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기르다 청년사 작가주의 1
다니구치 지로 지음, 박숙경 옮김 / 청년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이 작품은 작가의 실제 경험에 근거해서 나온 이야기이다. 작가가 15년 동안 키우던 개가 죽고 얼마 뒤, 장편을 기획했지만 과감히 버리고 마지막 일년의 시간만 그리기로 결정했단다.  결과는 오히려 더 좋았다.  많은 호평을 받았고 굵직한 상도 받았다.

부부가 14년 동안 가족으로 지내온 개 탐탐은 이제 늙어 다리에 힘도 없고 산책을 할 때에도 줄로 몸의 무게를 덜어주어야 할 정도로 힘에 부쳐 한다.  집 안에서는 절대로 볼일을 해결않던 탐이 차차 실례를 하게 되고, 몸에는 욕창도 생겨버린다. 음식물을 넘기지 못해 영양제에 의지하기까지 탐은 끈질기게 생명을 놓지 않는다. 자신의 최후의 최후까지 온전히 다 지켜보려는, 감당하려는 눈빛을 하고서 말이다.  결국 탐은 14년 하고도 10개월을 더 살고서 세상을 떠났다. 한 생명의 시작과 끝을 올곧이 지켜본 부부의 마음에 큰 멍울이 생겨버렸다.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회한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일년의 시간이 지나고, 이번엔 얼떨결에 페르시안 고양이를 키우게 되었다.  흔히 알고 있는 고양이의 습성과 달리 녀석은 좀 게으른 편이었다.  알고 보니 뱃속에 새끼를 갖고 있었던 것인데, 세마리의 귀여운 새끼 고양이가 이어서 태어난다.  새끼가 생기자 고양이는 모성본능을 제대로 보여준다.  네 마리의 고양이를 키울 수가 없어서 두 마리는 다른 집에 보내기로 했지만, 가장 귀여웠던 키키만 성공적으로 보내고 다른 아이들은 여차저차하다가 함께 키우게 되었다.

개도 기르고 고양이도 키워보았지만 자식이 없는 부부에게는 은연중 그늘이 생겨버렸다. 사춘기에 접어든 조카 아이가 방학을 이용해 와 있는 동안, 부부는 더 화기애애해진 집안의 분위기를 실감한다. 그러나 인력으로 어쩔 수 없는 일.  작품은 큰 굴곡 없이 감정의 기복 없이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들의 이야기를 마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마지막에 실린 '약속의 땅'이다. 히말라야 등반 이야기인데, 그곳에서 젊은 날 만났던 눈표범과의 감동적인 재회 이야기.  산을 알지 못하는 나지만, 산을 향한 주인공의 열망과 그리움은 쉽게 이해가 갔다.  이제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지만 산으로 돌아가고픈 마음을 접기는 힘이 들었다.  동물원에서 만난 우리에 갇힌 표범을 보고서, 자신 역시 우리에 갇힌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주인공.  그 마음을, 아내가 먼저 알아차린다.  그리고 반드시 살아돌아오라는 약속을 새긴 채 히말라야로 남편을 보내준다.  나이 마흔이 되어, 젊어서도 성공하지 못했던 히말라야 등반을 성공시킨 주인공.  그리고 거기서 환영처럼 기억에 남아있던 눈표범을 다시 만난다.  산을 사랑해야 오를 수 있지만, 살아 돌아가기 위해서는 산이 사랑해 주어야 한다는 말이 가슴에 남는다.

두런두런, 조용조용, 잔잔한 감동을 주는 다니구치 지로의 이야기를 만났다.  작가의 다른 책들도 찾아보련다.  사랑받는 이유를 나 역시 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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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7-11-17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일본 작가들이 많이 낯설어서... 개 이야기는 게리 폴슨은 '개와 나의 인생', 고양이 이야기는 엘케 하이덴라이히의 '검은 고양이 네로'가 아주 좋았어요.
알라딘 서재는 좋은 책을 소개받는 즐거움이 최고겠죠! 그중에도 마노아님 서재에서 듬뿍... ^^

마노아 2007-11-18 10:29   좋아요 0 | URL
저야말로 순오기님께 많은 책을 소개받고 있죠. 개와 나의 인생도 찾아봐야겠어요. 검은 고양이 네로는 우리에게 노래로 익숙한 그 책일까요? 어떤 그림일지 궁금해요^^

2007-11-18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18 17: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18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19 0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1-19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L.SHIN 2008-04-02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헤헤헤...(>_<)
왜 웃는지 아시죠?

마노아 2008-04-02 14:22   좋아요 0 | URL
나도 에헤헤헷, 나도 읽으면서 에쓰님 잔뜩 떠올렸죠. 게다가 지금 이미지 사진과도 딱 맞아 떨어지네요. 기막힌 타이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