었음을, 70년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이후에서야 달라졌음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에 비하면 아직도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뻔뻔하게 구는 일본의 모습에는 갑갑함을 넘어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직접적으로 나찌 독일에 가담하지 않았던 무수한 독일인들이 있다. 마찬가지로 군국주의로 치닫던 일본 정권과 상관없던 많은 일본인들이 있었다. 그들 모두를 단지 '독일인'이니까, 혹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또한 그들은 그 사실만으로 죄인이 되어야 하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차분한 비판과 검열이 필요하다. 죄는 없어도 '책임'은 있는 것이니까. '침묵'함으로써, 혹은 무지로 뒤덮어 '태만'을 통한 '공범'이 된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비단, 전쟁 책임국가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비윤리적 사건들, 거기에 죄가 없다고 책임까지 전가하며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눈가리고 귀 닫고 모른 척하며 살고 있는 우리는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힘들었던 20세기가 지나갔다. 그러나 21세기의 시작 역시 밝은 무지개빛은 결코 아니었다. 아직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고 차별과 폭력과 굶주림의 역사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우리 각 개인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비참한 시간은 올곧이 우리의 몫이 될 것이다. 쁘리모 레비와 무수한 유대인 희생자들을 추모하면서, 또한 동시에 희생자에서 가해자로 둔갑한 이스라엘의 침략적 행위를 규탄하면서, 우리 사는 모습을 가만히 돌아보게 된다.
우리가 기억해야 마땅한 시간을 깨우쳐 준 서경식 선생님의 책에 고마움을 느낀다. 몹시 좋았음에도 별 하나 감점은 번역어가 너무 어렵기 때문이다. 잘 쓰이지 않는 한자어는 쉽게 풀어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리고 약간의 오타에 대한 일종이 항의(?)랄까. 그래도 일독을 과감히 권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