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 미국의 식민지 대한민국, 10 vs 90의 소통할 수 없는 현실
지승호 지음, 박노자 외 / 시대의창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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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라는 게 서민들이 달러를 빌려 써서 온 게 아니잖아요. 재벌들이 빌려 쓴 거고 그걸 승인해준 게 관료 아닙니까? 그때 우리가 허리띠 졸라매면서 이런 엄청난 국가부도 사태를 초래한 재벌과 관료집단을 개혁했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김대중 정권이 등장한 다음에 탈IMF 위기 강박관념에 빠져들었고 재벌과 관료를 앞세워서 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한 거 아닙니까? 사실은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들이었는데요. 그렇게 되면서 개혁의 기회를 놓친 거예요. 구조적인 문제를 개혁했어야 하는 거죠. 그 기회를 놓치니까 재벌과 관료들이 무엇으로 살아남았습니까? 신자유주의적 개혁의 전도사가 되어버린 것 아닙니까? 개혁의 대상이 자기가 개혁의 주체임을 자부하면서 ‘이렇게 우리가 IMF 위기를 돌파했다’고 했는데요. 그걸 돌파한 것이 결국 IT 산업과 카드 경제 아닙니까? 그런데 IT 거품이 빠지고 카드빚으로 서민경제가 어려워지니까 노무현 정권한테까지 부담으로 남게 된 거죠. 노마크 찬스뿐 아니라 국제금융자본이 어시스트해주는 그 기회를 날려버린 겁니다.
-177쪽

17대 국회가 처음 열렸을 때 거기서 제일 먼저 했어야 했던 일이 국가보안법 폐지와 이른바 4대 개혁입법입니다. 그리고 민생이나 사회복지 부분에서 반드시 했어야 할 것들을 ‘이것만은 반드시 하자’는 아젠다를 가지고 ‘이게 17대 국회에서 나타난 민의’라고 밀어붙였어야죠. 민주노동당 10석을 합쳐 162석이면 뭘 못하겠습니까? 국회에서 그 시대정신에 입각해서 우리는 이렇게 간다고 했어야 했습니다. 상생이니 화해니 하는 것은 개혁을 해놓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어야 하구요.
-178쪽

유창순 씨가 경제기획원 장관을 그만둔 지 얼마 안 됐을 땐데, 관료 출신의 경제인조차도 남의 전쟁에 가서 돈 벌어오는 것을 민망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40년이 흐른 지금은 한국 경제가 세계 10위권 아닙니까? 교육 수준은 그때하고 비교해서 어마어마하게 높아졌구요. 그때는 적극적 파병론자도 그렇게 민망하게 여겼는데, 지금은 파병 반대론자도 국익 얘기만 나오면 꼬리를 내려야 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저는 진보진영이 반성을 해야 할 부분이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190쪽

반북핵만을 얘기하는 것은 기회주의자들이에요. 미국 핵무기까지 반대를 하는, 지구상에서 핵무기가 없어져야 한다는 원칙적인 입장이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구요. 한국의 일부 통일운동 세력에서 북핵을 용인하는 듯한 태도에도 반대합니다.
-192쪽

일본이 세계 유일의 피폭 국가라고 얘기하지만, 일본 민족이 세계 유일의 피폭 민족은 아니에요. 국가로서는 세계 유일의 피폭 국가지만요. 피폭당해 죽은 한국 사람이 히로시마에 3만, 나가사키 1만, 모두 4만 명이 넘어요. 그런데 우리 역사책에서는 이걸 안 가르칩니다. 20세기 우리 역사가 정말 울퉁불퉁했다지만 하루에 3만 명이 죽은 날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폭이 떨어지고 나서 4만 명이 죽었는데 이걸 역사 시간에 안 가르친다니까요. 왜냐하면 수십 년 동안 미군의 핵무기가 우리한테 있었잖습니까? 그래서 핵무기가 이렇게 나쁜 거라는 얘기를 하면 안 되는 거죠. 아직도 미국의 핵우산 속에 있다는 걸 다행으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고요. 한반도의 핵 문제를 가지고 얘기하려면 이런 문제를 얘기해야죠.
-193쪽

1957년에 일본에서 반핵운동이 거세게 일어나니까 일본에 있던 핵무기가 한국으로 이사왔잖아요. 그래서 1991년까지 적게는 600기, 많게는 1000기 이상의 핵무기가 한반도에 배치되어 있었는데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를 안 해왔으면서 북한이 최근에 개발했던 한 발인지, 몇 발인지 정확히 알 수 없는 것만 문제 삼는 건 말도 안 되죠. 하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게끔 몰고 간 과정 자체는 그것대로 미국을 비판해야겠지만, 그렇다고 북핵을 용인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193쪽

