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 - 2006년 제2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박현욱 지음 / 문이당 / 2006년 3월
구판절판


그녀가 FC바르셀로나의 팬이 된 것은 스페인 내전을 다룬 조지 오웰의 소설 <카탈루냐 찬가>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또 그녀가 앙드레 말로와 어니스트 훼밍웨이와 파블로 네루다와 시몬 베유와 알베르 카뮈를 좋아한 때문이기도 했다.
(그게 왜?)
그들은 모두 스페인 내전 당시 프랑코에 맞섰던 지식인들이다. 프랑코의 승리로 끝난 결과를 두고 카뮈는 이렇게 말했다.
"인류는 정의도 패배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폭력이 정신을 꺾을 수 있음을, 그리고 용기가 그에 상응한 보답을 받지 못할 때가 있다는 사실을 스페인에서 배웠다."
(그래서?)-35쪽

어른이란 말은 '얼우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인 '얼운'에서 나왔으며 '얼우다'는 '성교하다'라는 의미. 점잖게 말하자면 어른이란 결혼한 사람을 뜻하고 까놓고 말하자면 이성의 몸을 알게 된 이를 뜻한다. 그런 어른의 사랑에서는 누가 누구를 얼마나 더 사랑하는가의 문제만큼이나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그 잔인한 문제는 사랑도 의심하게 만든다. -50쪽

'지네딘(Zinedine)'이란 이름은 아랍어로 '신념의 아름다움'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60쪽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인데 행복하게 사는 게 좋잖아. 나는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할 거야. 최대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말이지. 하지만 다른 사람의 작은 피해와 내 행복이 부딪치게 된다면 나는 내 행복을 택할 거야. 내 인생을 그 사람이 대신 살아 줄 수는 없잖아. 이기적이라고 하겠지만 하는 수 없어. 그 반대로 내 자신의 작은 피해와 다른 사람의 행복이 부딪치면 나도 그 피해를 감수할 거야.-85쪽

그러나 실력 이상의 성과를 내는 것이야말로 독일 축구의 저력이다. 경기 내용에서도 이기고 승부에서도 이기는 것이 브라질 축구라면, 경기 내용에선 우세하지만 승부에서는 지고 마는 것이 스페인 축구이고, 경기 내용에서는 밀리더라도 결국 승부에서 이기는 것이 독일 축구이다.(이탈리아는? 경기 내용과 무관하게 여간해서는 지지 않는 축구를 한다. 단점이라면 여간해서는 끝까지 이기지 못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경기 내용과 무관하게 강한 정신력으로 승리를 추구하는 정신력의 축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축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2002년에 전 세계에 보여줬지만 월드컵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정신력의 축구로 회귀했다. 이런 축구의 강점은 특정 상대에게는 통한다는 것이다. 한일전이나 1990년대 이전의 남북 대결 같은. 단점이라면 주로 특정 상대에게'만' 통한다는 것이다.)-113쪽

의심이란 그런 것이다. 행동을 의심하게 되고 행동에 꼬투리 잡을 것이 없으면 의도를 의심하게 된다. 의도마저도 결백이 입증되면 그다음에는 무의식을 의심하게 된다. 무의식을 의심해서 어쩌겠다고? 뭘 어쩌기 위해 무의식을 의심하는 것이 아니다. 의심의 메커니즘이 그런 것이다. -226쪽

결손 가정이란 말에는 편견이 숨어 있어. 가령 핵가족이나 확대 가족 같은 용어에는 좋다, 나쁘다 하는 가치 판단은 들어 있지 않아. 핵가족이 일반적인 형태라고 해서 가족 구성원이 그보다 많은 확대 가족이 비정상적인 거라고 생각하진 않잖아. 하지만 결손 가정이란 용어는 그렇지 않거든. 뭔가 결여된 비정상적인 가정이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잖아. 왜 꼭 다른 사람들을 비정상으로 만들어 놓고 자기는 정상이라며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남의 소중한 가정을 결손 가정이라는 말로 모욕하면 안 되지. 구성원이 덜 있건 더 있건 가정이면 그냥 다 가정인 거야.-291쪽

맞은 놈이 두 다리 뻗고 잔다는 옛말은 때린 놈들이 만들어 낸 새빨간 거짓말이다. 다리 뻗고 자는 놈은 때린 쪽이다. 상처가 생겨도 맞은 사람에게 생기는 법이고 고통도 맞은 사람의 몫이다. 그리하여 가해자들이란 뻔뻔할 수밖에 없다. 당장 자기는 멀쩡하니 말이다. 툭하면 사과 같지도 않은 사과만 늘어놓으며 과거를 청산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는 일본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잘 쓰지도 않는 단어를 어렵게 찾아내서는 '통석의 념'을 금할 수 없다며 말장난을 하기도 했다. 심지어 사과도 하기 전에 조건을 다는 가해자도 있다. 12.12 반란의 주역 중 하나인 허화평은 "광주 피해자들이 먼저 용서할 뜻을 밝히면 사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체 어쩌겠다는 건지.-305쪽

글쎄. 축구는 어떨지 몰라도 우리 인생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한 것을 다 같이 나누는 삶을 산다면 우리는 그러한 삶을 더 이상 훌륭하다 여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삶을 훌륭하다 생각하는 것은 아무나 그렇게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혹은 극히 제한적인 시기에만 그렇게 살 수 있을 뿐이다. -323-324쪽

역시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쿠데타 주역이 대통령이 된 후에 우리나라에도 프로 축구가 생겼다. 아시아 최초로.-331쪽

축구를 싫어하는 남자들이 즐겁게 축구를 보는 방법.
-없다. 대한민국에서 살아온 남자로서 학창 시절과 군대 시절의 수많은 축구를 경험했고 또 무수한 축구 중계에 노출되었으면서도 축구를 싫어한다면 이미 늦은 것이다. 새삼스럽게 축구를 좋아하려 애쓸 필요도 없다. 앞으로도 계속 싫어하면서 살면 된다. 축구를 싫어한다 해서 인생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보너스 팁. 싫어하는 인간을 즐겁게 보는 방법.
-없다. 앞으로도 계속 싫어하면서 살면 그만이다. 싫어하는 사람이 하나 줄어든다 해서 갑자기 인생이 아름다워지는 것은 아니다.-342쪽

축구공의 진실.
어떤 사람이건 사랑을 하게 마련이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게 살고 싶어 한다.
어린아이도, 어른도.
결혼을 한 사람도, 하지 않은 사람도.
노동자도, 자본가도.
좌파도, 우파도.
그리고 축구를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3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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