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사 - 단군에서 김두한까지 한홍구의 역사이야기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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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00여일 만에 5만 명을 굶겨 죽인 국민방위군 사건은 과거의 일이라 하더라도, 1980년부터 1995년 5월까지 15년 5개월 간 군 복무 중 사망한 사람은 자살 3,263명, 폭행치사 387명 등 모두 8,951명에 달한다. 이는 연 평균 577명의 젊은이들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우리 군은 전쟁을 치르지 않고서도 3년마다 1개 연대 병력을 잃고 있는 셈이다. 걸프전 당시 미군 쪽 사망자가 269명에 불과한 것에 비한다면 이같은 손실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알 수 있다. -269쪽

현행 징병제가 국민개병제가 아니라 '빈민개병제'라고 비아냥거리는 현실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가?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의 발전, 시민사회의 성숙, 경제발전, 남북관계의 개선에 걸맞은 병역의무를 시행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해 현행 징병제도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271쪽

민주사회의 표징은 여러 가지이겠지만, 그중 중요한 하나는 국가나 정부가 국민들을 훈육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만 민간인 출신이 된다고 군부독재의 잔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평화와 통일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새 시대에 맞는 군의 역할과 규모, 위상, 그리고 군사문화의 청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281쪽

21년 전 필자가 이등병이 되었을 때 첫 월급이 2,700원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 이 얘기를 했더니 한 미국인 동료가 "음, 괜찮네"라고 말한다. 어이가 없어 쳐다보니 그 친구도 뭐가 잘못됐느냐는 표정으로 "시간당 2,700원이면 그다지 나쁜 조건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이럴 땐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284쪽

이제는 우리도 모병제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더구나 상류층의 병역비리가 연일 방송과 신문을 장식하면서 현역으로 복무했고, 복무하고 있고, 또 앞으로 복무해야 할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극에 달했다. 이런 처지에서는 징병제가 갖고 있는 장점은 전혀 살릴 수 없다. 모병제를 채택하면 물론 초기에 돈이 많이 들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징병제의 낭비도 생각해야 한다. 한창 학업에 정진하거나 생산활동에 종사할 나이의 청년들을 26개월 간 군에 잡아두는 것은 국가경제적인 면에서 매우 불합리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70만 명에 육박하는 대군에다 300만 명의 예비군, 500만 명의 민방위를 갖고 있따. 인해전술을 쓸 게 아니라면 이런 방대한 규모를 유지할 까닭이 없다. -286-287쪽

군당국이 안전사고를 줄이려 많은 노력을 기울임에도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제한적인 공급이 가능한 징병제 아래서 사병들의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병들에게 정당한 월급을 지급함은 '신성한 군복무'를 수행하는 사병들의 인간적 존엄성을 회복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287쪽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운동이 가장 어려운 문제는 국방부나 한국기독교 총연합회 등이 반발이 아니다.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은 현역으로 복무한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다. 그리고 이 박탈감은 너무나 정당한 이유가 있다. 문제는 분노의 대상은 평생을 전과자로 살 각오를 하고 양심의 명령에 따르기로 한 병역거부자들이 아니라,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제도와 그런 제도를 강요해온 대한민국 정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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