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광인 - 상 - 백탑파白塔派, 그 세 번째 이야기 백탑파 시리즈 3
김탁환 지음 / 민음사 / 2007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방각본 살인 사건, 열녀문의 비밀에 이어 세번째 백탑파 시리즈다.  그리고 시리즈의 완결이기도 하다.

이제야 지금까지 읽었던 세편의 시리즈가 모두 이명방이 한참 나이든 뒤 매설가의 자리에서 쓰게 된 소설임을 알게 되었다.  과거를 회상하는 시점으로 자주 나오긴 했지만 의금부 도사 이명방이 매설가가 될 거라곤 생각을 못했던지라 놀랍고 신선했었다.

언제나 사건은 그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의 과제였지만 이번만큼 긴박하게 사건이 돌아간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연쇄 살인범으로 지목된 인물이 바로 이명방 자신이었으니까.

의금부에서 생활한지 십오 년이다.  이제 그도 꽤 잔뼈가 굵은 베테랑이 되었고 줄줄이 거느린 나장들도 많다.  이 정도 누명 쯤은 가볍게 벗을 것만 같았다.  하루의 말미를 주면 진범을 잡아오겠노라며 탑전에서 아뢸만큼 그의 자신감은 대단했다.

그러나, 곧 벽에 부딪힌다.  진범은 따로 있었고, 그는 여전히 살인범의 오명을 쓴 채 몇 시간 남지 않은 목숨줄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화광 김진의 활약이 눈부셨다.  김진이 나타나면 작품 전체에 꽃 배경이 촤르륵 펼쳐지고 꽃 향기도 물씬 나면서 이야기 분위기도 한층 밝아진다.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이명방 대신 그가 시원하게 사건을 해결해 줄 거라는 일종의 '믿음'이 있는 것이다.

한참 줄달음을 치던 이야기는 김진이 도착하면서 대전환을 준비한다.  그리고 앞서 이명방이 추론했던 모든 단서들이 무로 돌아가면서 원점에서 재시작한다.  독자는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이번 이야기에선 정조의 메세지와 박지원의 메세지가 매 장마다 앞머리를 장식했는데, 서로가 너무도 완고히 자신의 주장을 펴고 있지만, 고문과 패관소품을 아끼는 그들의 입장이 결국 완연히 다른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백탑파 서생들은 고문을 강조하며 소품을 버릴 것을 강조하는 임금의 생각에 반대하고 또 처음부터 자신들을 총애했던 그 마음도 실용의 측면에서만 판단하며 섭섭함을 감추지 못한다.  오로지 종친 이명방만이 임금의 총애에 의심을 달지 않으려 애쓴다.

사실, 그 후 200년도 더 뒤의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정조가 일으킨 '문체반정'의 의미와 파급 효과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가 없다.  작가가 이 부분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하고 거기서부터 세 시리즈가 나오긴 했지만 작가의 설명도 사실 충분치 않다. (독자가 이해하기에는 어렵다.)

나로서는 당시 노론 일문의 독재를 막기 위한 어떤 정치적 계산도 포함된 것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역시도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내가 평소 생각해왔던 정조의 이미지보다 많이 차갑고, 그리고 무섭게 그려진 것은 사실이라는 것.  그래서 한편으로는 백탑파 서생들처럼 정조의 반응들이 나 역시 섭섭하게 느껴졌다.  워낙에 똑똑한 군주라는 것은 잘 드러났지만 인간미는 잘 보여지지 않는... 그것이 작가가 그리고자 했던 정조의 인상이라면, 또 독자로 하여금 서운한 감정까지 느끼게 했다면 작품 속 캐릭터로서 꽤나 입체감 있게 그려진 것은 사실이다.  다만 역사적 인물인 까닭에 저머다 기대하는 이미지가 있는 것은 역시 무시할 수 없겠지만.

추리 소설답게 사건을 잘 얽었고, 막바지에 이르러 풀어놓았지만, 김진 한 사람의 일장 연설로 답을 끌어내기에는 끝심이 부족한 편이었다.  그의 설명에 100% 납득도 가지 않았고 말이다.

그렇다 해도 의금부 친국 장면 등등은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이 일 정도로 사실적으로 그려져서 이명방의 고초가 무섭고도 안타깝게 느껴졌다.  또한 김진이 굳이 과거시험이 끝난 직후를 진짜 살인범을 파헤치는 해결의 장으로 삼은 이유에 박수를 쳐주고 싶었다.  상대가 임금이라 할지라도 할 말은 꼭 하는 김진의 성정을 잘 드러낸 에피소드였다.

<북학의>를 읽을 때 청나라에 대한 열망과 감탄이 너무 지나쳐서 자국에 대한 애정을 거의 느낄 수 없었는데, 오히려 이 책에서 표현되어지는 백탑파 서생들은 학문에 대한 열정과 탑전을 향한 충정과, 그리고 민초를 향한 애정에 있어서도 충만함을 느꼈으니, 실제 그들이 썼던 저작물에서보다도 더 인간적인 느낌으로 독자를 향해 달려온 셈이다.

흥미진진했던 시대 배경으로 보건대,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내어도 좋겠지만,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할 것.  백탑파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내는 게 서로에게 좋은 인상으로 남을 것이다.  그들이 한 평생을 달렸던 조선이라는 작은 나라, 그 안에서 크게 쓰임 받을 뻔했던 인물들, 그리고 그 이상으로 큰 족적으로 남은 그들의 자취들... 아름답고 멋지게 기억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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