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V홀릭에 쓴 글입니다.




 KBS <경성 스캔들>에는 두 개의 영단어가 등장한다. 하나는 '스캔들'이요, 다른 하나는 '모던'이다. 스캔들은 선우완(강지환)이 일하는 <지라시>같은 가십잡지가 폭로하는 경성 명사들의 남녀상열지사고, 모던은 선우완이나 경성 최고의 기생 차송주(한고은)처럼 신식 교육을 받고 서양식 문물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문화적 스타일이다. 부모의 재력으로 자가용을 몰고 다니며 여자를 울리는 바람둥이 선우완은 '모던보이'고, 선우완이 '조선의 마지막 여자'라는 뜻으로 '조마자'로 불리는 나여경(한지민)과 만나게 되는 이유도 주변 사람들에게 아직도 한복만을 고수하고, 자유연애를 거부하는 나여경을 섹시한 서구식 옷을 입고 자유연애를 하는 '모던 걸'로 바꾸겠다고 내기를 걸었기 때문이다. <경성스캔들>에서 스캔들과 모던은 서구적이고, 소비지향적이며, 향락적인 이미지를 가지는 것이다. 이는 곧 <경성스캔들>이 1930년대 일제 강점기를 바라보는 관점이기다. 자유연애를 해야 가능한 스캔들과 서구문화의 유입과 함께 시작된 모던은 모두 근대화의 산물이다. 그러나, 당시 조선의 청춘들은 근대화의 에너지를 생산적인 곳에 쓸 수 없었다. 일제 강점기하에서 그들의 꿈은 가로막혀 있고, 설사 이수현(류진)처럼 친일을 한다 해도 평생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힌 채 살아야 한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선우완처럼 '모던 보이'가 돼 댄스홀에서 밤을 지새며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것뿐이다. <경성스캔들>의 스캔들은 일제 강점기하에서 연애나 하는 청춘이 아니라, 저지를 것이 스캔들 밖에 없었던 청춘들에 대한 역설이다. <경성스캔들>의 앞에는 현대를 배경으로한 로맨틱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선우완과 나여경의 연애담이 있지만, 그 뒤에는 이수현의 말처럼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그 시절 청춘의 허무와 쓸쓸함이 깔려있다. 그래서 <경성스캔들>에서 선우완이 자유연애는 많이 해도 독립운동을 하는 나여경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사랑'을 한다는 스토리는 흥미롭다. 차송주의 말대로 "조국은 왜놈에게 짓밟혀 신음해도 청춘은 언제나 봄"이지만, 일제강점기하에서 선우완은 나여경을 마음껏 사랑하지도 못한다. 선우완이 나여경을 사랑하려면 독립운동을 해야하고, 나여경은 독립 운동을 위해 선우완 대신 이수현에게 접근해야 한다. 근대화의 산물인 자유연애는 청춘에게 봄을 가져다 줬지만, 조국없는 청춘에게 그것은 허무한 향락이 되고, 독립운동이 곧 개인의 연애에까지 영향을 미치던 시대. <경성스캔들>은 모던과 스캔들로 대표되는 청춘의 경쾌함을 일제강점기의 무거운 시대와 결합하고, 시대극의 진지함을 멜로 드라마의 대중성과 조화시켰다. 그것은 곧 우리가 늘 어둡고 무겁게만 생각했던 그 시절에 관한 시대극이 다시 2000년대 '조국의 청춘'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의 시대극이 다시 '모던'해지기 시작했다.







글 : 강명석(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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