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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 고급 양장케이스 초회한정판 (2disc)
이창동 감독, 전도연.송강호 외 출연 / 아트서비스 / 2007년 9월
평점 :
품절
영화가 무거울 거라는 이야기는 들었고 종교를 소재로 했기 때문에 불편할 수 있을 거란 경고도 들었지만, 나는 영화가 궁금했다. 전도연과 송강호라는 걸출한 두 배우를 쓰고도 개봉 직전까지 별다른 소문도 안 낸 게 오히려 신뢰를 더 가중시켰을 것이다.
밀.양.
비밀의 햇볕.
아무 연고도 없는 밀양에, 서울 살던 신애가 아들을 데리고 들어간다. 남편의 고향이었고, 남편이 살고 싶어하던 곳이었기에. 그 남편은 이미 죽고 없는데... 신애는 그렇게 떠났다. 영화 초반에는 신애의 그 선택이 불만스러웠다. 서울엔 아는 사람이 많아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지만, 아무도 모르는 그곳도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지 목격하면서 내 불만은 더 가중된다. 그렇지만, 영화를 끝까지 보면서 생각은 바뀌어 간다. 오죽하면 그곳에 가고 싶어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 신이 인간을 시험하고자 한다면 장소가 문제될 린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신애는, 자기 최면이 필요했다. 외도를 했던 남편을 향해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변명하고, 땅도 너끈히 살 수 있는 돈많은 여자인 척을 해서 스스로를 지키려고 했다. 아들이 죽고 난 뒤에는 신앙에 의지해 구원 받았다고 믿고 살고 싶었다. 진정한 구원은 그녀에게 아직 도착하지 않았는데, 그렇게 믿지 않고는 살 수 없었기에, 그녀는 그렇게 했다. 그래서, 그녀의 배신은 더욱 컸고, 분노 역시 깊었다.
신애는 아들을 죽인 유괴범과 경찰서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먼저 피해버린 자신이 싫었다. 괜히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말을 해서 아들을 범죄의 현장에 노출시킨 것보다, 그 순간 먼저 눈 돌려 버리고 움츠러 들었던 자신이 더 미웠다. 그 마음이, 어쩐지 이해가 갔다. 명확히 말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마음만은 진하게 전해진다.
전도연이 정말 연기를 잘했다고 느낀 것은, 그녀가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활발한 활동을 할 때였다. 그녀의 표정은 밝게 웃고 있었지만 '해탈'에 가까운 평안이 느껴지질 않았다. 그래서 보고 있는 동안 불안했다. 저러다 폭발하지 싶어서...
그리고, 마침내 그녀는 자기최면의 종말을 맞게 된다. 스스로 원수를 용서함으로써 자기 구원을 확인하고 우월한 자신을 인정받고 싶었지만, 그녀가 용서하려 했던 살인자는 이미 신으로부터 용서를 받아 평온을 찾은 뒤였고, 그녀가 끼어들 자리는 없었다. 처음부터 그녀의 몫이 아니었다는 것을, 그녀가 어떻게 용납할 수 있을까. 신은 그가 죄인이건 의인이건 구별하지 않고 똑같이 구원해줄 수 있는 상대인 것을... 한낱 인간인 그녀가, 우리가 어떻게 그 섭리를 이해할까.
이제 그녀의 방황은 예정된 순서였다. 행패를 부리고, 예배를 방해하고 '거짓말이야!'라고 외치고 이웃집 장로님을 유혹하기도 하지만, 그녀가 던진 도전은 언제나 자신의 실패로 돌아왔다. 죽음 끝에서 돌아온 새생명의 시작 점에서 살인자의 딸을 만나는 장면은 그녀와 마찬가지로 아찔함을 느껴야 했다. 그들은 미안하다고 했다. 그 미안한 마음이 진심임을 알지만, 미안해한다고 해서 죽은 아들이 살아돌아오진 않는다. 그들은 미안하다고 말하고 마음에 자유를 얻을 수 있어도, 신애는 그렇지 못하다. 신애는 미용실 의자에 더 이상 앉아있을 수가 없다. 박차고 일어나지만, 어디서 위로를 받아야 할 지 알 수 없다.
그러한 그녀 곁에,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남자 종찬이 있다. 많이 배웠을 것 같지 않고, 투박하고 멋도 모르는 사내지만, 진심만은 늘 일정한 밀도를 자랑하는 남자다. 그녀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다닌 교회지만, 나름대로 은혜도 받고 마음의 평안도 얻었다는 이 남자는, 신애에게 신이 허락한 선물이었다.
그녀의 짝짝이 머리카락이 잘 잘라질 수 있게 거울을 들어주는 남자, 토라진 그녀의 뒤를 따라와 말없이 함께 있어줄 남자...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따라 영화의 마지막 컷은 마당 한켠에 쏟아지는 한조각 햇볕에서 머무른다.
그 햇볕... 비밀을 품어안은 햇볕... 신은, 그녀의 마음이 평온을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장치를 마련해 놓으셨다. 그녀가 알아차렸든 못 알아차렸든... 혹은 인정하든 하지 않든...
그 따스한 볕에 그녀가, 또 모든 인간이 함께 위로 받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