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유출 사고, 미처 쓰지 못한 기술 [제 709 호/2008-01-21]
 


지난 12월 7일 충남 태안군 앞바다에서 유조선 ‘허베이 스피릿호’와 해상 크레인선이 충돌해 원유 1만2547t이 바다로 쏟아졌다. 바다가 온통 검게 변했지만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은 포기하지 않고 모여들어 엎질러진 기름을 주워 담기 시작했다. 현재까지 방제 작업에 투입된 인력은 자원봉사자 54만명을 포함해 100만명이 넘는다.

1월 7일까지 수거한 기름의 양은 4153t. 흡착폐기물로 수거한 양을 포함하면 유출량의 3분의 1을 훌쩍 뛰어넘는다. 해상기름유출사고로서는 회수율이 매우 높은 편이다. 아직 복구의 손길이 더 필요한 부분이 남아있지만 ‘인해전술’이 태안 앞바다를 옥빛으로 되돌린 셈이다. 그러나 만약 적절한 도구가 있었다면 이들의 노고를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방제 작업에 가장 큰 활약을 한 도구는 자원봉사자들이 해변에 들고 나간 유흡착제(부직포)다. 유흡착제는 합성수지인 폴리프로필렌(PP) 재질의 얇게 뽑은 섬유를 ‘니들 펀칭’이란 기법으로 만든 일종의 압축솜이다. 섬유가 복잡하게 엉켜 있어 표면적이 매우 넓기 때문에 효과적으로 기름을 흡수한다. 또 PP는 기름과 친하고 물을 싫어하기 때문에 기름이 떠다니는 바다위에 던지면 기름만 빨아들인다. 사람이 직접 하는 방제작업에서는 최선의 도구다.

유처리제도 큰 활약을 했다. 유처리제는 물과 기름이 섞이게 해주는 용액이다. 유처리제를 뿌리면 기름이 물과 섞여 우유처럼 변한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미세한 기름방울이 물 사이에 분산돼 있다. 이렇게 변한 기름은 덩어리 상태의 기름에 비해 분해와 증발이 빨리 이뤄진다.

하지만 유처리제는 잘못 쓰면 도리어 환경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1995년 여수 ‘씨프린스호’ 기름유출 사고 때 페인트 원료로 쓰이는 독성이 강한 유화제로 만든 유처리제를 대량으로 쓰는 바람에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쳤다. 이번에 쓴 유화제는 그보다 독성이 적지만 가라앉은 기름은 해저 생태계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실 이번 사고에 도움이 된 기술은 이 두 가지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준비하고 있던 기술은 더 있었다. 대형 유조선 기름 유출 사고에 대비해 2007년 초까지 300~500t급의 방제선 4척이 건조돼 있었고, 여기에 기름회수 장치(유회수기)가 149대 있었다. 기름회수기는 기름흡착부위가 회전하면서 바다의 기름을 걷어 올려 기름은 통에 담고 바닷물은 다시 버리는 장비다. 그러나 사고 지점의 파도가 높고 기름의 점도가 낮아 이들 장비는 무용지물이 됐다.

개발 중이거나 미처 상업화되지 못해 이번 방제 작업에 활약하지 못한 기술도 있다. 특히 정병엽 한국원자력연구원 방사선과학연구소 박사가 개발한 ‘흡유볼’에 주목할 만하다. 흡유볼은 자체 무게의 40배에 달하는 기름을 흡수할 수 있다. 게다가 흡유볼을 수거한 뒤에 압축하면 흡수된 기름까지 재활용할 수 있다.

흡유볼의 주성분은 카폭 섬유. 카폭 섬유는 표면적이 매우 넓고, 기름에 친한 성분으로 구성돼 있다. 기름 유출 사고가 날 당시 정 박사는 방제선에 흡유볼을 장착할 수 있는 부설장치를 개발하고 있던 중이었다. 시제품은 나왔지만 대량 생산에 들어가기 전 단계로 이번 사고에 쓰이지 못했다.

미생물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기름을 먹고 자라는 미생물을 대량으로 배양한 뒤 이들을 바다에 뿌리는 것이다. 바다에 기름이 남아있는 한 미생물은 계속 증식하기 때문에 더욱 효과적으로 기름을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도 아직은 시기상조다. 현재 한국해양연구원 해양오염방제연구사업단에서 개발 중인 미코박테리움과 스핑고모나스 등의 미생물은 실험실에서는 잘 자라지만 바다에 뿌리면 금방 죽는다. 바다에서도 잘 자라는 미생물을 개발하던 중에 기름 유출 사고가 터진 것이다. 모두 한 발자국이 부족해 이번 사태에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 기름을 수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아직도 절반 이상 남은 기름을 없애는 것은 태양과 미생물의 몫이다. 햇빛 속의 자외선은 기름성분이 분해되는 데 촉매역할을 한다. 이를 광(光)분해라 한다. 자외선의 도움을 받아 바위나 모래에 묻어있는 기름은 서서히 분해되면서 휘발돼 날아간다.

궁극적으로 남아있는 기름을 분해하는 것은 미생물이다. 휘발성분이 날아가면 지방족 탄화수소와 방향족 탄화수소가 남는다. 지방족 탄화수소를 분해하는 미생물은 종류가 많아 비교적 빨리 분해되지만, 방향족 탄화수소를 분해하는 미생물의 수는 상대적으로 적어 분해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미생물의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는 온도와 산소다. 미생물이 기름성분을 분해하려면 결국 생체촉매인 효소가 작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생물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주변 온도가 20℃ 밑으로 내려가면 효소의 활성이 낮아져 기름을 분해하는 효율이 많이 떨어진다. 결국 여름을 나면서 강한 햇볕에 노출되고 폭풍과 태풍을 겪어야 남아있는 기름찌꺼기가 없어질 것이다.

사람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눈에 보이는 피해는 조만간 사라진 듯 보이겠지만 생태계가 받은 충격은 쉽사리 회복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특히 갯벌과 연안에 침투한 기름이 완전히 제거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인재가 자연에 낸 상처가 빨리 아물 수 있도록 모두 힘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글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