남한의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또 하나는 ‘미국이 혹시라도 북한을 때릴지는 몰라도 남쪽에 있는 주한 미군은 총알 하나 동원하지 못한다. 그건 내가 책임지고 막는다. 혹시라도 그렇게 되면 주한미군은 철수해야 한다’는 보장입니다. 북한을 껴안아야 하는 거죠. 그런 상황이 이라크하고 다른 겁니다. 죽어도 북한을 못 때리게 만드는 상황은 국제 사회에서 남한이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남북이 군사 교류를 하고, 감군을 하고, 남북 간의 군축회의를 하고, 국군 장성이 북쪽에 가서 북한이 감군을 제대로 하는지 검열하고, 인민군 장성이 남쪽에 와서 또 남한은 감군을 잘하고 있는지 검열하는 상황이라면 미국이 제 아무리 세계 깡패라고 해도 폭격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194쪽

대한민국 정부나 시민운동 단체가 미국의 정책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미국으로 하여금 함부로 칼을 휘두르지 못하게 막을 수는 있거든요. 국가 이름에 똑같이 ‘코리아’라고 들어가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서 남쪽이 할 수 있는 여지는 굉장히 많죠. 우리가 원칙적인 입장에서 ‘핵무기는 절대 안 돼’라는 이야기도 해야겠지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해도 되는 상황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 한국 정부를 추동하고, 한국 시민사회를 추동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압력을 미국에 가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칼을 휘두르지 못하는 그런 조건을 남북이 같이 만들어내야 하는 거죠.

-195쪽

형법의 간첩조항은 적국으로 규정이 되어 있고, 국가보안법은 반국가 단체에 적용되는데 미국은 적국도 아니고 반국가 단체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미국은 로버트 김을 한국 간첩으로 처벌했어요. 우리는 한국의 국익을, 최고 정보를, 그것뿐만 아니라 정부의 정책 결정을 ‘머리 검은 미국인’들이 들어와서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처벌은 고사하고 적발 내지는 위기의식조차도 없는 거죠. 이라크 파병을 보면서 처음에 느낀 문제의식은 우리 사회에 미국 간첩이 만연해 있다는 것이었는데, 이건 그냥 간첩 수준이 아니에요.(웃음)
-196쪽

이완용도 소신이 컸죠. 그 사람이 일신의 영달만을 위해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송병준은 그랬을지 모르겠지만요(웃음). 노무현 대통령한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제발 역사의 법정에 불려 나오지 말라’는 겁니다. 그나마 노무현 정권의 업적이라면 과거청산을 들 수 있어요. ......그런 노무현이 나중에 과거청산의 법정에 불려나오면 안 되잖아요. 신자유주의적인 거나 노동 문제는 역사의 평가로서 비판을 받겠지만 한미FTA 문제는 청문회 정도가 아니라 과거청산 법정이 열려야 할 사안입니다.
-197쪽

처벌이란 부분을 너무 쉽게 포기했어요. 처벌이 안 되니까 보복이 생기는 거예요. 처벌과 화해는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봅니다. 보복과 처벌이 대립하는 개념이지.
-208쪽

감군 문제는 남쪽보다 북한이 더 절박합니다. 우리는 2년 가지고 썩는다고 하는데 북한은 인구가 우리 절반임에도 불구하고 군인 수는 두 배나 됩니다. 그러니까 복무 기간이 네 배가 되는 겁니다. 걔네는 20대 청춘이 온통 날아가는 거예요. 북한 같이 경제가 어려운 나라에서 선군 정치를 하고 싶어서 합니까? 가장 우수한 노동력이 군대에 다 박혀 있는데요. 북한도 감군하자고 하면 제일 먼저 박수를 칠 겁니다. 비율로 하든지, 동수로 줄이자고 하든지 남북 공동 감군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북 경제가 삽니다.
-215쪽

박근혜 같은 경우는 "몇 번이나 사과해야 하느냐"는 말을 하기도 했는데요. 그거랑 같은 거죠. 일본이 한국한테 사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과를 들으면 들을수록 화가 난다는 거죠. 진짜 사과라면 한 번이면 되는 겁니다. 진짜 사과하는 눈빛과 분위기라면 말없이 다가와서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느낄 수 있고, 마음이 풀릴 수 있는 거죠. 그게 수구세력 입장에서도 불행입니다. 그 짐을 대를 이어서도 물려줄 겁니까?
-218쪽

물론 저도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는 거 바라죠. 그렇지만 거기에 너무 급급해하다가 우리가 진짜로 깊이 있게 반성해야 할 것들을 놓치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외환위기 때 우리가 위기를 근본적으로 극복하지 못했던 이유는 탈출 강박관념 때문이었거든요. 지금의 상황이 어렵지만 탈출 강박관념 때문에 공학적인 묘수풀이에 매달리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보다 진짜 진지한 반성을 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 안에서 성찰의 계를 마련해야 하고요.
-219쪽

매 맞는 여성에게 가서 한반도 평화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건 폭력이죠. 매 맞는 여성에게는 안 맞는 것이 평화인 거고, 배고픈 아이한테는 밥이 평화인 거고, 졸린 사람에게는 잠이 평화인 거죠. 이주 노동자들처럼 추방의 위협에 떨고 있는 사람에게는 "너는 여기서 살 권리가 있어"라고 얘기해주는 것이 평화입니다.
-2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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