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신에 목숨을 건 조선의 아웃사이더
노대환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주제사로의 접근은 흥미롭다.  통사에서 볼 수 있는 일관된 흐름은 부족할 수 있지만 하나의 주제를 중심으로 묶어놓은 이야기 갈래들이 새롭거나 뜻밖일 경우가 많아서 신선함을 주기 때문이다.

'소신에 목숨을 건 조선의 아웃사이더'
-열 두 꼭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조선 시대에 비주류에 속했지만 자신만의 길을 가고자 소신을 굽히지 않았던 열 두 남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들 각자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일생을 바쳐 움직였지만, 그들의 행보 모두를 옳다 혹은 바람직하다고 몰아 말하기는 어려웠다.  호불호, 혹은 과오에 상관 없이 그들은 '소신'을 지킨 사람일 뿐이다.  저자의 시각은 그들이 신념을 바친 소명에 집중할 뿐 객관적인 판단을 요구하지 않는다.

조선은 성리학 사회였고 양반 사대부가 주체가 된 지극히 폐쇄적인 공간이었다.  그 안에서 성리학 사회의 주류에 서지 않고, 임금이나 명망 있는 사대부의 판단에 반기를 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500년을 넘게 유지해 온 그 사회가 아무리 닫힌 사회였다고는 하나 체제에 반항하고 다른 길을 가고자 한 이가 없을 리가 없었다.  정조의 문체반정에 반기를 들었던 '이옥' 역시 그런 인물이었다.  학자 군주였던 정조가 과연 사상을 탄압하고자 한 의도로만 '문체반정'을 일으켰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 됐든 그는 패관소품을 인정하지 않았고 문장 또한 바꿀 것을 명했다.  그러한 때에 자신의 문장을 고수한 이옥은 시대를 잘못 만난 불운아이기도 했다.  오늘날과 같은 시대의 인물이었다면 그의 자유로운 형식의 문장은 오히려 독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조건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이언진에게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제 문장에 큰 자부심을 가졌던 그가 박지원의 성의 없는 반응에 울화가 치민 것은 당연한 일.  더군다나 중인 출신이었던 그가 양반 사대부들에게서도 인정 받았다고 자부했는데 그것이 틀어졌다고 생각하니 제 성미를 이기지 못한 것은 안쓰럽기까지 했다.  본시 유학의 큰 덕목은 수신인데 그는 자부심이 지나쳐 마음 수양은 덜 채운 듯하다.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명을 당길 만큼 분을 품을 일은 아니었다고 본다.(고생을 덜한 게다!)  아무튼, 죽어서 오히려 그 문장력에 칭송을 받았으니 억울함이 조금은 가셨을 지도 모를 일이다.

죽은 아내에게 수십 편의 글을 남긴 심노숭과 손자의 육아일기를 남긴 이문건은 이 책의 구성원 중 가장 독특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글을 썼던 시대 배경이 바로 그 '조선'이기 때문이다.  연애편지가 미덕인 시절이 아니었고, 더군다나 '아내'에게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남사스러웠던 때가 아닌가.  부인과의 이별을 친구와의 이별만도 못하다고 여기던 그때에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하나 둘도 아니고 수십 편의 글을 남긴 심노숭의 마음이 애잔하고, 그 마음을 숨기지 않고 표현한 그 솔직함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슬픔에서 우러나오는 '눈물'이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며 우울증을 감소시킨다는 학계 보고가 있는데, 심노숭같은 자세로 살았다면 조선 선비들이 좀 더 오래 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문건은 가족 복이 없는 사람이었다.  낳아놓은 자식들이 요절하기 일쑤였고, 병에 걸려 장애가 있는 경우도 수차례였으니까. 그러니 그가 손자에게 쏟은 정성이 어느 정도였을 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비록 손자가 그의 뜻에 맞게 자라주지 않았고, 기대에도 전혀 부응하지 못했지만.  이문건은 아들도, 손자도 모두 매를 들어 키웠지만 아들 때만큼 독하게는 못한 것이 역시 손주 사랑이란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엄마에게 자식 키울 때랑 손주 볼 때랑 언제가 더 사랑스럽냐고 질문한 적이 있는데 손주 이쁜 것에 비할 바가 아니라고 하셨다.  이문건도 분명 그랬으리라.

