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지 10 - 나당대전 김정산 삼한지 10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드디어 마지막 권을 다 읽었다. 모질게 읽어냈다는 느낌이다.

처음에 1권, 2권을 시작할 때는 지루한 감이 있었는데 중간 중간 크게 재밌어지다가 5권을 넘어서면서부터는 꽤 매력적인 읽기가 되어 있었다.  언제 열권을 다 읽나 싶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빨리 읽어낼 수 있었다. (만세!)

9권에서 백제와 고구려가 이미 망했지만, 그 유민들의 부흥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다.  백제 부흥운동을 끝가지 수행하려고 애쓴 인물은 흑치상지였는데, 끝내 신라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하고 부여융과 함께 당으로 망명 길에 오른다.  그 과정에서 신라 명장 죽지와 대치하게 된 흑치상지.  창으로 솜씨를 겨루었지만 승부는 나지 않았고, 흑치상지는 길을 비켜줄 것을 간곡히 부탁한다.  백발 노장 죽지는 흑치상지의 실력과 인물됨이 아까워 신라의 명장으로 거듭나기를 당부하지만, 그는 쫓겨 도망가는 임금을 배신할 수 없다고 한다.  그 순절한 마음을 이해한 죽지는 순순히 길을 비워준다.  다분히 소설적인 이야기 진행일 수도 있겠는데,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면, 길을 비켜준 죽지의 마음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적으로 만났지만 서로 장부의 기개를 높이 샀다고 해야 할까... 한 임금 아래에서 그들이 뛸 수 있었다면 멋진 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 천년 그 이상의 시간을 뛰어넘은 내게도 이해가 가고도 남음이 있다.

아무튼 이런 과정을 거쳐서 백제는 부흥의 씨앗도 말라버리고 신라의 남역 평정은 완수된다.  백제 멸망 12년 후인 672년에.

그러나 이제 가장 큰 적은 오랜 동지였던 당나라가 되고 말았다.  신라 내에는 친당파가 너무도 많았다.  오랫동안 당나라에 숙위사로 자식들을 보내어 왔었고, 당나라가 당시 너무 큰 나라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그들의 두려움과 불안도 이해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나라의 중요한 결정 앞에서 그들의 처신은 너무나 비겁했다.  생각해 보면, 고려 시대때는 친원파가 있었고, 조선에선 친명파, 근현대로 넘어올 때는 친일파가 있었고, 오늘날은 지나친 친미파가 존재한다.  뭐든 넘치는 것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거늘, 큰나라를 너무 두려워하거나 혹은 사모하여 제 나라를 저버리는 일은 그 역사가 오래되고도 깊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 와중에 신라의 큰 별 김유신이 673년, 79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역사 속에서 뜨고 졌던 많은 영웅/천재들 중에는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불운아들도 많았는데, 김유신은 당대에 이름을 높이 세웠고, 죽어서도 꺼지지 않는 명장의 이름을 새겼다.  뿐아니라 하늘이 허락한 천수까지 누렸으니 그 자신은 물론이요, 신라... 나아가 우리 역사의 큰 복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동시대에 같은 시간을 누렸던 많은 이들이 한순간 부러워지기도 한다. (로마의 카이사르를 보며 느꼈던 그 마음이랄까.  조선의 이순신 같은 느낌?)

그는 땅보다도 사람이 중하다고 했고, 그 말을 실천하며 살았다.  신라와 가야의 공존을 끌어낸 장본인이며 삼한통일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한 사람이다.  비록 삼한 통일을 눈으로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는 그 위업의 달성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숱한 곡절과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신라는 끝끝내 나당전쟁에 종지부를 찍고 삼한 통일을 이루어낸다.  전쟁 막바지 가장 위급한 때에는 사직을 청했던 친당파들이 줄줄이 제발로 돌아와 다시 싸우겠다고 나서는 모습은 진한 감동을 자아냈다.  지극한 열정이, 목표의식이, 갈망이 결국 민심을, 하늘을 움직인 것이리라.

8년 나당전쟁의 끝을 화려하게 장식한 인물은 유신의 서자 시득이었다.  그동안 김유신의 서자에 관한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그 존재를 알게 되었다.  반가운 만남이었다.

당나라의 장수 설인귀는 마지막 싸움에서 도망쳤다.  그러나 그의 이름은 중국의 전설 속에서 재포장되어 계속 이어져 내렸으니, 신라와의 전쟁의 패배가 당나라/중국에게 얼마나 큰 오욕이었는지 알만한 대목이다.(오죽하면 거짓 전설을 만들어냈을까.)

이로써 700년에 걸친 전국 시대는 종결이 났다.  중국이나 일본에 대해서 戰國시대란 표현을 쓰곤 했는데, 생각해 보면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각축을 벌인 그 시간도 전국시대로 보아도 무방할 듯 싶다.

책의 말미에는 전쟁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서 짧은 언급들이 있는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들이 차례로 하늘의 부름을 받는다.  게 중에는 아름다운 죽음도 있었으나 흠돌처럼 역모로 생을 마감한 갑갑한 이도 있었다.  그런데 재밌게도 대체로 오래들 산 편이었다.  오히려 근대 시기의 사람들보다 더 장수한 듯 보이니, 늘 무기를 들고 살아야 했던 시절이었던지라 자체적으로 '운동'이 되었던 것일까?

문무왕의 마지막은 장엄하기까지 했다.  그의 유언은 과연 삼한 통일의 주인공다웠으니... 장례 절차를 간소화하여 백성의 부담을 덜어주고자 한 것은, 전란으로 지친 민중들을 돌보고자 한 애민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밖에 강수가 작성한 명문장도 작품 말미 부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참으로 인재가 많았던 그 시절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었다.

열권이나 되는 책을 손에서 놓고 보니 어쩐지 아쉬움이 든다.  참으로 치열했던 역사의 한 부분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은 내게도 아름다운 기억이 될 것이다.  길어서 쉽게 엄두가 안 나겠지만, 차분하게 읽어두면 역사 공부에도 도움이 될 것이고, 소설로 읽는다 할지라도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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