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 고뇌의 레바논과 희망의 헤즈볼라, Pamphlet 002
박노해 지음 / 느린걸음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쓰나미가 덮쳤던 인도네시아를 다녀와서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를 썼던 박노해씨.  이번엔 이스라엘의 침공을 받은 레바논 현장을 다녀와서 이 책을 썼다.  우리에겐 잊혀졌고 묻혀진 진실을 그의 사진과 글이 적나라하게 양심을 파고든다.

작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했을 때 연일 뉴스를 장식하던 소식들에 혀를 차며 마음 아파하기도 했지만, 어느덧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전후 복구는 어찌 하고 있는지 우리는 까맣게 잊어가고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이, 아무 가책도 없이.

전쟁의 시작은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전쟁의 대상은 '레바논'이 아니었고 무장정치조직 '헤즈볼라'였다.  마치 탈레반처럼 불법 무장 단체를 떠올리기 쉽지만, 헤즈볼라는 레바논의 합법적 정당이었고, 전체 인구의 70%의 지지를 받는 정치조직이었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남부 레바논의 가난한 이들이었으며, 이스라엘에게 아무런 위험도 위협도 되지 않는, 그저 평범한 민중들이었다는 것... UN 대사관으로 몸을 피신해 보지만 거기서도 구조를 바랄 수 없었던 그들에게, 온 세상은 등을 돌린 '남'이었다.  누구도 그들의 아픔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았다.  한밤중에 박노해씨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누가 그들을 그렇게 외롭고, 서럽게 죽어가게 만들었을까.  우린 어찌 귀막고 입막고 살았던 것일까.  그 사연 속에 우리 사는 세상의 비인간성이, 무가치함이 다 드러나 있었다.  그 와중에, 어둠 속에 빛이 되어준 이들의 존재감이 유독 빛이 난다.  박노해씨가 전달한 나눔 공동체의 성금과 정성, 기도 한자락들은 그곳에서 낯선 외국인을 향해 경계와 방어의 눈빛을 풀어주기까지 했던 숨은 공로자가 되기도 하였다.

무기라는 것이 얼마나 빠르게 업그레이드가 되는지, 목표로 정한 표적을 조금의 오차도 없이 바로 피격하는 모습에서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그 목표라는 것이 부자는 모두 비켜가고 항의할 곳 없는 가난한 민중들이라는 것, 기독교는 모두 비켜가고 이슬람 교도만 공격했다는 것 등에서는 적개심이 일었다.  이스라엘이 사용한 폭탄은 금속이 아닌 플라스틱인지라 사람 몸에 박히면 그 파편의 위치를 엑스레이로 판독할 수가 없는 무서운 무기.  게다가 그들이 박아놓은 지뢰를 제거하기 위해서 지뢰의 지도를 요구하지만 절대로 내놓지 않고 있다는 것... 적이라지만 어찌 이렇게 악랄할까.  게다가 그들이 '적'으로 삼은 사람들은 아무 죄가 없는 것을...

사람만 상한 것이 아니었다.  일부러 폭격시킨 주유소와 발전소.  그 덕분에 쏟아진 기름은 지중해를 끼고 있는 레바논의 아름다운 모래사장과 해변을 시커멓게 오염시켜 놓았다.  이들은 세계의 관광객들을 잃어버렸고, 유명한 생선 요리까지도 잃어버렸다.  수천년 문화유적과 청정해역을 자랑하던 곳은 이제 폐허로 돌변해 버렸다.  레바논 국민뿐 아니라 인류의 소중한 유산까지도, 이스라엘은 무참히 짓밟아버린 것이다.  역시나 오차 없는 그들의 무기로 말이다.

10년이 멀다하고 다시 찾아온 전쟁으로 레바논인들은 가족을 잃고 이웃을 잃고 삶의 터전을 잃었다.  아이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잃었지만 배우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는 여전히 불타올라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빈병을 주워 돈을 모은다.  죽어버린 가족들의 사진을 끌어안고 우는 아이들.  그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든 보듬어 보고자 박노해씨는 '그림 치유'를 선택한다.  지금 마음 속의 생각들을, 소망을, 기도를 그림으로 담아내라고 했을 때, 아이들이 보여준 그림세계, 그들의 마음은 놀랍고도 아름답고 또 그만큼이나 슬펐다.





그런데 아이들은 증오와 미움보다도 '평화'를 더 갈망했고 또 추구했다.  이토록 어린 아이들도 사무치게 알고 있는 평화의 소중함을, 저들은... 어찌 이다지도 알지 못할까...

