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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소녀
다이 시지에 지음, 이원희 옮김 / 현대문학 / 2005년 4월
평점 :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치르고 원서를 쓰고 결과를 기다릴 때, 내가 합격하기를 바랐던 학교의 커트라인은 내 성적보다 높았다. 그래도 최종에 최종까지 기다리면 추가 합격이라도 하지 않을까 내심 기대에 고대에 희망을 품고 있을 때에, 만약 합격만 시켜준다면 내가 무엇을 포기할 수 있을까 상상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내가 스스로에게 가장 큰 의미를 부여했던, 또 나를 가장 즐겁게 했던 행위는 만화책 읽기였다. 합격을 갈망하던 그 순간에는, 평생토록 만화책을 안 볼 수도 있다!라는 나름대로의 거창한, 그러나 말도 안 되는 결심도 해보았다. 결과는 불합격이었고, 나는 재수 기간에도 만화책을 많이 보았다. 물론, 지금도 많이 읽는다. 아마 합격을 했더라면 결심 따위 잊고서 역시 만화책 열심히 보았을 거란 짐작은 충분히 가능하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대학수학능력 시험을 보는 날이기도 하다. ;;
왜 갑자기 십년 전 일이 떠올랐냐 하면, 이 책 때문이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발자크도 바느질 소녀도 이 책의 주인공은 아니다. 책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데,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지라 작가 자신으로 바로 대입해도 아무 무리가 없을 듯하다. 주인공과 주인공보다 한 살 많은 절친한 친구 뤄는, 부르주아 부모님을 둔 덕분에 '재교육'을 명 받았고, 고작 중학교 를 졸업했을 뿐인데도 지식인으로 분류된 두 사람은 고된 노동을 강요당하며 산골 마을로 흘러들어간다. 양파를 한번 썰면 온 동네에서 다 알아차릴 만큼의 작은 이웃 마을 용징까지 가는데도 무려 이틀이나 걸리는 그런 산골 마을. 그곳에서 뤄와 주인공은 농사를 짓고 탄광 일을 하는데, 그들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문명의 흔적이라는 것은 바이올린과 자명종 뿐이었다. 불태워질 뻔한 바이올린을 구해내기 위해서 뤄가 보여준 기지가 눈이 부셨는데, 모차르트 소나타를 설명하기 위해서 등장한 '모차르트는 언제나 마오주석을 생각한다'라는 명제엔 웃지 못할 당시의 시대 상황이, 그러면서도 해학을 보여주는 작가의 필력이 같이 깃들어 있다.
두 사람은 간혹 힘든 노동에서 해방될 때가 있는데, 이틀이나 걸려서 이웃 마을에 가서 영화를 보고, 다시 이틀 걸려 돌아온 마을 주민들을 모아놓고 영화의 얘기를 할 때가 그 순간이다. 영화 상영 시간보다 모자라서는 안 되는 이야기의 재포장. 뤄는 이야기의 천재인지라 두 사람은 매 달 4일 간의 해방을 만끽할 수 있었다. 사상과 생각이 강요당하는, 이념적 성격이 강한 영화를 줄기차게 반복할지라도, 산골 마을에서 도심으로 해방될 수 있다는 그 자유가 있는 한, 나라도 고된 걸음걸이를 절대 뿌리치지 못했을 듯하다.
