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진 2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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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죠? 왜 당신은 비너스도 스핑크스도 이곳으로 가져오지 않았으면 망가지고 말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가치있는 보물들이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경우를 내 눈으로 직접 보아왔소. 그때마다 애석하기 짝이 없었지. 루브르로 오면 더 이상 손상되지 않아요. 프랑스에는 그럴 힘과 여유가 있소.

-그 점에서는 영국도 독일도 미국도 프랑스와 생각이 일치하는 것 같군요, 콜랭 일본이나 청나라나 러시아가 서로 자기 나라가 조선을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처럼요.-85-86쪽

호감에서는 구경거리로서든 관찰을 당하는 한 리진은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자유로울 수 없으면서 평등하게 느낄 수는 더더욱 없었다.-87쪽

당신이 조선의 서책이나 도자기들이 조선에 있는 것보다 여기에 있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는 한 당신의 힘은 당신의 힘이지 내 힘이 아니에요. -89쪽

자신의 인생에 무관심하면 희망이 죽고 다른 사람의 삶에 무관심하면 죄를 짓게 된다고 하던 이도 모파상이었다. 그러면서도 모파상 자신은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112쪽

조선식 기와집을 개조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게 조선 기와집의 장점이기도 했다. 문을 떼어내고 유리창을 달아놓아도 지붕이며 구조 때문에 본모습을 잃지 않았다.-178쪽

변하지 않는 것은 마음을 애잔하게 한다.
리진은 반촌의 집에 들어서자 맨 먼저 매화나무를 손으로 쓸어보았다. 눈송이 같은 흰 꽃이 야윈 매화나무에 달려 있다. 지난 겨울의 혹독한 바람을 견디고 세상에 나온 꽃답게 단아한 모습이다. 얼마간 차가운 봄밤 공기 속에 선 채 리진은 귀를 기울여봤다. 주위가 시끄러우면 매화의 향을 맡을 수 없다고 하여 매화향을 두고 귀로 듣는 향이라고들 했다.-202쪽

희망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일이 희망을 갖는 일보다 더 힘겹다.-207쪽

나는 당신의 나라에서 '소인'이 아니라 '나'로 살았으며 행복했습니다. 에펠탑을 잊어도 루브르 박물관을 잊어도 나는 파리 대로변의 활기차고 자유롭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잊지 못할 겁니다. .................나의 힘으로 다른 사람을 보살피는 박애가 무엇인지, 나의 자유로 나의 삶을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궁에서 지냈습니다. 나를 겹겹으로 에워싸고 있는 것들을 깨뜨리고 나를 느끼는 일은 설레지만 두렵고 심장이 뜨거워질 만큼 고통이 따르는 일이었습니다.
길린,
나를 당신에게서 내려놓으세요. 사랑하는지 아닌지 이젠 알 수 없어졌다는 당신의 말을 나는 이해합니다. 오해하지 않습니다. 서운해하지도 않습니다. 그래도 나를 버릴 수는 없다, 고 했던 당신의 갈등을 알기 때문입니다. 나는 처음부터 그랬는걸요. 당신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으면서도 당신을 떠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면 그땐 내가 '소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면, 당신은 그리 많은 것을 내게 주었는데 나는 끝내 인색했습니다. 당신을 강자라고 생각했고 나는 약자라 여겼습니다. 나도 모르게 당신은 프랑스이고 나는 조선이라 여기는 마음이 내 안에 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우리는 남자와 여자였을 뿐이었는데.
길린,
나, 리진을 내려놓고 모쪼록 자유로우세요. 그래야 나도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당신을 만나지 못해도 이따금 당신의 후두염이 염려되겠지요. 당신도 나를 만나지 못해도 이따금 내 머리를 빗기고 싶겠지요.
이것으로 우리는 충분하다 여깁니다.
1895년 6월 3일
조선에서 리진-241-243쪽

자신이 왕비를 어머니라 여겼음을 왕비가 칼을 맞는 순간에 리진은 깨달았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기조차 어려운 왕비가 아니라 사가의 다정한 어머니라 여겼음을. 그 사이에서 늘 분열했으나 속 깊은 곳의 리진의 마음은 왕비를 외롭고 고단하고 다정하고 힘이 세고 강건한 어머니로 여겼음을. 그래서 서운해하면서도 원망하면서도 미워하면서도 종내 사랑할 수 밖에 없었음을.-295쪽

(서영채 해설)
민족사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을미사변은, 시해의 대상이 왕이 아니라 왕비라는 점에서 그 치욕스러움이 배가된다. 왕은 그 자신이 상징하는 질서와 운명을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에 왕의 죽음은 그 자신과 그를 포함한 칼을 쥔 손들의 집단이 책임져야 할 몫이다. 즉 왕의 죽음은 그가 표상하는 질서의 부오기에 대한 정서적 반응 정도로 족한 것이다. 그러나 왕비의 죽음은 경우가 다르다. 프로이트 화법으로 말하자면 여성들은 남성들의 전쟁터에 걸린 내깃돈이다. 남성들간의 전쟁에서 희생양이 되는 것은 여성과 아이들이되, 전쟁에서 승부가 결정되고 난 후 여성과 아이들이 당하는 수난은 전쟁터에서 결정된 승부를 재차 선명하게 의식화하는 절차에 해당된다. 전쟁터에서 패배한 왕의 왕비는 상대방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승부가 결정되는 것은 전쟁터에서의 일이지만 그것이 한 집단 속에서 상징화되는 것은 이같은 왕비의 노예화를 통해서이다.
......................
그렇다면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경우는 어떤가. 왕의 죽음이 있기도 전에 왕비의 죽음이 먼저 다가와버린 것이다. 그래서 왕비의 시해라는 사건은, 전쟁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끝나버렸고 이미 왕이 시체가 되었음을, 왕뿐 아니라 국체의 수호자여야 할 세력들이 모두 걸어다니는 시체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건인 것이다. 요컨대 왕비는 왕보다 먼저 살해당함으로써 한 왕국의 왕과 신하 모두가 시체임을 만천하에 선언한 셈이다. 전쟁터에 나갈 기회조차 얻지 못한 시체들.-325-326쪽

(서영채 해설)
한때 우리의 것이었으나 이제는 근대성의 밑지층이 되어버린 그 세계는 한 번도 제대로 된 애도의 대상이지 못했다. 우리의 역사 속에서 근대성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부의 힘에 의해 강요된 것이었고 또한 우리의 전근대는 우리 자신에 의해 청산된 것이 아니었다. 요컨대 우리에겐 작별의 의례를 행할 그 어떤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근대성의 우울 밑에 억압되어 있던 그것은 언제나 일그러지고 기이한 모습으로, 혹은 되찾아야 할 전통이라는 지나치게 성스러운 이름으로, 더러는 민족 감정이라는 이상한 탈을 쓰고 회귀하곤 했던 것이 현실이었다. 그러니 비록 뒤늦은 것이라 할지라도 사적이고 윤리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신경숙의 저 애도는 아직 유효한 것이지 않을까. -33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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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7-19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까는 한줄 띄어쓰기가 안 됐는데 지금은 되어 있네@.@;;;

비로그인 2007-07-23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인생에 무관심하면 희망이 죽고"

마노아 2007-07-23 15:51   좋아요 0 | URL
끄덕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