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 미국의 식민지 대한민국, 10 vs 90의 소통할 수 없는 현실
지승호 지음, 박노자 외 / 시대의창 / 2007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을 하나 읽고나면, 그 다음에는 비소설을 읽어야지...하는 조그마한 원칙을 세웠다.(그러나 무시될 수 있다.;;;) 그래서 집어든 책이 "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이다.

박노자, 홍세화, 김규항, 한홍구, 심상정, 진중권, 손석춘, 우리 사회의 진보적 좌파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을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만났다.  각각의 사람들을 따로 시간차를 두고 만났지만, 그들에게서 묻고 있는 것들은 결국 대한민국의 현주소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었다.  대한민국의 현 주소란 신자유주의가 판을 치는, 자본이 주인이 되어버려 파시즘에 이르른 광기 어린 우리 사회이며, 10%의 가진 자(강자)를 위해서 희생되고 있는 90%의 약자가 사는 곳이란 얘기다.  여기에 보수와 진보를 함께 물으며 공존하지 못하고 대립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두 개의 현실을 긴 대화를 통해서 정리하였다.

첫 인터뷰이는 박노자씨였다.  한국에 귀화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이 지성인은, 우리가 안에 있기 때문에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모순들을 우리 바깥에서 거침없이 끄집어내는 역할을 하곤 했는데, 우리 안에 인이 박혀버린 '노예근성'을 얘기할 때에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조승희 사건 때에 제대로 밝혀졌지만, 백인(특히 미국인)에게 과도하게 친절하고, 유색인종은 얕잡아 보는 이중적 태도란 우리 스스로 존엄성을 포기하는 무지막지한 폭력이 아닐 수 없다.  가르치는 자들이 먼저 그 습성을 버려야 하는데,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란 이미 뼛속 깊이 노예근성이 박혀있을 때가 많아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도 그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니 이만저만 걱정이 아닐 수 없다. 

고등학교 시절 수학 시간이었는데, 무슨 얘기를 하다가 '노동자'라는 표현을 쓰고는 선생님께서 불편해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애써 '근로자'라고 단어를 바꾸셨는데, 그와 같은 경우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의 신성함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비천하게 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땀흘려 일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받는 것에 대해서 수치를 느끼는 것이야말로 진짜 수치임을 모르는 사태이다.  작년에 본 급훈 중에서 충격적인 문구가 있었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라는 글이었는데, 명확하게 나눠진 대립적인 계급과 가치에, 그것이 교실 높은 곳 한 가운데에 버티고 있다는 사실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그 급훈을 정한 사람이 그 학급 담임이라는 사실에 더 기가 막혔다.)

그나저나 조승희 사건을 얘기하였는데, 인터뷰 날짜가 2006년인 것은 2007년의 오기가 아닐까 싶다.

두번 째 인터뷰이는 오랜 세월 망명의 시간을 보냈던 홍세화씨.  그는 보수와 진보의 개념에 대해서 일갈을 두었는데, 생각해 보면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라는 단어를 '수구'와 혼동해서 쓰이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보수'라는 말 자체에는 지켜야 할 아름다운 가치가 포함되어 있는 것인데, 우리 사회의 자칭 보수파들은 지킬 가치라는 게 고작해야 자신들의 '기득권' 뿐이었으니 이 단어가 혼용되어 섞이는 것이 이상치는 않다만 주의해야 할 일임은 분명하다.

홍세화씨는 '삼성 공화국'이란 단어를 쓰지 말라고 당부하셨는데, 부패공화국, 도박공화국, 부동산 공화국 등등... 건전치 못한 부정한 단어에 붙어 쓰기엔 '공화국'에 내포되어 있는 공공의 가치가 지나치게 훼손되기 때문이다.  미처 감지하지 못했는데 맞는 지적이다.  은연중 이런 단어를 자꾸 쓰다 보면 모르는 새 '공화국'이라는 가치마저도 동반격하될 수도 있으니까.

세번째 인터뷰이는 김규항씨.  개인적으로는 김규항씨 관련된 글을 처음 읽은 듯했다.  이렇게 신랄하면서 유머러스한 논객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에 내심 섭섭함을 느꼈다.  이제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행이지만.

