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나무 우리시대의 논리 5
김진숙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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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정말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박하사탕>의 주인공 영호처럼 처절한 가책 끝에 자살이라도 했을까. 국민의 대표로 국회에도 들어가고 정부 요직에도 들어가고 언론에도 들어갈 만치 그들은 개과천선한 걸까. 그들이 반성하는 말이나 사죄하는 말을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도대체 누가 그들을 용서한 걸까.
그들은 이제 더 이상 음지에서 번뜩거릴 필요가 없어졌다. 문민정부, 국민의정부를 거치면서 그 눈빛들은 당당히 합법화되었으니까. 세상이 달라졌다고 얼마나 좋아졌냐고 믿어버리는 꼭 그만큼씩 그들은 자란다. 우리 머릿속에서 우리 가슴속에서 우리 눈 속에서.
-32쪽

회사 옥상에 높다랗게 붙어 있던 ‘수출만이 살길이다’라는 큰 간판이 언젠가 ‘수출강국’으로 바뀌어도 전혀 강하지 못했던 아이들은 그 간판 아래 짓눌린 채 버려진 배추 잎사귀처럼 누렇게 시들어 가고 있었다.
-39쪽

더군다나 나는 어쩌자고 겨우 열아홉 살이었던 것이다. 순진하고 세상 물정을 몰라서라기보단, 무력했다. 무력하기 짝이 없다 보면 타협하게 되고, 타협에 길들여지다 보면 그게 사는 요령이라고 믿게 된다. 인간임을 끊임없이 부정당하다 보면 스스로 부정하게 되고, 오로지 연명하는 일이 지상 과제이자 존재 이유인 이들에게 인간의 품위와 계급적 자존감이란 깨달을수록 성가신 일일 뿐이다.

요즘 십대들이 무섭다지만 그때 십대들이 더 무서웠다. 먹고사는 일에 목숨 걸었던 그 무서운 십대들이 결국은 독재를 유지시켰던 균주였고 지금도 먹고살게만 해 준다면 인권이나 환경이나 인간에 대한 예의 같은 건 삽시간에 나발이 되고 마니까.
먹고 살기 위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넘어간 일이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죽고 싶도록 부끄러웠으나 내가 무슨 힘이 있냐는 체험과 타협한 일은 오죽이나 많았겠는가.
-53쪽

출근을 재촉하는 그들의 처진 어깨가 오늘은 서글퍼 보이지만, 묵묵히 침묵의 강을 건너는 그들에게서 나는 거역할 수 없는 희망을 읽는다. 굴종의 강을 건너 본 사람만이, 그 강물이 다디단 꿀물이 아니라 빠져 들수록 깊디깊은 오욕의 수렁임을 안 것이기에......
-92쪽

아들만 둘을 낳은 부모에게 "자녀가 몇입니까."라고 물으면 "아들 둘입니다."하지만 반대의 경우엔 "딸만 둘입니다."한다지 않던가. 어쩌면 이 문제는 사상이나 운동성으로만 판단할 수 없는 본능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107쪽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그 천금같은 사람들이 되돌아올 수 있다면,
그 단단한 어깨를, 그 순박한 웃음을,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자본이 주인인 나라에서,
자본의 천국인 나라에서, 어쩌자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꿈을 감히 품었단 말입니까?
어쩌자고 그렇게 착하고, 어쩌자고 그렇게 우직했단 말입니까?
-111쪽

노동 해방은 하루아침에 오는 것도 아니고 자본가들이 우리에게 베푸는 것은 더더구나 아닌, 우리가 투쟁으로 쟁취할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이 땅 천만 노동자의 조직적 단결이 있을 때만 가능하다는 염원이 하나가 되어 마침내 올려졌던 전노협의 깃발.
적들은 당신으로부터 그 깃발을 빼앗으려 했지만 당신은 죽음으로 기필코 그 깃발을 지켜 내셨습니다.
-116쪽

