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고 닦고 털어내고 지우고...... 아무리 해도 깨끗해지지 않았다. 왜? 왜? 이제야 알았다. 내가 쥐였기 때문이다. 스무 살을 감당할 수 없게 한 나의 열아홉, 열여덟, 열일곱......이 쥐였다. 아니, 이 세상이 쥐로 득시글거리기 때문이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깜빡한 세상이 바로 쥐였다.-75쪽
우리는 마침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쥐는 없었다. 그걸 확인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좀더 일찍 함께 문을 열어 보았더라면...... 그랬다면 지금 뭔가 달라졌을까? 모르겠다.-102쪽
혼자서 물 속으로 걸어간다. 물결이 얼음을 깎아 만든 비수처럼 차갑게 내 살갗을 훑는다. 발목에서 허벅지로, 허리에서 가슴으로, 어깨에서 머리끝으로 물이 차오른다. 무섭도록 차갑다가 차츰 몽롱해진다. 잠이 쏟아진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신은 나를 버렸다. 나는 신마저도 구원하기로 했다.-128쪽
낳아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사실 고맙다는 말은 부족하기만 합니다. 제 맘 속에 가득한 이 터질 듯한 감동을 표현할 더 적절한 말을 찾지 못해 비루하기 짝이 없는 표현을 빌려 씁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어머니가 살린 작은 사람 진주홍 올림-141쪽
작업실에 홀로 서서 하염없이 조각을 바라본다. 검은 돌덩이 속에서 앙상한 선으로 피어난 두 사람. 한 사람은 크고 한 사람은 작다. 나는 두 사람을 찬찬히 뜯어본다. 주홍이를 찾는다. 큰쪽이 주홍이, 작은 쪽이 나. 내가 더 작은 것은 당연했다. 내가 주홍이를 낳은 순간 주홍이도 나를 낳았고 내가 삶을 외면할 때에도 주홍이는 나를 길렀으니까. -150쪽
텅 빈 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형벌. 나는 그것을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것은 주홍이가 내게 남긴 교훈이자 선물이었다.
생명을 낳고 기르는 일이 한 사람의 희생이 아닌 온 우주의 축복일 수 있기를......-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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