김규항씨는 어린이 교육에 무척 힘을 쏟고 계신데, 그래서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를 열심히 발간하고 계시는 중이기도 하다.  "왜 사회는 민주화 되었는데 아이들은 더 권위주의적인 체제에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식은땀이 흘렀다.  옳은 말이다.  부족하다 할지라도 과거에 비해서 분명 민주화된 사회이건만, 아이들의 삶은 더 권위주의에 휘둘리고 있다.  성인 근로자의 적정 노동 시간이 8시간인 것처럼, 아이들의 적정 공부 시간이라는 것이 8시간을 넘지 않는 것이 공평할 듯한데,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 학원에 도서관에 과외에 얼마나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가.  거기에 얼마만큼의 자발적 의지가 동원될까.  가엾고 안타까운 우리의 아이들이다. 

위인전에 대한 지적도 낯 뜨거웠다.  과거의 위인이란 군사 파시즘의 일환으로 이용된 면이 있었는데, 오늘날의 위인이란 오로지 돈 잘 버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얼마 전의 일인데 옆 학급에서는 CA 수업을 위해서 거둔 돈이 남았는데, 그 돈으로 피자를 사먹을까, 균등분배해줄까 하고 물었더니 돈으로 돌려달라고 했단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이.  본인들의 돈이니 원하는 대로 해줬다지만 그 나이 또래 아이들답지 않은 반응에 영 찝찝했다는 담당 선생님의 말씀.  나 역시 동의했다. 아이들의 책임이 아니라 그렇게 아이들을 길러낸 우리 사회, 어른들의 문제이다. 

황우석 사태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익' 망령에 사로잡혀서 온 나라가 미쳐 돌아갔던 부끄러웠던 시간.  그의 연구가 '돈'이 되는 것이 아니었더라도 그런 반응이었을까.  물론, 이것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영화 다이하드 4를 보면서, 국가 전복을 거의 실현시킬 뻔한 악당의 최종 목표라는 것이 단지 '거액의 돈'이었다는 사실이 너무 시시하고 비현실적이라 여겼는데, 사실은 지극히 '현실적인' 설정이었다는 것을 뒤늦게 인정한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를 외치는 것은 이상주의자이거나 몽상가라는 평을 듣기 일쑤인데, 김규항씨는 진보를 외치는 것이야말로 지극히 현실적인 것이라고 힘주어 얘기한다.  우리가 본질을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기에 그렇게 멀고도 아득하게 느껴진 것이지, 두눈 부릅뜨고 현실로 뛰어들어 덤볐다면, 진보가 그렇게 머나먼 곳에 떨어져 있다고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새삼 민주노동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들뜬 목소리가 떠올랐다.  단 10석 만으로도 재평가되었던 그들의 입장과 노력이.

개인적으로 7명의 인터뷰이 중에서 가장 편하게, 재밌게, 또 의미있게 읽혀진 이가 한홍구씨였다.  아무래도 대중적 역사 쓰기에 익숙해 있는 인물이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개인적인 관심 분야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반가운 인터뷰 대상이었다.  그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쉽고도 편안했으며 구체적이었다.(홍세화씨의 관념적이고 어려운 단어들과 설명과 대조적이었다.)  그리고 비관적이었던 박노자씨와는 구별되게 최소한의 '희망'이 느껴졌기 때문에 더 반가웠을 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 생각에 그 수염은 영 아니었다.  지금도 기르고 계시는 지는 모르겠지만..;;

IMF위기와 탄핵 정국이 우리에게 있었던 최대 반전의 '기회'였다는 지적에 몹시 속이 쓰렸다.  극적이었던 만큼 반전의 효과도 더 클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안타깝다.  상처란 치유해야 새 살이 돋는 법인데, IMF때 외환위기를 몰고 온 재벌들은 오히려 승승장구 살아남고 애꿎은 서민들의 경제만 파탄난 것이 1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발목을 잡고 있는 원수로 느껴져 속에서 울화가 치민다.  뿐아니라 친일파라던가 군사 독재 시절의 의문사라든가 기타 등등 비슷한 경우가 너무 많았다.  처벌하지 않았기에 보복이 생기는 것이라는 지적은 얼마나 섬뜩하게 울리던지....(강풀의 26년을 꼭 같이 보길 바란다!)