박창수 열사는 1981년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배관공으로 입사하여, 1987년 노동조합 활동을 시작으로 1990년 7월 노동조합 위원장 선거에서 93% 찬성이라는 신화적인 지지를 얻고 당선됨으로써 그동안의 어용노조 역사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듬해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산하 부산지역노동조합총연합 부의장으로 선출되었고, 대우조선노조 파업과 관련, 3자개입 혐의로 구속되어 서울 구치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구치소 안에서 의문의 부상을 입고 안양병원에 입원했다가 이틀 만에 병원 마당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1991년 5월 6일). 그때 그의 나이 서른셋이었다. 안기부의 전노협 탈퇴 압력에 저항하다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나 노태우 정권은 시신이 안치된 영안실 벽을 부수고 열사의 주검을 탈취, 부검 후 ‘자살’이라고 발표하여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장례식은 최초의 전국노동자장으로 치러졌으며, 박창수 열사의 죽음은 그해 노동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118쪽

21년 된 노동자의 임금이 105만 원, 세금 떼면 80만 원, 그마저도 가압류로 12만 원. 129일을 크레인에 매달려 절규를 해도, 늙은 노동자가 88일을 애원해도, 청와대․노동부․국회의원 누구 하나 코빼기 내미는 놈이 없었습니다.
-120쪽

애비 잘 만난 조양호, 조남호, 조수호, 조강호는 태어날 때부터 회장님, 부회장님으로 세자 책봉받는 나라. 이병철 회장님의 아들이 이건희 회장님으로 재계 순위 1위가 되고, 또 그 아들 이재용 상무님이 2위가 되는 나라. 정주영 회장님의 아들이 정몽구 회장님이 되고, 또 그 아들 정의선 부사장님이 재계 순ㅇ뉘 4위가 되는 나라.
태어날 때부터 그 순서는 이미 다 점지되고, 골프나 치고 해외로 수백 억씩 빼돌리고, 한 달 수천만 원을 써도 재산이 오히려 늘어나는 그들이 보기에 한 달 100만 원을 벌겠다고 숨도 쉴 수 없고 언제 폭발할지도 모르는 탱크 안에서 벌레처럼 기어 다니는 우리가 얼마나 우스웠겠습니까? 순이익 수백 억이 나고 주식만 가지고 있으면 수십 억이 배당금으로 저절로 굴러들어오는데, 2년치 임금 7만 5,000원을 올리겠다고 크레인까지 기어올라 간 그 사내가 얼마나 불가사의했겠습니까?
-121쪽

비자금으로, 탈세로 감방을 살고도, 징계는커녕ㄴ 여전히 회장님인 그들이 보기에, 동료들 정리해고 막겠다고 직장에게 맞서다 해고된 노동자가 징계 철회를 주장하는 게 얼마나 가소로웠겠습니까? 100만 원 주던 노동자 잘라 내면 70만 원만 줘도 하청으로 줄줄이 들어오는 게 얼마나 신통했겠습니까? 철의 노동자를 외치며 수백 명이 달려들다가도 고작해야 석 달만 버티면 한결 순해져서 다시 그들 품으로 돌아오는데, 그게 또 얼마나 같잖았겠습니까?
‘조선강국’을 위해 한 해 수십 명의 노동자가 골반 압착으로, 두부 협착으로 죽어 가는 나라. ‘물류강국’을 위해 또 수십 명의 화물 노동자가 길바닥에 사자밥을 깔아야 하는 나라. 섬유 도시 대구, 전자 도시 구미, 자동차 도시 울산, 화학 도시 여수, 온산. 그 허황한 이름들을 위해 노동자의 목숨이 바쳐지고 그들의 뼈가 쌓여 갈수록 자본의 아성이 점점 높아지는 나라.
쉰이 넘은 농민은 남의 나라에 가서 제 심장에 칼을 꽂고 마지막 유언마저 영어로 남겨야 하는, 참으로 세계화된 나라. 전 자본주의가 정말 싫습니다. 이제 정말 소름 끼치게 무섭습니다.
-121쪽

