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기억을 되짚어 보아도 여름이라고 해서 딱히 '휴가'란 이름으로 어딜 가본 기억이 별로 없더라구요.  아, 섭섭해 섭섭해... 이러다가 문득, 휴가 비스무리했던 추억이 떠올라 적어봅니다.

2002년도는 여러모로 혈기왕성(?)했던 때였어요.

온 국민이 열광했던 그 월드컵 축제에 저 역시 빠지지 않았구요.

(사진 펑!)

무엇보다 그 해 여름 방학 때에는 유적발굴조사단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평생의 추억이 될 좋은 시간을 보냈어요.

처음엔 조선시대, 그리고 신석기 시대, 그리고 청동기 시대 유적지에서 발굴 작업을 했죠.

발굴이라고 말을 하면 참 그럴싸한데, 우린 노상 '땅 판다'고 얘기했답니다.

땅을 파서 돈이 나오냐? 하면 우린 돈 나온다! 하고 말했었지요. (일당 4만원, 훌륭했어요~)

집에서 왕복 5시간 거리를 2주 동안 다니고, 그 다음엔 왕복 3시간 거리를 2달 동안 오갔지요.

삽질도 해보고, 톱질도 해보고 심지어 도끼질도 해보았지요. 호미나 곡괭이는 아주 기본이었구요~

커다란 밀집모자를 쓰고 긴팔 옷에 긴 바지를 입고 완벽하게 흙속에서 뒹굴던 그때가 오래도록 여운에 남아요.

바가 오는 날은 실내에 모여 앉아 우리가 찾아낸 도자기 조각들을 넘버링하고, 그것들을 모아서 완성된 도자기로 맞추는 작업을 했어요.(우리 실력으로는 제대로 감당하기 힘들었지요.)

그렇게 땀흘려 일하고 나면 뭘 먹어도 맛있고, 언제든 깊고 달콤한 잠을 잘 수 있었죠.

그때 우린 담당 선생님께 이틀 간의 휴가(?)를 내어서 강화도 답사여행을 갔답니다.

원래 7명이 계획을 했건만 중간에 한명이 배탈이 크게 나서 다시 집으로 실려(?) 가고 여섯이서 강화도로 출발했지요.  예약해둔 숙소는 깔끔하니 좋았어요. 우리 실력껏 찌개를 끓여먹고 그 일대를 자전거로 돌았답니다.

자전거로 그렇게 장거리를 달려본 것은 처음이었어요. 다리가 무겁고 엉덩이가 너무 아팠지요. 난 내 몸이 무거워서 그런가 보다... 좌절하기도 했답니다ㅠ.ㅠ

해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자전거 달리기.  그리고 제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는 미리 준비해 온 음악이 연신 흘러나왔죠.

1번 그대가, 그대를
2번 그대는 모릅니다(99)
3번 애원(97)
4번 이제야 이별할 수 있어요
5번 그들이 사랑하기까지(99)
6번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98)
7번 붉은 낙타(98)
8번 변해가는 그대(99)
9번 천일동안(99)
10번 어둠, 그 별빛
11번 나의 영웅
12번 만추
13번 Enemy within

당연하게도(?) 나의 싸아랑 이승환의 곡들이었어요.  적절히 애절하고 적당히 힘차고 또 적당히 두근거림을 주는 곡들.  오르막길에선 노래가 잘 안 들렸지만(힘들어서...;;;), 야트막한 내리막길에선 바람을 가르며 노래를 듣는데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요.  딱 그 순간만큼은 지금이 낙원이다!싶은 느낌이었어요.

다음 날은 유적지를 좀 더 돌아보았지요.(근대화 시기에 큰 싸움이 두차례나 있었잖아요.) 그리고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고인돌(정말 크더군요!)도 둘러보고 사진도 찍구요~

애석하게도 제 컴퓨터 하드가 몽땅 깨진 적이 있어서 사진은 지금 한 장도 남아있질 않아요ㅠ.ㅠ

그리고 또 자전거 일주를 하는데... 아아... 너무 힘이 드는 겁니다.  계속 꼴찌를 면치 못하자 후배가 잠깐 자전거에서 내려보라고 했어요. 그리고 제 자전거를 타 보더니 문제가 있다고 했어요.  손잡이가 돌아가고 기어가 안 잡히고 바퀴에서 소리나고 약간 바람도 빠져 있구요.  미련하게도 자전거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내내 모른 거야요.  전날까지 합해서 모두 35km를 달렸는데 말이죠ㅠ.ㅠ

그때 너무 고생하는 바람에 결심하기를, 향후 3년 동안은 자전거를 타지 않으리!를 외쳤어요. 그리고 정말 3년 지나도록 자전거는 한 번도 타지 않았답니다.(못 탄거죠. 기회가 없었어요.)

날마다 땅파느라 심신이 지쳐 있었는데, 그래서 모처럼의 휴가는 그저 쉬고 싶었지만, 그래도 한 살이라도 젊을 때에 좀 더 많이 보아두자는 데에 의견을 모아 다녀온 강화도 답사. 제대로 공부를 한 답사는 그때가 마지막이었어요. 졸업 후에는 휴가는 되어도 공부는 안 되더라구요.^^;;;

피곤에 쩔어 돌아왔을 때에 태어난 지 3일된 조카가 절 기다리고 있었어요. 아후~ 얼마나 사랑스러웠던지요.  안아보고 만져보고 싶어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꽤 오래 전 기억인데 떠올려 보니 다시금 미소가 지어져요. 그때 느꼈던 바람과, 그때 본 석양과, 그때 들었던 음악들... 모두 참 아름다웠습니다.  어쩌면 추억은 재포장되면서 조금 더 가공되어 미화되기도 할 테지요.  하지만 그조차도 나쁘지 않다 여겨집니다.  그래서 추억이니까요.

당시 들었던 노래 중 한 곡을 옮겨 보아요.

그대가 그대를-이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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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 2007-08-16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사진보니 아무리 봐도 미인이세요~ 아무래도 동안이신듯.
^^

마노아 2007-08-16 13:04   좋아요 0 | URL
꺄아, 실비님! 동안 소리 오랜만에 들어요. 오호호홋, 나이 들면 제일 듣기 좋은 소리가 영해 보인다는 거죵^^ㅎㅎㅎ 히잇, 감사해요^^(주책스럽게 웃고 있어요. 호호호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