친구의 죽음에 과거를 포기한 박지원, 스승의 죽음에 평생을 은둔한 양산보.  이들은 사람에 대한 의리를 자신의 출세와 맞바꾼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들 모두가 생계위험형 가문은 아니었다라는 전제가 있긴 했지만, 과거를 통한 출사, 그리고 출세를 일생의 목표로 삼던 그 시절에 이런 각오는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소쇄원에 가게 되면 아무래도 감회가 남다를 듯 싶다.

행동파 유학자 정인홍, 북벌에 일생을 바쳤던 윤휴, 경세에 목숨을 걸었던 김병욱, 천주교에 맞서 싸운 김치진 등은 모두 제 소신을 발로 뛰면서 설파했던 인물들이다.  그들의 일생이 결코 편치 않았고, 영예를 보았던 적은 있어도 황혼이 불운하기도 했지만 결코 제 주장을 굽히지 않았던 소신파들이다.  다른 인물들은 그래도 이름 석자 역사책에 종종 등장하는 인물들이었지만 김치진은 꽤 낯설었는데, 잠상으로 몰려 처형까지 당한 인물이어서 더 애처롭기까지 했다.

'대장부의 삶'을 읽었을 때에도 느꼈지만, 소품을 이용한 책 디자인이 책의 맛깔스러움과 고급스러움에 꽤 일조를 한다.  사진 자료는 꼭 본문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도 한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는데 흔치 않은 것들도 있어서 눈이 호강을 하였다. 

개인적으로는 본문의 내용은 평이하게 읽었는데, 소재로 잡은 주인공의 약력 소개와 '더 읽어보기'에 소개되는 뒷이야기 혹은 배경 이야기가 훨씬 더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아내에게 지극했던 추사 김정희, 중인 출신 문인들, 커닝도 불사한 조선 후기 과거 시험장 풍경, <구운몽>은 정말 한글로 지어졌을까? 등등.

다소 아쉬운 점은, 책의 내용을 잘 배치하면 조선사 전체를 아우르는 통사의 진행도 가능했을 터인데, 시간 순서대로 기술하지 않은 점이다.  그랬더라면 책을 읽으면서 조선의 시작과 끝이 같이 진행되었을 텐데 말이다. 

주제사로 접근했지만 통사의 장점도 어느 정도 갖고 있는 책이다.  분절된 내용들이기 때문에 꼭 이어서 한꺼번에 읽을 필요없이 쉬엄쉬엄 읽으면 더 좋을 듯하다.  실제로 나 역시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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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1-20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이 참 끌리네요. 요즘도 역시 소신있는 사람들이 비주류로 살고 있으니...
여름방학에 광주오세요. 제가 소쇄원 제대로 안내할게요. 소쇄원은 4계절 모두 가 봤지만, 역시 정원은 푸르름이 한창일때가 제맛일 듯해요. 담양 메타세쿼이아길도 같이 걸어보고요~~~ 좋은 사람과 함께 오면 더 좋아요! ^^

마노아 2008-01-19 21:39   좋아요 0 | URL
대대로 소신 있는 사람들은 비주류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역사가 그렇게 증명하네요.
와, 광주 놀러가면 함께 가볼 곳이 많군요. 벌써 콩닥콩닥 가슴이 뛰어요.
여름방학의 멋진 여행을 기다릴게요. 좋은 사람을 빨리 만들어야 하는데 것참..;;;;;;

순오기 2008-01-20 12:27   좋아요 0 | URL
어제 한국사 전(내가 유일하게 챙겨보는 TV프로)에 송강 정철 나오더군요. 송강정과 식영정, 가사문학관등 소쇄원과 같이 둘러볼 수 있어요. 답사전문가 모시고 제대로 안내할게요. 한여름은 너무 더울려나? 그래도 방학이라야 맘 놓고 움직일 수 있겠죠~~~~ '광주이벤트'추진해 볼까~~ 내가 자칭 이벤트 아지매인데.... ^^

마노아 2008-01-20 12:47   좋아요 0 | URL
광주 이벤트, 근사해요^^ 광주에서 엠티를 계획하는 겁니다. 여름맞이 알라딘 배 답사 모임^^
한국사전도 챙겨봐야겠어요. 유익하단 소리 많이 들었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