1970년에 죽은 전태일의 유서와, 세기를 건너뛴 2003년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두산중공업 배달호의 유서와, 지역을 건너뛴 한진중공업 김주익의 유서가 같은 나라. 민주당사에서 농성하던 조수원과, 크레인 위에서 농성하던 김주익이 죽는 방식이 같은 나라.
세기를 넘어, 지역을 넘어, 국경을 넘어, 업종을 넘어, 자자손손 대물림하는 자본의 연대는 이렇게 강고한데 우리는 얼마나 연대하고 있습니까? 우리들의 연대는 얼마나 강고합니까? 비정규직을, 장애인을, 농민을, 여성을, 그들을 외면한 채 우린 자본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소름끼치고, 아무리 치가 떨려도 우린 단 하루도 저들을 이길 수 없습니다.
저들이 옳아서 이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연대하지 않으므로 깨지는 겁니다. 만날 우리만 죽고 천 날 우리만 깨집니다. 아무리 통곡하고 몸부림을 쳐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한시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 억장 무너지는 분노를,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이 억울함을, 언젠가는 갚아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언젠가는 고스란히 되돌려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123쪽

어버이날 요구르트 병에 카네이션을 꽂아 놓고 아빠를 기다린 용찬이. 아빠 얼굴을 그려 보며 일자리 구해줄 테니 사랑하는 아빠 빨리 오라던 혜민이. 그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동지 여러분! 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2003년 10월 22일 부산역 광장에서 열린 ‘노동탄압 규탄 전국대회’에서
-123쪽

2002년, 한진중공업에서는 회사 측이 일방적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650명의 노동자를 해고하면서 파업이 시작되었다. 회사는 단체교섭을 거부하고 김주익 지회장을 비롯한 노조 간부 20명의 임금, 주택, 노동조합비 등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가압류를 함으로써 생활에 고통을 주는 동시에, 이들을 사법 당국에 고소, 고발하였다. 검찰과 경찰은 10월 1일 김주익 지회장을 포함한 여섯 명의 금속노조, 지회 간부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김주익 지회장은 높이 35미터의 85호 크레인 위에서 회사 측에 대화를 촉구하며 129일을 버텼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자, 10월 17일 회사와 싸움을 계속할 것을 유서로 남긴 뒤, 재벌의 노동자 탄압에 죽음으로 항거하였다.
뒤이어 10월 30일 15시 50분,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던 곽재규 열사가 85호 크레인 근처의 4도크에서 투신하였다.
-124쪽

준하야.
너마저 이런 세상에 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통일을 향한 발걸음들이
아직도 간첩이 되고 빨갱이가 되는 이런 세상에
널 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평생을 일해도 집 한 칸 지닐 수 없는 이런 세상에
널 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평생을 일만 해 온 애비들이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잘리고
하루에 서른 여섯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밖에는 도무지 할 게 없는
이런 세상에 널 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비정규직이라는 차별과 서러움의 이름을 수번(囚番)처럼 달고 살다가
그마저 쫓겨나 1년을 넘게 천막을 치고
그 천막에서 사계절을 맞고 보내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세상에 남겨졌던 유일한 거처였던 그 천막마저 뜯겨 나간
어느 날 아침.
천막이 신기루처럼 사라진 빈자리에 무릎이 꺾인 채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어야 하는
이런 세상을 너한테마저 물려줄 순 없지 않겠느냐.
비정규직은 울고 정규직은 잔업과 성과금에 영혼을 파는
오로지 이 두 가지의 선택이 네 미래가 되게 할 순 없지 않겠느냐.
어린 자식들은 애비를 잃고 늙은 부모들은 자식을 잃는
이런 세상은 이제 끝내야 하지 않겠느냐.
-129쪽

IMF 시기에 김대중 정부가 한국중공업을 두산그룹에 헐값에 매각하면서 이름이 바뀐 두산중공업은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기 위해 2002년 노조 간부 여든아홉 명을 징계해고하고, 65억원 손해배상 청구, 노조원 재산 가압류 신청 등을 단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스물두 명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다.
22년 동안 두산중공업에서 일해 왔던 배달호 열사는 두산의 부당 해고와 징계에 맞서 싸우다가 2002년 7월 23일 구속, 9월 17일 집행유예로 석방되었으나 모든 재산과 임금을 가압류당했다. 노무관리 대상자로 회사의 감시를 받던 중, 생계를 담보로 회사에서 노조 활동 중단 각서를 요구하자, 2003년 1월 9일 가족을 부탁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회사 안 ‘노동자 광장’에서 분신했다.
-136쪽

