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들의 전쟁 1 - 제1부 늑대족의 피
마이떼 까란사 지음, 권미선 옮김 / 창비 / 2007년 7월
평점 :
절판


어쩌다 보니 최근 판타지 문학을 연이어서 접하게 되었다.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그들의 세계가 낯설지만, 새로운 세계에 한 발 들여놓을 때의 두근거림과 호기심은 덕분에 만끽하게 되었다.

판타지 문학, 이라고 말을 하고 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것들이 있다.  마법, 마녀, 요정, 난쟁이, 정령 등등... 모두 우리 현실 속에서 보기 어려운 저너머 꿈의 세계의 것들이다.  그것들을 눈앞에 모아 펼쳐주기 때문에 독자는 대리만족도 느끼고 판타지의 매력에 푹 빠질 수 있는 게 아닐까. 

읽으면서 든 생각인데, 나 역시 어릴 적에는 내게 혹 초능력이 있는 것은 아닐까.  무수한 비밀이 나란 존재 속에 숨어 있는데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등등의 꿈을 꾸고는 했다.  꿈을 깨고 나면 허무하지만, 잠시 동안 재미있고 흥분도 되고 나름의 모험을 즐길 수 있는 그 시간들... 꽤 오랜만에 그런 꿈들을 다시 펼쳐본 셈이다.  서럽게도, 나이 먹으면 그런 환상보다는 만약 내가 로또에 당첨된다면 그 돈으로 뭘 할까... 뭐 이런 상상을 하게 되었다는 것(로또는 안 사도 그런 상상은 해본다.;;;).  정말 재미 없고 분위기 없고 살벌하달까..ㅠ.ㅠ

아무튼. 마녀들의 전쟁을 읽으면서는 어릴적 많이 상상해 보던 그 세계에 나도 한껏 젖어있을 수 있었다.  작품의 설정이 꽤 마음에 드는데, 아주 오랜 옛날 대마녀 '오'에게는 '오드'와 '옴'이라는 두 딸이 있었다. 옴은 치유력을 배워 인간의 고통을 덜어주길 원했고, 그 과정에서 죽음과 가까워지며 죽음의 자비를 이해하게 되었다.  반면 오드는 저승의 영혼과 대화하는 기술을 배웠고, 그 영혼들의 탄식 소리를 듣다가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옴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기에 삶을 사랑했다.
오드는 영원히 살고 싶어 했기에 삶을 두려워했다.(1권 105p)

 
   


확연히 다른 두 딸의 성격은 그들 세계의 분열을 가져왔다.  출산의 고통을 두려워한 오드는 옴의 첫째 딸 오미를 훔쳐 와 자신의 딸로 키운다.  그들 세계의 불화를 원치 않았던 오는 옴에게 양보하기를 권했고, 옴은 또 다른 딸 오마를 낳아서 오드를 피해 도망을 친다.

그 후 오드의 계략으로 대마녀 오가 무너지고 오드의 후손 오마시들은 불멸을 택해 갓난 아기의 피를 빨아 먹으며 살고, 옴의 후손 오마르들은 필멸을 택해 인간 사이에 숨어 그들과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간다.  대마녀 오의 예언에 의하면 훗날 붉은 머리의 마녀가 모든 전쟁을 끝내고 평화를 가져오리라고 했는데, 이 책 "마녀들의 전쟁"은 그 전체 이야기의 1부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붉은 머리의 선지자로 추앙받고 있는 마녀 셀레네의 딸 아나이드다.  이야기의 전체 구조는 판타지 소설의 설정을 모두 따르고 있지만, 그녀가 마녀의 딸이고 마녀가 곧 될 아이라는 것을 뺀다면, 아나이드의 성장소설이라고 해도 좋을 내용의 전개가 이어진다. (사실 생각해 보면 해리포터도 해리의 성장소설이지 싶다.  판타지 소설의 구조를 가진.....그러나 나는 해리포터를 읽어보진 못했다...;;;)

엄마한테 사랑받고 싶고,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고, 파티에도 초대받고 싶은 평범한 사춘기 소녀 아나이드.  그런 아나이드는 어느 날 갑자기 실종되어버린 엄마, 그로 인해 만나지게 된 평범치 않은 친척들의 모습 등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힘들기만 하다.  그녀는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그녀의 혈통 자체가 평범치 않고, 상황의 급박감은 그 모든 것들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기보다 통째로 소화할 것을 강요한다.  그녀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말이다.

