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대한민국, 두 개의 현실 - 미국의 식민지 대한민국, 10 vs 90의 소통할 수 없는 현실
지승호 지음, 박노자 외 / 시대의창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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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회가 권위주의에서 벗어났고, 민주화되어 있고, 개인의 자유가 늘어났어요. 그런데 아이들만은 반대잖아요. 지금, 지승호 씨 말대로 훨씬 더 많이 통제되고 관리되고 있어요. 그게 경쟁 때문인데, 참 슬픈 일이죠. 부모들은 아이들 때의 인생이라는 것은 나중에 진짜 인생을 위한 준비기로서만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인생은 매 순간이 중요하고 매순간 세계와 나의 소통이 있는 것이죠.
옛날 군사독재 시절에도 아이들은 막 뛰어놀았어요. 지금은 애들이 감옥의 수인들처럼 생활하죠. 이건 굉장히 끔찍한 일입니다. 양식 있는 성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해야 합니다. 왜 사회는 민주화되었는데, 아이들은 더욱 더 권위주의적인 체제에 살고 있는가 하고 말입니다.
-125쪽

위인전을 보면 그 사회를 알 수 있다고 생각을 해요. 우리 어릴 때 위인전이라는 것은 이순신 장군 같이 국가적 영웅들, 그때는 국가주의 파시즘 시절이었으니까 나라를 지킨 사람들이 위인이었죠. 지금 위인전을 보면 다 돈과 연관이 있는 사람들뿐입니다. IT 산업만 해도 빌게이츠보다 더 위대한 인물들이 있죠. 인터넷 역사에도 보면 그렇구요. 이제는 돈으로 연결되지 않는 사람들은 어린이들한테 위인이 안 되는 겁니다. 이건 끔찍한 일이죠.
-130쪽

우리는 군사 파시즘만 물러나면 점진적으로 진보한다고 봤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았죠. 군사 파시즘이 물러가고, 자본의 파시즘이 시작됐어요. 요즘 부모들이 아이들을 죄수처럼 관리하는 이유도 자본의 파시즘 때문이잖아요. 다들 스스로는 굉장히 자유롭다고 생각하지만 파시즘에 걸려서 꼼짝도 못하며 살고 있습니다. 초고속 인터넷과 최신형 핸드폰이 없으면 한순간도 불안해서 살 수 없죠. 그건 죄수들이지 사람이 아니에요.

파병의 대결론은 국익이었는데, 사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만 국익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죠. FTA만 해도 모든 한국인들에게 다 나쁜 건 아니거든요. 어떤 계급엔 좋고 어떤 계급엔 나쁜 것이죠. 국익이라는 것은 없고 계급의 이익이 있는 겁니다. 그러면 내가 사회에서 어떤 계급인가에 대한 의식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의식이 희박하죠. 우리나라가 부강해지기를 바라고 삼성 휴대폰이 세계에서 최고면 내 자랑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내 일이 아니잖아요. 장년층이 그러는 거야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청년들이 그러면 참 딱해요.
-136쪽

우리나라 극우파들은 너무 재미있어요. 자기 민족에 대한 자긍심이 굉장히 적잖아요. 세상에 사대적인 극우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극우도 아니죠. 유럽의 극우들을 보면 자긍심이 대단하잖아요. 우리나라 극우들은 철저한 기득권과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놈들이에요. 그건 사상도 아니고 신념체계라고 볼 수도 없어요. 순수하게 나쁜 놈들이고 존중할 필요 없이 모조리 쓸어내야 하는 놈들이죠.
-146쪽

황우석 사태는 그런 거죠.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구요.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였어도 문제였다고 봐요. 거짓말인지 진실인지가 본질이 아닙니다. 본질은 다른 데 있어요. 황우석이 영웅이 된 이유는 돈이었죠. 그게 돈이 되는 일이 아니라면 그렇게 될 일도 없었어요. 어느 시대나 돈이 인생이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놀부도 있고, 스쿠루지도 있고.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사회의 대부분이면 그건 더 이상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지옥이지.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런 사람들이 자기들의 사고로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다면 그게 정말 지옥이에요. 황우석 사건은 바로 한국 사회가 그렇다는 걸 적나라하게 드러낸 일이었죠.