길은 걷는 만큼 줄어든다. 이 길도 언젠가는 끝나게 될 것이고, 우리는 머잖아 우리가 있던 자리로 돌아가게 되겠지만 예전의 우리는 이미 아닐 것이다. 한나라당의 압승이라는 게 맹목적인 초종의 결과라는 것도 알게 됐고, 월드컵 경기장은 누군가의 삶의 터전이었고, 50만 원의 보상금을 받고 그 터전에서 쫓겨났던 철거민들의 눈물 위에 지어졌다는 것도 알게 됐다. 축구공을 농락하는 선수들의 현란한 발재간보다는, 다섯 살부터 하루 300원의 임금을 받고 공을 만들다가, 강한 본드의 영향으로 일곱 살에 두 눈을 실명한 인도 소녀 소니아의 노동에 우리는 주목하게 될 것이다.
절망해 보지 않은 사람은 희망의 가치를 모른다. 좌절해 보지 않은 사람은 다시 서는 일의 거룩함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이미 승리했다.
2006년 5월 31일 부지매 촛불 문화제에 참석한 뒤 조수원 열사를 추모하며
-141쪽

조수원 열사는 대우정밀에 입사, 병역 특례자로 편입되어 4년 6개월을 복무하던 중 노조 편집부장을 맡았다가 1991년 6월, 복무 만료 6개월을 남기고 해고되어, 병역 특례자의 신분을 박탈당했다.
1993년 마포 민주당사에서 38일 동안 단식 농성을 했고, 대우 그룹으로부터 1994년 5월 27일 복직 합의를 받아 냈다. 그러나 정부는 병역 문제가 복직 합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병역 특례 해고자들에게 입대할 것을 요구했다.
‘정든 일터로 돌아가고 싶다’, ‘어머니, 아버지 품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간절한 소망을 말하던 조수원은 1995년 12월 15일 새벽, 부당 징집을 거부하며 민주당 서울시 지부에서 목매어 세상을 등졌다.
-142쪽

돈만 있으면 판검사도 사고, 국회의원도 사고, 장관도 사고, 대통령까지 사 버리는 나라, 이 공화국은 누구의 공화국이란 말입니까?

-145쪽

산다는 게 날마다 피가 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전쟁임을 그땐 몰랐습니다. 목숨 부지하고 살아남는 게 얼마나 힘든 세상인지 그땐 참 몰랐습니다.
전쟁은 60년 전에 끝났다는데 날마다가 전쟁인 사람들. 1년에도 수십 명이 길바닥에서 개구리처럼 터져 죽고, 전쟁 때도 자살은 없었다는데 2002년 이후 죽어 간 예순 여섯 명 중 25%가 자살인 기가 막힌 사람들.
열사도 되지 못했던 개죽음들로 고속도로마다 스프레이 자국으로 남겨지는 사람들. 보릿고개 넘어선 지가 언젠ㄴ데 하루 한 끼는 물배로 채우는 날도 많다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오는 보릿고개를 아직도 꾸역꾸역 넘고 있는 사람들.
-146쪽

죽어야만, 누군가 목숨을 바쳐야만 문제가 해결되곤 했습니다. 그러나 동지 여러분! 비정규직은, 노동자도 되지 못하는 사람은 죽어도 안 됩니다. 분노가 조직이 되지 못하는 현실, 통곡조차 투쟁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현실, 모여 있는 잠시 동안은 동지지만 흩어져 이랗는 대부분의 시간은 적이 되고, 경쟁 상대가 되는 현실.
죽은 사람을 묻어 줄 용기나 결단이 없다면 죽은 시체의 미숫가루를 훔쳐 목숨을 부지하는 전쟁 같은 삶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2005년 10월 1일 김동윤 열사 정신 계승 촛불 문화제에서...
-147쪽

