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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학의 ㅣ 범우문고 145
박제가 지음, 김승일 옮김 / 범우사 / 2004년 3월
평점 :
언제 샀는지도 기억에 없다. 꽤 오래 전의 일인 듯 싶다. 책이 워낙 얇고 가볍기 때문에 외출할 때 자주 들고 다녔다. 얇지만 글이 빽빽하기 때문에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각주도 많았고 말이다. 가방 속에서 큰 부피와 무게를 자랑하지 않고도 이동시간을 유용하게 보낼 수 있는 도우미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낸 고마운 책이다.
북학파로 알려진 박제가의 책인데, 18세기 조선 지식인으로서 특히 실학자로서의 고민과 염려를 제대로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수레, 배, 벽돌, 기와, 도로, 교량, 소, 말, 나귀, 안장, 구유, 장사꾼, 돈, 통역, 재목, 약, 간장, 도장, 담요, 종이, 활, 밭, 거름, 뽕나무... 등등 아주 다양한 항목들에 대해서 조목조목 비판하는 글들을 썼다. 또 책에 대한 서문과 평가, 비교 등을 담아냈는데, 굳이 도식화 시키자면 조선에 대한 비판과 냉소, 그리고 중국에 대한 예찬이 그 내용이다.
청나라를 오랑캐라고 손가락질 하며 그들의 발달된 문물을 배척하는 시각도 문제가 많지만 저자와 같이 찬양과 숭배로 도배하는 눈길도 별로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대략 다섯 차례 정도 중국을 다녀왔는데, 중국의 전역을 다녀온 것이 아니고, 중국사를 통째로 들여다볼 수 있는 위치도 아니었기에(당대인으로서는 불가능한 관점 말이다.) 그가 보고 온 것만이 모두 다이고 전부인 것처럼 느낄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인의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 것은 우리 것대로 의미가 있고 또 가치가 있는 것들도 있는데 박제가의 시각을 그대로 보고 있자면 몹시 불편함을 느낀다. 우리 것이어서 나쁘다는 얘기가 듣기 싫어서가 아니라 너무 매도되는 느낌을 받아서이다. 그래서 언젠가 '실학자'들이 백성들의 편은 아니었다는 글을 읽은 기억도 떠오르면서 '북학파', '중상학파'라는 이름에 우리가 너무 피상적인 착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역시 우리 것은 모두 좋은 문화, 좋은 역사!라는 식의 교육(!) 효과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또 아무래도 책이 워낙 딱딱하고 어려운 단어로 쓰여졌기 때문에 접근이 용이하지 않아서 갖게 되는 일종의 거리감의 효과일 수도 있겠다. 좀 더 걸러진 2차 저작물이 내 수준에서는 필요하다. 발해고를 읽었을 때에도, 또 열하일기를 읽었을 때에도 그랬지만, 당대로서는 놀라운 저작물들이 현대인인 내가 읽기에는 너무나 난해하고 고역인 읽기가 되어버렸다. 어쩌랴. 나의 무지를 탓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