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2disc)
장진 감독, 차승원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보고 싶었던 영화였지만 딱 그 순간에 보고 싶었던 영화는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보게 되었고, 기대 이상의 감동을 받게 된 작품이다.

영화의 제목은 '아들'이다.  '아버지'나 '아빠'도 아니고 '아들'이다.  작품 속에서 차승원은 3살 때 보고서 15년 동안 보지 못한 아들과 하룻밤을 보내도록 허락되어진 무기수다.  무려 15년을 복역한 그는 15년 동안 아들을 보지 못한 한 어머니의 '아들'이기도 하다.  작품 속에선 차승원과 류덕환과의 관계에만 거의 집중을 했지만, 간간히 늙고 병드신 어머니와의 시선을 놓치지 않는다.  치매 걸려 아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옷에다가 거침 없이 실례를 하는 할머니지만, 무심코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옆 자리에 앉으라고 말을 하시는 그분은, 아들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면 사형수들은 무기수들이라도 부러울 수밖에 없다 나오는데, 작품 속 무기수 차승원은 '기다림'을 이야기하면서 사형수들은 처형날이라도 기다리지만 자신들은 기다릴 게 아무 것도 없다며 그 막막함을 얘기한다.  절대적 가치로 누가 더 힘들게냐고 물으면 대답이 궁색해지지만, 무기수들의 기약 없는 기다림도 막막한 것은 사실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저 곤충의 실체가 '하루살이'인지 아닌 지는 작품 속에서 절대로 중요하지 않다.  어제 뭐 했니? 라는 질문에 대칭으로 '내일' 뭐 할 거냐고 묻자 아버지는 버럭 성을 내는 척 한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질문이라고...

내일... 내일은 희망이 있을 때에 의미가 있다.  희망이 있고 의미가 있을 때에 기쁨으로 다가온다.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내일은 그저 '견딤'일 뿐이다.  차승원에게 내일은 아들과의 헤어짐이요, 또 다시 기약없는 기다림의 세월 속으로 풍덩 빠지는 것 뿐이다.  어제도 모르고 내일도 모르고 오늘 죽는 하루살이보다, 어쩌면 더 가여울 수도 있는 그런 사람인 것이다.

장진 감독은 사전 조사를 하지 않는다고 인터뷰에서 말했다.  올곧이 상상력에 의지한다고.  이건 영화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고.  그래서 그의 영화에선 사실성을 비켜가기도 하고 현실과 괴리되어진 내용이 나올 수도 있다.  기러기 가족이 떼지어 날아가는 장면 등은 어처구니 없는 설정이지만, 그 어처구니 없음도 장진식 유머로는 모두 수긍되어진다.  게다가 거기에 동원된 목소리 까메오의 정체를 알게 되면 푸핫!하고 웃을 수밖에 없어진다. 

무려 15년 동안이나 만날 수 없었던, 이제 오늘 지나면 다시 15년... 혹은 그 이상으로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르는 그런 존재가 '아빠'라는 이름으로 나를 찾고 있다.  추운 날씨에 메마른 얼굴을 한, 그리고 갈급한 표정으로 아들을 찾는 아빠의 모습을, 차승원은 꽤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아들은 아빠를 향해, 죽인 사람 얼굴 기억 하느냐고, 뼈아픈 질문도 던져보지만, 부러 차갑게 대하고, 시선도 맞추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래도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을 부정하지는 못한다.  잠들기 전에 불을 끌까?라는 질문에, 불이 꺼지면 잠이 들 것이고, 날이 밝으면 아빠는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들의 돌아누운 등이 외롭고 또 외로워 보였다.

그 밤, 밖으로 나가 그들만의 시간을 보내자고 모의했을 때, 알면서도 모르는 척 보내주던 박교도관의 마음씀이 예뻤고, 새벽 시간에 아빠를 소개시켜주겠다고 불러내자 졸린 눈을 비비며 나와 준 어여쁜 얼굴의 여친의 마음이 참 고왔다.

새벽 사우나에서 아버지 등의 호랑이 문신을 보고 멋있다고 감탄사도 외치고, 함께 잠수를 해준 아빠를 향해 살인자도 무기수도 아닌, 그저 '우리 아빠'라고 지칭할 때 마음이 짜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뜨거운 욕탕 안의 풍경은 어느덧 해저 풍경이 되어 있고, 그 푸른 바다빛은 참으로 따사롭게 느껴진다.

이제 시간은 그들이 헤어져야 하는 순간으로 치닫고, 기다란 기찻길에서 그들은 잡은 손을 통해 서로의 정을 느끼고, 이 영화의 최대 반전으로 접어든다.  혹자는 반전 때문에 오히려 빛을 바랬다고 하지만, 나의 감상으로는 반전 자체는 영화의 본질에 아무 영향도 못 미치는 듯 싶다.  반전이 있어도, 혹은 없어도 영화는 따스한 감성 그대로를 자극했고,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하는 마음에도 변화가 없다.  그들 사이에는 이미 용서와 이해와 그리고 '인정'이라는 관계 형성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영화 초반에 류덕환이 피아노 치는 장면이 나왔는데 너무 수준급이어서 화들짝 놀랐었다.  인터뷰를 보니 컴퓨터로 합성했더란다.  세상에... 기술도 좋지... 어쩐지 손이 여자 손 같은 느낌이긴 했더라.(남자 손이라도 감탄은 마찬가지~) ^^ㅎㅎㅎ

좋아하는 감독과 좋아하는 배우들이 만나서 만든 맘에 쏙 드는 감동의 드라마.  더 많은 사람들이 오래오래 보았으면 하는 영화로 기억될 듯 싶다.  영화의 제작진 모두에게 격려의 박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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