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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을 먹다 - 제13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진규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제13회 문학동네 소설상 수상작이다. 그것 밖에는 내가 아는 정보가 없었다. 표지만 보고는 현대소설일 거라고 당연히 짐작했는데, 열어보니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소설 범주에 드는 작품이었다. 어랏, 특이하군... 그렇게, 읽기 시작했다.
지난 22일에 읽기 시작했는데, 24일부터 뚝 끊겨서 일주일만에 다시 찾게 되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마저 읽으려는 다짐의 결과이기도 했지만 몹시 재밌었던 기억의 끄트머리도 놓기 싫었던 까닭이다.
작가는 이전에 단편 소설도, 시 한자락도 써 본적이 없는 그야말로 초짜라고 했다. 그런데, 내공이 놀라웠다. 이토록 아름다운 문장이라니... 흡사 김훈의 문장을 보는 것 같았고 신경숙의 리진을 읽을 때의 그 느낌이 따라오기도 했다. 읽을 때마다 북다트를 사용해 주었어야 했는데, 처음 책의 2/3를 내리 읽을 때 밖에서 오들오들 떨며 읽은 까닭에 미처 표시하지 못한 페이지들이 아른거린다. 안 되겠다. 나중 기회에 다시 읽어야지...
시대적 배경은 영조 말기, 정조, 그리고 순조 초기였다. 직접적으로 임금님을 묘사하진 않았지만, 그 시대를 알아차리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렇다고 그 시대가 중요하지도 않다. 작품의 배경을 현대로 옮겨 놓아도 그대로 이야기가 될 만큼 이야기가 자연스럽다.
3대에 걸친 여러 집안과 남녀들, 그들 부자 사이, 모녀 사이, 사촌 사이 기타 등등... 이들 가족들과 이웃들 간에 얽히고 설킨 이야기의 타래. 그 안에서 집요하게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게 중에는 근친상간까지도 있다. 그들은 저마다 치열하게 사랑하고 제 사랑에 타들어 간다. 계집보다 더 고운 얼굴을 했던 묘연의 아버지는 천하의 색마였고 죽음조차도 복상사였다. 그 아버지가 부끄러워 침묵을 금처럼 달고 산 묘연. 묘연에게 이복 동생이 있고, 그 동생의 딸 난이를, 아들 희우가 사랑한다. 난이도 그를 사랑한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타래. 그들은 서로가 말라가고 시들어 간다.
뿐이던가. 난이의 이복 언니 향이를 사랑한 여문은 향이가 목매달아 죽자 다리를 절던 향이처럼 되고 싶어 다리를 부러 절뚝이며 살고, 그녀의 집에서 남편 행세를 한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미쳤다고 손가락질 했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그에게는 원래 부인이 있었다.) 또 향이의 친 엄마인 후연은 마음은 아니면서 겉으로는 아내를 학대했던 최약국인데, 후연이 젊다 못해 어린 약사 후평과 도망을 치자 후처로 들어온 난이 엄마 하연을 박대하며 왜곡되어진 사랑을 표현한다. 이렇게 맞물리는 사랑 이야기들은 조금도 서두름 없이 느린 호흡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데, 누구도 행복해질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가 몹시 아파, 독자는 몇 차례씩 호흡을 멈춰야만 했다.
주인공의 시점이 계속 바뀌고 하나의 이야기도 각 당사자의 입으로 다시 말해지는 기법은 작품의 깊이를 더 진하게 만들었다. 그밖에 조선시대 박물지를 연상케 하는 여러 소소한 소재들. 차라던가 벼슬, 학문, 풍습 등등이 독자에게 또 하나의 좋은 즐거움이 된다.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작품 전체를 아우루는 줄기의 힘이 약해서 몰입하는 데에 시간이 걸리다는 것. 그렇지만 집중해서 작품에 다가가다 보면 어느 순간 헤어나올 수 없는 마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제목은 왜 '달을 먹다'인지 그 의미를 잘 모르겠다. 원제는 '내심'이라고 했는데 '속마음'이라고 쓰려니 너무 직접적이어서 운치가 떨어진다. 차라리 이 제목이 더 낫다. 제목의 의미를 다시 헤아려 보고자 언제고 다시 읽어보리라 다짐해 본다.
미처 표시하지 못한 밑줄긋기가 아쉬워서 한 부분만 옮겨 본다.
나는 언제나 '누구'가 되고 싶었다. 어려서는 마님의 딸이 되고 싶었고, 나이 들면서는 오라버니의 각시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 '누구'가 불가했다. 그러면 '무엇'이라도 되어야 했다. 그 '무엇'조차 될 수 없다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물론 '누구'이면서 '무엇'일 수도 있다면야 더 바랄 게 없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문제였다. 열여덟에 목숨을 버려 중천에 갇힌 귀신이 된 향이 언니처럼, 이제 열여덟이 된 내가 될 수 있는 그 '무엇'이 분명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귀신조차도 '누구'였다. 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도 나타난 귀신더러 너는 누구냐, 하지 너는 무엇이냐, 하지는 않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