화물운송 노동자는 일명 지입제라는 ‘차량위탁관리’ 형식의 불평등 계약에 따라, 책임은 사업자처럼 무한으로 지고, 권리는 노동자처럼 침해받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2005년, 고유가와 어려워진 경기로 김동윤 열사도 이미 1,200만 원의 부가세 체납자가 되었다. 그해 추석을 앞두고 경유가 인상분에 대한 유류 보조금 환급이 있었는데, 환급 과정에서 세금과 과태료 등 미납자의 보조금을 압류키로 하였다. 김동윤 열사도 6개월 만에 환급받은 유류 보조금 420만 원 전액을 세무서에 압류당했다. 장시간의 노동과 생존권이 위협당하는 극심한 압박 속에서, 2005년 9월 10일 오전 10시경 부산 신선대 부두 정문 앞에서 유가 보조금 압류 현실에 분개하며 분신, 죽음으로 화물 노동자의 현실을 세상에 알렸다.
-148쪽

이제 아무도 기적을 말하지 않을 때
온몸으로 기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
우리가 단지 역사를 추억할 때
스스로 역사가 되어 가는 사람들.
서러움이 뭔지를 알려거든 그들을 보라.
우리가 잃은 게 뭔지를 알려거든 그들의 눈빛을 보라.
연대를 말하려거든 100일째 펄럭이는 천막엘 가 보라.
우리들의 미래가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몹시 궁금하거들랑
비정규직이라 불리는 그들을 보라.
-149쪽

정규직의 적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자본입니다. 우리가 맞장을 떠야 할 건 약자가 아니라 구조조정이라는 사시미 칼을 든 깡패입니다.
자본의 발밑에 짓밟혀 파들파들 떨고 있는 민들레를 한 번 더 짓밟은 게 아니라 그 발을 치워 줘야 합니다. 민들레에게 너희도 시험 쳐서 소나무가 되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민들레에게 숨 쉬고 씨앗 흩날릴 영토와 햇볕을 나눠 줘야 합니다. 민들레에게 숨쉬고 씨앗 흩날릴 영토와 햇볕을 나눠 줘야 합니다. 민들레가 죽어 가는 땅에선 어떤 나무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살아나야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그들이 승리해야 우리가 지켜질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의 칼날엔 눈이 없습니다.
-154쪽

적개심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닌, 그 순결한 꿈이 이루어지는 봄이길. 부디 저 고운 영혼들이 꽃보다 먼저 환해지는 봄이길. 봄마저 쟁취해야 하는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그런 봄이 부디 저들의 것이길 간절히 바랍니다.
2006년 2월 23일 부산지하철 매표소 비정규 해고노동자 고용승계 쟁취 결의대회에서
-157쪽

그때 우리는

봄이 오면 피어나는 게 꽃들뿐이었겠는가.
봄이 오면 되살아나는 게 나무들뿐이었겠는가.
꽃보다 먼저 피고 나무보다 먼저 일어서던 사람들.
그때 우리는 기적이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으나
서 있으면 멈추는 게 아니라 넘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던
그때 우리는 기적이었다.
함께 해야 강해진다는 걸 거리에서 배웠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야 대오가 전진할 수 있다는 걸
스크럼을 짜며 저절로 알게 됐던
그때 우리는 기적이었다.
-158쪽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가야 했고
차마 묻을 수 없는 천금 같은 사람들을 땅에 내려놓으며
그들을 죽인 세상과 결코 타협하지 말자 맹세했던
그때 우리는 분노조차 희망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늙어 가기 시작했고
분노하는 일에도 꽤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기 시작했다.
뛰는 것보다 걷는 게 편하고 걷는 것보다는 차를 타는 게
훨씬 편하다는 자본의 말에 귀 기울이기 시작했고
서 있는 것보다는 앉아 있는 게 편하다는 걸 알면서는
오래 앉아 있으려면 큰 집이 필요할 거라는
자본의 유혹을 믿기 시작했다.
-160쪽