평화박물관 일도 같이 하시는 한교수님과 '평화'에 대한 얘기가 많이 오갔는데 반핵, 북한 끌어안기, 파병반대 등등 어느 한 구절도 버릴 말씀이 없었다.  40년 전 박정희 정권 때에도 파병을 하면서 '부끄러움'을 알았는데, 21세기 현 정권은 파병연장을 하고 있으니 이래저래 부끄러워 미칠 노릇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게 만드려면, 핵을 포기하고도 먹고 살 수 있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구축되어야 하는데, 그 역할은 남한이 해야 할 몫이다.  그것은 일방적 퍼주기가 아니며, 우리가 함께 일어설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우리가 서로 감군을 결정하고, 서로를 감시하며 적정한 예산을 편성할 때, 여기에 병역거부에 대한 대체복무 문제도 같이 해결할 수 있고 예산의 적절한 사용으로 경제 발전도 같이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한쪽이 이기고 한쪽이 지는 것이 아니라 둘 모두에게 윈-윈 전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문제는 우리가 미국에 대해서 북한을 감싸안으며 큰소리 칠 배짱 혹은 밝은 지성이라는 게 있느냐인데, 아직까지는 답답한 답만이 떠오른다.

심상정씨와의 인터뷰에서 인상 깊었던 것은 온화하면서도 단단한 어조와 한미 FTA 반대에 대한 열정이었다.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진정 이 나라 대다수의 국민을 위한 발로 뛰기에 감동을 받았으며, 민주노동당에 대한 더 깊은 믿음으로까지 연결이 되었다. 

진중권씨는 앞으로 본업에만 충실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사회적으로 안타까운 손실이란 생각이 들지만 강요할 수 없는 문제니 뭐라 할 수가 없었다.  내 아이만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들의 독단적인 마음들에 일침을 가하며, 우리 모두를 위한 교육에 힘껏 지지를 보낸다.  그 방법 역시 다 함께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 누구 하나 뽑아 놓으면 만사가 다 잘 될 거라는 사람들의 무책임하고도 무지한 생각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도 힘주어 얘기하셨는데, 틀린 말이 하나 없었다.

손석춘씨와의 인터뷰에서 R통신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책으로 이미 출간되어 있는 줄 몰랐다.  좋은 책을 더불어 건진 셈.

초반 홍세화씨 인터뷰에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는데, 그 후부터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유익하게 이어진 독서였다.  우리가 마땅히 알아야 할 우리나라의 현실과 달라져야 할 부분들에 대한 일정한 정리가 스스로 이루어질 수 있었고, 그 작업들이 가능하게 길을 터준 인터뷰어 지승호씨에게도 고마움을 느낀다.   다만 열 몇 군데 정도 오타가 눈에 띄는데 책이 많이 팔려서 다음 번 찍을 때에는 모두 수정되었으면 하는 '소박한' 바람이 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오기 2007-11-04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이 책 몇 분만 맛보기를 했어요. 날 잡아서 진중하게 봐야 할 책이라 아직은...
님의 리뷰로 훨씬 친근하게 읽게 될 것 같아요. 홍세화씨.. 정말 강연도 어찌나 졸립고 재미없게 하던지~ㅎㅎ

마노아 2007-11-04 18:19   좋아요 0 | URL
아하핫, 순오기님 홍세화씨 강연 가보신 적 있군요^^ㅎㅎㅎ
같이 식사해 본 어느 기자분이 대단히 친근한 아저씨 분위기라 돌출되어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뭐랄까... 너무 선비 분위기라 좀 나와 동떨어진 세계의 사람 같은 분위기에요. 책에서 읽혀지는 느낌이 말예요.^^;;하지만 이 책은 참 좋은 인터뷰집이었어요. 읽고 나니 좀 더 힘이 나기도 했구요~

마냐 2007-12-14 14: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감사, 그리고 님도 축하드려요. ㅎㅎ 님이 아니었음, 암 생각 없이 모르고 지나갈 뻔 했슴다. 워낙 요즘 게으름 피우고 있어서요. 처음에 리뷰대회 공지났을땐...저 중에 3~4권은 해볼 수 있겠거니 했는데..실제로는 달랑 하나 밖에 못썼슴다. 타석에 한번 서서 1루타는 날렸으니..흐흐. 고마울 뿐이죠.

마노아 2007-12-14 16:07   좋아요 0 | URL
저도 처음에 공지 떴을 때 욕심냈던 책이 많았는데 날이 갈수록 목표량이 줄었어요^^;;;;
1루타 남기신 마냐님, 승률이 높아요. 헤헷^^

순오기 2007-12-14 19: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리뷰보고 이 책 구입했었는데... 전 읽지를 못해서 못 올렸어요.
3관왕이시던가요? 축하축합니다!!

마노아 2007-12-15 00:30   좋아요 0 | URL
4관왕했어요^0^ 그치만 순오기님의 한건에 미치질 못합니다^^ 저도 마구마구 축하 날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