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한지 5 - 여왕시대 김정산 삼한지 5
김정산 지음 / 예담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이번 편에서는 3편과 같은 굵직한 싸움이 등장한 것은 아니었지만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가 등장해서인지 더 살갑고 가깝게 느껴졌다.

김춘추와 김유신의 우정을 뛰어넘은 큰 포부가 보기 좋았고, 그들도 인간인지라 늘 영웅의 풍모가 지닌 것이 아니라 때로 인간적인 실수도 하고 스스로 자만을 떨다가 부끄러움을 느끼기도 하는 모습에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었다.

김유신의 여동생 문희와 보희의 꿈 사건은 워낙 유명한데, 김춘추의 용모가 그렇게 박색일 거라곤 생각을 못했다.  단순히 보희가 운이 나빴던 것이 아니라 문희의 선견지명이 따라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했다.

화랑세기를 살펴보지 않은 채 삼국사기만 참고했더라면, 김유신이 여동생을 화형시키는 생쇼(!)를 하는 대목에서 김춘추를 나무라는 이가 '선덕여왕'이었겠지만, 이 작품은 화랑세기를 참고한 결과 당시의 연배가 아직 '공주'시절일 때를 제대로 짚어내었다.

또 김춘추가 몰염치하게 문희를 나몰라라 한 것이 아니라, 김유신과 작당을 하고 덕만공주가 신라인과 가야인을 두루 포용할 인재인지를 떠보는 시험장으로 만든 것은 작가의 재치가 여간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오히려 더 설득력 있는 전개라고나 할까.

김유신이 고구려군과의 싸움에서 보여준 면모는 가히 불세출의 영웅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가 승리를 이뤄낸 사서의 기록에 의지해서 이만큼의 현장감을 보여준 것은 작가의 필력 덕분이리라.  적어도 용장 이상은 되고도 남음을 독자들은 작품을 통해서 공감할 것이다.

작품 속에서 '화포'가 등장한 적이 있는데, 화약이 발명된 것이 그로부터 몇 백 년 뒤의 일이므로 '화포'라는 표현은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 화포가 내가 아는 그 화포가 맞다면 말이다.

또 작품 속에서 백제 무왕이 사비가 너무 막힌 곳이라 다시 웅진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리가 흔히 국사책에서 배우기를 '웅진'은 방어에 유리하나 외부 진출이 어려워 사비로 수도를 옮겼다고 했기에 어느 쪽 의견이 맞는 것인지 혼동이 왔다.  실제로 무왕이 웅진으로 갔다가 사정이 여의치 않아 다시 사비로 돌아온 것은 사실인데 두 지역의 형세에 대한 설명은 작품 속에서 미진했거나 혹은 혼동한 것이 아닐까 싶다.

'사택기루'란 이름이 등장했는데 드라마 '서동요'에서 신라에서 백제로 넘어온 첩자의 이름과 같아서 깜짝 놀랐다.  실존 인물의 이름을 드라마 작가가 차용해서 쓴 것일 텐데, 실제 사택기루의 연배는 무왕의 할아버지뻘이니 조금 웃음도 나왔다.

김춘추와 연개소문, 그리고 성충은 모두 당나라에서 지기로 지낸 사이들이다.  그런 그들이 각자 고국에 돌아가서는 서로 으르렁거리는 사이가 되어야 했으니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수 있겠다.

무왕은 아들 의자와 풍에게 질문을 던져서 그들의 의중을 떠보는 장면이 있었는데, 의자의 주장은 왕실의 권위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둘째 풍의 주장은 원칙을 지켜 옳고 그름을 분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풍의 주장이 옳게 느껴지지만 임금 장은 오히려 의자의 손을 들어준다.  정치의 비정함과 무정함이 눈에 보이는 대목이었다.

이번 편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성충이 무왕을 만나서 간하는 부분이었다.  335페이지의 일부를 옮기면 이렇다.

   
  대왕께서는 초원에서 풀을 뜯는 남의 짐승들을 모두 죽이고 내 집 소와 양들로만 초원을 채우려 하십니까?  
   

원론적인 얘기이긴 하지만, 나로서는 소름이 돋는 부분이기도 했다.  모두가 국경을 앞세워 창칼로 경계를 하고 서로 땅을 차지하지 못해 안간 힘을 쓰고 있지만, 서로 창칼을 내려놓고 두 손을 맞잡고 사이좋게 지낸다면 피차에 피흘릴 일이 없을 터인데, 인간의 욕심이 하 무섭고 허무하기만 하다.  이는 고대의 역사에만 접목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깊은 깨달음을 주는 메시지라고 하겠다.

그러나 저런 혜안을 가진 성충도 훗날 의자왕 대에 이르러서 충언을 알아듣지 못하는 군주와 함께 백제의 몰락을 목도하게 되니 역시 애석한 일이 아닐 수 없겠다.

삼한지를 읽으면서 그저 옛 이야기 듣듯이 접근할 것이 아니라, 그 시절을 통해서 오늘날에까지 통하는 깊은 메시지를 이해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아니겠는가.

덧글)천관녀에 대한 얘기가 나오다 말았는데, 김유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했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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