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꿈이었다.
우리 집에 죽은 영혼이 살고 있다는 제보(?)를 듣고 죽은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일련의 사람들이 집을 방문했다. 나 혼자였고, 그들에게 내가 녹음된 테이프를 들려주었다. 녹음된 내용을 다 듣기 전에 엄마가 들어오셔서 손님들을 데리고 집에서 나갔는데, 그 사람들 중 한 사람이 자신이 본 것을 영상으로 재현시켜서 내게 보여주었다. 거기서 진행되는 모습들은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지만 소름끼쳤던 기억이 난다.
그 다음은 아주 커다란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이 이어졌다. 가까스로 그 속에서 빠져나오긴 했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죽었고, 또 다쳤다. 어린 아이들이 울부짖었고, 심지어 그 속에서 강간당하는 여자를 보기도 했다.
건물 속에는 내 아버지가 계셨다. 그에게서 마지막 전화가 걸려온다. 먼저 떠나서 미안하다는 당부의 말.
꿈속의 나는 어린아이였다. 초등학교 6학년 정도의 모습?
나는 전화기에 대고 외친다. 난 아직 어리다고. 더 내곁에 머물러 달라고. 중학교도 가고 고등학교도 가고, 그때까지 살아 있어 달라고. 난 아빠가 필요하다고.
얼마나 서럽게 울다가 깨었는지 모른다. 눈을 떠보니 집엔 아무도 없었고, 그 적막감이 무서워 울적했었다.
아마도, 어제 내내 테러 관련 기사를 보다가 잠이 들어서 그 비슷한 영상을 보았는 지도 모르겠다. 잠깐이었지만 심형래씨 관련 이야기도 꿈에서 본 것을 보면 역시 뉴스의 영향이 크다.(거기다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책의 내용도 어느 정도 오버랩 된듯 하다.)
해마다 이맘 때쯤이면 아빠 꿈을 꾼다. 아마도 돌아가시던 무렵 즈음이어서 그런 듯하다. 살아 계실 적에 고통스러워하던 그 모습이 늘 각인되어, 꿈속에서의 내 아버지는 한 번도 평온한 얼굴이었던 적이 없다. 십년 전 그때처럼 애타게 그리워하진 않지만, 그래도 가끔 미치게 보고 싶은 내 아버지인데, 꿈에서 만나는 일은 결코 반갑지 않다.
내가 스무살 적에 아빠와 헤어질 때에도 더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이 서러웠는데, 더 어린 나이에 생이별하게 된 사람들의 그 상실감은 얼마나 혹독할까. 숨진 배형규 목사님의 아이는 이제 아홉살이라는데...
나는 꿈이었음에도 건물이 무너지고 죽음이 바로 옆을 스치는 그 순간이 끔찍하게 무서웠다. 지금 생과 사가 수시로 교차하는 저들의 마음은 오죽할까. 아프고, 또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