민들레에게 올라오라고 할 게 아니라 기꺼이 몸을 낮추는 게 연대입니다.
낮아져야 평평해지고 평평해져야 넓어집니다.
겨울에도 푸르른 소나무만으로는 봄을 알 수 없습니다.
민들레가 피어야 봄이 봄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생에 처음 민들레는 기다리는 봄. 이 설렘을 동지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2006년 3월 11일 부산지하철 매표소 해고 노동자 고용승계 쟁취 3차 결의대회에서
-163쪽

신입사원이 들어와도 비정규직이니 환영식도 없고 수시로 잘려 나가니 환송식을 할 수도 없는 수많은 현장들. 아무도 노 젓는 법을 나누지 않고 친구의 노를 몰래 부러뜨려 놓아야 내가 강물을 건널 수 있다고 믿었던 자들은 결국 그 강의 끝이 유토피아가 아니라 망망대해로 이어져 혼자 탄 뗏목으로는 난파할 수밖에 없다는 걸 처음엔 잘 몰랐습니다.
제일은행 노동자들이 잘릴 때 주택은행 노동자들은 시금치를 무치거나 아이의 장남감을 고르는 일이 더 중요했고,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잘릴 때 대우자동차 노동자들은 대부분 잔업을 하거나 축구를 보고 있었습니다. 여성 노동자들이 먼저 잘릴 때 남성 노동자들은 이제 시집이나 가라고 농담처럼 말했고 형님들이 잘릴 때 동생들은 ‘헹님은 인자 낚시도 실컷 댕기고 땡잡았네.’라고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웃으면서 했던 똑같은 말을 울면서 듣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219쪽

아이들은 꿈을 잃어 가고 선생들은 영혼을 잃어 가는 학교에서 중간고사 끝난 나른한 봄날의 4교시, 선생님께 첫사랑 이야기를 조르는 아이들도 더는 없을 테고 그 아이들에게 진달래를 불러 주는 친구 같은 선생님도 더는 없게 될지도 모릅니다. 선생님을 상대로 첫사랑의 황홀한 꿈을 꾸는 아이들도 없을 테고 선생님들은 더 이상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지 않게 될지도 모릅니다.
-221쪽

학번을 얘기하는 모습을 볼 때면 묘한 울타리 같은 게 느껴진다. 끼리만의 울타리. 학번이란 말에선 기득권의 냄새가 난다. 특히 우리 사회에서 학번이 가지는 울타리는 참으로 견고하다.
-224쪽

부모 잃고 가난한 숙부 집에서 어려서부터 갖은 노동을 하며 매질을 밥으로 욕을 반찬으로 자란 사람. 숙부의 집을 나와 식모살이를 하던 집에서 열네 살 때부터 주인아저씨와 아들의 몸뚱아리 밑에 밤마다 번갈아 깔렸다던 사람. 온종일 이어진 숙모의 부지깽이 매질보다는 차라리 그 짓이 나았다던 사람. 남이 해주는 밥은 징역 살면서 처음 먹어 본다던 사람. 공범이 돼 버린 정부에게서 받은 머리핀 하나가 세상에 태어나 받은 유일한 선물이었다던 사람. 그래서 그 사람이 그렇게 좋았다던 사람.
내게 집행유예가 선고되던 날. 두고 온 딸내미 이름을 수백 번도 더 명토박으며 그 아이를 꼭 찾아 봐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던 사람. 진숙 씨는 아는 사람 많으니까 꼭 탄원서를 꼭 좀 넣어달라던 사람. 천 명쯤 서명을 받으면 나라에서 살려주지 않겠냐던 사람.
윤수가 죽던 날, 그도 죽었다. 짤막한 신문 기사를 통해 그의 형 집행 소식을 접하면서야 탄원서를 넣어주겠노라던 도무지 지킬 길이 없어져 버린 그 약속이 생각났다. 세상 어느 누구도 그를 사랑한 적이 없는데 누구에게 그를 죽일 권리가 있는가라는 허탈한 질문과 함께.
-248-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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