두 사람은 마을에서 가장 예쁜 재봉틀집 소녀에게 반하고, 뤄는 그녀와 연인 관계로까지 발전한다. 언뜻 보면 이들의 성장소설로도 읽힐 이 작품의 또 다른 축은 제목에서도 등장한 '발자크'가 담당하고 있다. 역시 '재교육'을 받기 위해 노동을 하던 안경잡이는 몰래 책을 숨겨두고 있었는데, 그 책의 존재를 안 순간 뤄와 주인공의 눈이 번뜩인다. 그것은 억눌린 자유와 자아의 분출 장치이기도 했고, 무료한 일상으로의 탈출이기도 했으며 무엇보다도 문명에 대한 갈망을 채워주는 달콤한 미끼였던 것이다. 책 한권을 얻어내기 위한 눈물겨운 사투(온 몸을 간지럽히는 이와의 싸움..;;;)도 불사했고, 심지어는 안경잡이가 마을을 떠날 때 숨막히는 절도 행위도 불사했다. 그렇게 해서 만나게 된 발자크, 스탕달, 위고, 뒤마, 롤랑, 루소 등등의 작가들. 문자를 아는 것 조차도 신기했던 그 마을에서, 금서로 분류된 책들과의 조우는 소년에서 청년으로 넘어가는 두 사람과 또 그들이 같이 사랑한 한 소녀의 삶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심지어 재봉틀 기술자인 소녀의 아버지 역시 몬테크리스토 백작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무려 9일 밤을 투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언급되어진 책들의 우수성도 크게 한몫을 해내었지만, 그곳에선 어떤 책이라도 고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작가는 크게 흥분하는 법 없이 차분하게 이야기를 진행시키는데 오밀조밀 올망졸망 사근사근한 재미가 내내 유지된다. 문화대혁명이라는 거창한 이름 하에 희생되었던 이들이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즐기며, 거기다가 연애까지 한다. 그러나 25세가 되어야지만 결혼이 가능한 그곳에서 열여닯 아가씨가 임신을 했으니 이들이 받았을 충격이 얼마나 컸겠는가. 여기에서 또 한 번 작품은 큰 긴장감을 휘두르는데, 낙태를 해줄 의사와의 만남에서 '발자크'가 다시 한 번 큰 일을 해낸다. 금지된 그 이름에서 의사와 주인공이 함께 느낀 동질감과 안도감 그리고 서러운 감정이 독자에게도 진하게 전달되고 만다. 아마도 그 순간 바이올린을 갖고 있었더라면 레퀴엠 한 곡조를 뽑아냈을지도 모르겠다.
발자크는 뤄와 소녀의 사랑을 이어주는 좋은 매개체가 되었지만, 동시에 두 사람의 이별을 만들어내는 중추 역할을 해낸다. 책을 통해 만난 새로운 세상, 문명, 사랑까지... 매력을 넘어 마력을 지닌 그것들을 향한 동경은 그들의 풋풋한 사랑으로도 막지 못했다. 사랑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정에 배신당하는 순간 책들은 분서대로 향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니, 그렇게 그들은 한 세대를 마감하고 이제 어른이 될 것이다. 시간이 흘러 문화대혁명은 중국 사회의 총체적인 후퇴를 낳았다는 것이 기정사실이 되어버렸고, 그 시절을 온몸으로 겪은 주인공들은 그때를 떠올리며 씁쓸한 웃음을 지을 것이다. 그러나 불타버린 발자크와 뒤마는 여전히 그들의 가슴 속에서 뜨겁게 살아있을 것이다. 청춘과 성장이라는 낙인과 함께.
간혹, 그런 상상을 해볼 때도 있다. 무인도에 떨어졌을 때, 혹은 그에 준하는 고립된 공간에 갇혀 있을 때. 무료한 시간을 달래고 공포로부터 주변 사람들을 지켜주고 싶을 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아마도, 나는 '이야기'를 택할 것이다. 그것이 동화든, 소설이든, 영화든, 만화든... 어떤 이야기든지 쉬지 않고 떠들며 우리의 시간을 견뎌내게 만들 것이다. 기왕이면 재미나고 희망을 주는, 큰 웃음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골라야 할 테지. 어떤 이야기를 말할 수 있을까. 머리 속에 스쳐가는 제목들이 있다.
김혜린의 비천무, 신일숙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 황미나의 안녕 미스터 블랙,
박민규의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또 향수, 사신 치바, 눈먼 자들의 도시 등등...
그리고, 이 책도 같이 기억하고 말하련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누군가 바이올린을 연주해 준다면 더없이 좋겠다. 그러면 나는 말할 것이다. 바느질하는 소녀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