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용히 미치고 있다 - 만화로 보는 한국현대인권사
이정익 지음 / 길찾기 / 2006년 12월
절판


나는 7-80년대 노동운동의 자생적인 운동을 목격했고, 그 속에서 많은 좋은 점들을 보았어요. 그래서 90년대가 지나고 노동운동이 지나치게 계급화되고 또 권력화되어가는 부분이 마음 아파요. 지금이야말로 낮은 곳에서부터의 연대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봐요.
요즈음 들어 많은 운동과 저항이 빛을 잃어 가는 느낌이 드는 건, 노동운동이 지나치게 경제 논리화되어만 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사회와의 연대를 지향하고, 다시금 자존에 대한 노력을 더해갔으면 해요.-38쪽

정부의 문화공보부 공보국장 박종국이 '한국인 7백만 명은 죽어야 하고 매년 30만 명씩 추방해야 한다'는 망언을 퍼뜨렸다.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유신체제 혹은 박정희에 대한 반대자를 총칭한 것이었다. 그것은 70년대 말 민주화운동 각계의 참여인사 50만 명을 숙청하면 만사가 해결된다고 장담하며, 그 명단까지 만들었다는 대통령 경호실장 차지철의 구상으로 이어지는 한 줄기 맹목적인 충성심이었다.-41쪽

수도 서울에 탱크를 밀고 들어와 정권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군부 쿠데타의 특성상, 국민의 인권을 유린함에 있어서도 망설임이 없었다.
정권수호를 위해 국가보안법이라는 철퇴를 쉼 없이 내리쳤다. 좌익과 우익의 구별은 정부의 편에서는가, 아닌가를 가르는 편의로 사용되었다.-43쪽

1970년 이런 가혹한 노동에 대한 임금은 월 1,500원에서 3,000원 사이였다. 그들의 하루 임금은 다방에서의 커피 한 잔 값에 해당했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창작과 비평사, 531쪽-47쪽

정치 문제는 폭력이 무서워 못 쓰고, 사회문제는 돈 먹었으니 눈감아 주고, 문화기사는 판매부수 때문에 저질로 치닫는다면 더 이상 무엇을 쓰겠다는 것인가, 신문이 신문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요-대중을 위해 있는 것일진대, 폭력이 무서웠다고, 돈맛이 좋았다고 그렇게 나자빠져 버리면 그만인가
-66쪽

박정희의 군사정부가 부자들에게 돈을 토해내게 하는 데에서는 이승만보다 훨씬 체계적이었고, 점차 액수는 천정부지로 마구 뛰었다. 이런 활동의 상당 부분이 2차대전 전후 초창기의 이탈리아나 일본의 경우처럼 한국중앙정보부와 협력하는 CIA 요원들에 의해 중개되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브루스 커밍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523쪽-72쪽

대학에는 프락치를 심고 야당에는 중앙 정보부 요원들이 상시 침투하여 활동하였고 신문, 방송매체는 팔과 다리를 잘라 수족처럼 사용하려 하였습니다. 군사 독재란, 이토록 철저하고, 그래서 모두를 두렵게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자신의 행동을 부끄러워하며 후회하는 과거의 권력자는 없어요.-73쪽

많은 학생들이 긴급조치 위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수배되었습니다. 당시 간첩 현상금이 30만원 정도였지만, 학생시위 주동자들의 현상금은 그보다 훨씬 많은 이백에서 삼백만 원을 넘나들었죠.
그만큼이나 국가의 중범죄자로 취급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기 때문에 검거된 순간부터의 고초는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이철, 유인태, 강구철 3인은 이미 현상금이 50만원씩 걸려 있었다. 수배전단에는 "이들이 있는 곳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거나 숨겨주면 사형 무기..."라고 씌어 있었다. '미친 법'의 시대였다. 데모 학생이 생긴 학교는 폐교할 수 있도록 한 것이 긴급조치 4호였다. -90쪽

이들은 출동하기 전에 독한 술에다 환각제를 타서 마신 상태였고, 수통에는 빼갈을 담고 있었다고 합니다.

황석영<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50쪽 재인용-132쪽

12.12쿠데타의 주역들은 광주의 피를 포도주처럼 마셨고, 5.18 광주는 비현실적인 광기의 제물이 되었죠.-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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