박노해씨는 헤즈볼라의 최고 지도부 중 한 사람인 나와프 무사위 국제국장과 면담시간을 가졌다.  30분 간 예정되어 있던 두 사람의 대화는 두시간을 훌쩍 뛰어넘으며 인류애를 나누었는데, '헤즈볼라'의 정신과 미래를 열변하는 그의 이야기에서 감동을 넘어선 전율을 느꼈다.  우리가 '정치'하면 흔히 떠올리는 그 시큼하고 더러운 불편함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깨끗하고도 투명한, 그리고 희망을 안겨주는 약속이 그들에게 있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침략에 대해서만 무력으로 맞설 뿐, 레바논 국민들의 안녕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정치 집단이다.  심지어 이스라엘과 전투를 벌일 때 병원건물을 방패막이로 쓰면 애꿎은 사람들이 다칠까 봐, 그 엄폐물을 적에게 내어주고 벌판에서 제 몸을 방패막이 삼아 싸웠던 일도 평범한 일화에 속한다.   적에게 한 약속까지도 지켜야 한다고 믿는 그들을 악용한 이스라엘은 지뢰를 설치해 놓은 곳으로 이들을 유인하는데, 헤즈볼라의 약속은 신성해야 한다며 죽음이 버티고 선 그 자리로 가겠다는 젊은이들이 쇄도할 정도였으니...

이러한 자기 희생과 정직으로 헤즈볼라는 레바논 전체 인구의 70% 이상의 지지를 받고 있다.  정치인들이 존경을 받는 세상.  적과 한 약속까지도 지키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스스로 입증하는 정당.  이들이 추진하는 기업활동도 존경을 받는 대상.  자본주의를 활용하면서도 진정한 평화와 공존을 추구할 수 있다니, 놀람에 놀람을 거듭하고 말았다.

그가 헤즈볼라다

말을 신성하게 하는 자
가난한 약자와 함께하는 자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는 자
적에게도 약속을 지키는 자
살아서 즐겁고 죽어서 빛나는 자
자신의 피로 평화를 심어 가는 자
하느님 이외에는 결코 무릎 꿇지 않는 자
바로 그 자신이다
바로 그 자신이다

이렇게 훌륭한 헤즈볼라를 이스라엘은 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었을까.  그들의 목표는 정말 '헤즈볼라'였을까.  설마 하니 '돈' 때문은 아니겠지?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너무 화가 날 것 같아서... 어떤 이유를 제시하더라도 화가 아니 날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단순히 '돈' 때문은 아니길 바랐다.  너희의 그 잘난 '성지' 때문이라고 한다면 차라리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김 없이 목표는 '석유'였고, 저들의 자원이었다.  또 거기에 부채질을 한 것은 미국이었고, 그들의 목표 역시 석유로 통하는 경제적 이익이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직접적인 행동으로 레바논을 찢어 놓았지만, 그들의 침략에 대하여 침묵으로 일관한 우리의 잘난 나라와 그 이웃들은 그 무관심으로 레바논의 상처를 방관하였다.   강대국의 침략과 식민지살이까지 경험했고 또 분단국가로 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남의 아픔을 너무 매몰차게 나몰라라 하였던 것이다.  우리의 침묵이, 훗날 어떤 식으로든 되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우리를 등돌릴 수 있는 저들을 원망할 수 없다는 것을, 뒤늦은 후회로 깨닫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또 다시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 안 되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야 하는 우리들이지만, 이런 일들이 또 다시 벌어진다면, 그때는 외면하지 않는 우리가 되기를... 우리의 작은 도움이 누군가의 간절한 희망이 될 수 있기를...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공포에 울게 하지 않고, 우리가 여기에 있다고 두 순 가득 내밀어 줄 수 있기를, 그런 우리가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희망한다.

침묵의 나라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할 때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 성취한

자랑스런 나의 조국은 침묵했다


까나 마을에 폭격이 퍼부어지고

36명의 아이들이 학살당할 때

말 잘하는 나의 정부는 침묵했다


많은 나라들이 가장 강력한 말로
이스라엘의 학살을 규탄할 때
싸움 잘하는 나의 국회는 침묵했다


민주와 개혁을 거침없이 외치던

나의 대통령과 지도자들은

금처럼 찬란하게 침묵했다


코리아는 침묵의 나라
불의와 학살 앞에서는
금처럼 침묵하는 나라


일본이 독도를 건드릴 때마다
국제 심판이 오심을 내릴 때마다
노조가 파업을 벌일 때마다
즉각 애국투사로 소리치면서도


학교에서 내 아이가 무시당하고

밥집에서 내 순서가 뒤로 밀리고

거리에서 내 차가 추월당하면

즉각 정의의 투사로 돌변하면서도


대낮에 남의 영토를 침략하고

아이들과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야만 앞에서는
금빛 침묵으로 동조하는 나라

 

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코리아여
국익 앞에만 다이내믹한 나라여
네가 짓밟히고 피에 젖어 울부짖을 때
세계는 너의 침묵을 찬란히 돌려준다면

<여기에는 아무도 없는 것만 같아요>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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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기 2007-10-16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눈물이 나려고 한다. 나 저 책 집에 갖다놓고 벌써 몇달째 안 읽고 있는데.

헤즈볼라가 무조건 훌륭하다고 할수만은 없겠지만..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고
"여기에 우리가 있어요" 하는 말을 들으니 더 눈물이 나려고 하네.

마노아 2007-10-16 22:55   좋아요 0 | URL
그곳에도, 이곳에도, 우리가 손내밀 사람이 참 많이 있죠. 외면하지 않는 우리를 날마다 꿈꿔요.

2007-10-16 16: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10-16 22:5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