... 요즘 젊은 친구들 봐요. 우리가 "쓸데없는 진실 논쟁을 하는 사이에 막대한 이익을 미국이나 유럽에서 선점을 했다"느니 하잖아요. 그걸로 돈 벌어봐야 걔들한테 한 푼도 안 돌아가는데. 그게 다 사회를 계급으로 나누어보지 못하고 국익의 망령에 사로잡혀서 그런 거예요.
-152쪽

군사 파시즘은 인민들에게 뭔가를 심어주려고 했잖아요. 하지만 자본의 파시즘은 반대예요. 아무 의식도 없게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욕망, 욕구, 소비, 외적인 것들로 채우려는 거죠. 인터넷에서 보면 미담이나 화제라는 것도 정말 사소한 것들인데 그걸 가지고 비장한 감동을 느끼기도 하고, 엄청난 연대를 하기도 하고 그러더군요. 정말 감동하고 비장해야 할 일에는 구리다고 관심 없어 하고 말입니다.
-158쪽

노동운동의 목표는 노동자가 자본가가 되는 게 아니에요. 노동자가 자본가 수준으로 사는 게 아니라 사람을 상품으로 만드는 체제에 대해 반대하고 다른 세상을 만드는 데 있죠.
-161쪽

어떤 사람들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면 "대안이 뭐냐?"고 합니다. 그런 얘기는 힘센 놈한테 잡혀서 두들겨 맞고 있는 사람에게 "너, 대안이 뭔데"하는 것과 똑같은 거구요.(웃음) 마치 신자유주의가 경제 정책의 하나인 것처럼 얘기하는 것은 우스운 얘기죠. 그리고 지금 어떤 급진적인 사회주의자도 우리 사회가 미국의 영향이나 신자유주의의 세계화 체제로 재편되어 가는 상황을 손바닥 뒤집듯이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몽상가는 아무도 없어요. 그런데 신자유주의 반대라고 하면 다 그런 줄 알죠. 우리가 말하려는 건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고, 우리가 그 길로 가면 안 되기 때문에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거죠. 알고 보면 좌파적 상상력, 진보적인 비전이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게 아니라 정말 현실적인 거예요. 개혁이 진보라는 거야말로 몽상이고 비현실적인 겁니다.
-162쪽

계급이라는 것은 개념이 아니라 우리의 삶 자체를 뜻하는 말이잖아요. 진보라는 것은 우리 삶을 진짜 변화시키는 것을 말하는 거고, 무엇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까를 생각해 보는 것이구요. 진보 운동의 실제나 사회 변화의 방법 같은 문제에 직면했을 때 논쟁을 통해 ‘비현실적이다, 현실적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지, ‘진보가 안 되니까 개혁’이라는 것은 "중간 계급이하는 놓고 가자. 지금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니까 그 사람들 삶은 파탄나더라도 어느 정도 사는 사람들부터 민주화시키고 개혁을 시키자"는 얘기거든요. 노무현 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실제는 그런 거란 말이에요. 그게 현실적인 건가요? 진보를 외치는 건 몽상이 아니라 가장 분명하게 현실을 말하는 거죠. 비현실적인 게 아니고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162쪽

지성이란 근본적으로 진보적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진보가 아닌데 어떻게 지성일 수 있어요. 유럽 사회를 보면 인텔리들은 좌파들이 많잖아요. 우리 사회는 인텔리 영역이 거의 모두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라서 모조리 우파죠. 미국은 좌․우가 없잖아요. 거기선 민주당이 좌예요, 그러니까 사회가 그 모양이지.
-16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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