그래서, 여기저기 좌충우돌 문제점들에 노출된다.  막 익히게 된 마법을 섣불리 쓰는 바람에 소동을 일으키고, 자신의 마녀답지 못한 행동에 또 실망하고, 어른들께 꾸중듣고 싶어하지 않는 여린 소녀의 마음이 글속에서 읽혀진다.

마녀들은 모두 개성이 넘쳐서 딱히 어른스러운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셀레나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가야 선생이 특히 그랬는데, 삐딱한 마녀라고 생각하고 보면 오히려 입체적인 인물로 느껴진다. 

마녀들의 종족이 여럿이다 보니 육지와 바다와 공중을 모두 아우르는 인물들이 나오는데, 돌고래족 발레리아의 딸 끌로리다의 인물도 호감이 갔다.  그녀의 행동거지는 하나도 예쁘지 않았지만 딱 그 나이 또래의 청소년 모습이 입체적으로 보여진 까닭이다.

말라깽이에 키도 작고 얼굴도 볼품없을 때의 아나이드는 친구들에게 놀림거리였지만, 성장억제약을 먹지 않고 그녀에게 감추어져 있던 비밀들이 드러나면서 아나이드는 엄마만큼이나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으로 성장한다.  그 바람에 그녀를 쳐다도 보지 않던 학교 친구들이 그녀에게 반하는 사태(?)까지 벌어지는데, 인물지상주의는 나쁘지만 이런 변화가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것은 인정하겠다.  역시 이 소설은 성장소설의 범주에서 독자의 공감을 더 이끌어내는 듯하다.

전체 뼈대의 1부에 속하는 이 "마녀들의 전쟁"은 아나이드가 잠재되어 있던 능력을 찾아내고 조금씩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었는데, 이야기의 줄거리는 어느 정도 독자가 예상할 수 있는 범주대로 흘러간다.  누가 진짜 배신자인가, 누가 진짜 아군인가, 누가 진짜 선지자인가 등등 말이다.  그래서 진부했다는 것은 아니다.  아마 내 예상을 벗어났다면 그게 더 실망스러웠을 테니까.  그건 작가의 생각을 내가 미리 안다는 건방진 얘기는 아니고, 내가 생각해도 그 전개가 가장 자연스럽고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중세시대 "마녀사냥"으로 희생된 여자들의 이야기를 이들 마녀들의 전쟁 과정에서 불거진 피비린내 나는 역사로 치환했는데, 상상력은 좋았지만 그것을 아주 정교하게 보여주지 않은 점이 약간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이 세계의 틀을 조금씩이나마 보여줌으로써 1부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아마도 2부의 진행과 3부의 대전쟁은 더 환타스틱한 전개가 되지 않을까 싶다.

1권과 2권 모두 마녀들의 전쟁 계보가 맨 앞에 나오는데 오타가 있다.  둘째 줄에,

"오드는 치유의 마법에 뛰어나고 오드는 영혼과 소통하는 마법에 능했다."에서,

첫번째 오드는 '옴'으로 바꿔야 맞다.  1.2권 모두 잘못 나와 있는데 2판 인쇄에서는 수정되겠지^^

판타지 문학이 몹시 중독성 있음을 새삼 느끼겠다.  이 책도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자신이 상상한 것을 의심치 않고 믿음으로써 남들 눈에 시연해 주는 환상 마법이 어떻게 표현될지가 제일 궁금하다.  전체 마법 중 그게 제일 멋졌다.  혹여 영화로 볼 수 없다고 해도 내 상상 속에서 이들 마녀들의 전쟁은 이미 영상으로 펼쳐져 있으니 아쉬울 필요는 없겠다.  상상의 세계는 넓고 깊고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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