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네버랜드 Picture Books 세계의 걸작 그림책 107
레오 리오니 글 그림, 최순희 옮김 / 시공주니어 / 199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무려 40년 전에 쓰여진 동화다.  그렇지만 지금 보더라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여전히 톡톡 튀는 상큼한 멋과 맛이 있다.

프레드릭은 들쥐다.  다른 들쥐 친구들이 겨우내내 먹을 양식을 구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에 프레드릭은 우두커니 앉아서 생각에만 잠겨 있다.  친구들의 부지런함과 땀을 비웃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동참하지는 않는 독특한 프레드릭.

언뜻 보기에 우리의 유명한 이야기 '개미와 베짱이'가 떠오른다.  그렇다면 이건 서양판 개미와 베짱이?  속단은 금물이다.  좀 더 지켜보자.

친구들이 열심히 곡식을 모으고 있을 때에 프레드릭은 햇살을 모은다며 가만히 앉아만 있다.  지긋이 감긴 눈은 그야말로 사색 그 자체다.

또 다른 어느 날은 동그마니 앉아 풀밭을 내려다보고 있는 프레드릭.  들쥐 친구들이 또 묻는다.  이번엔 뭐하느냐고.

프레드릭은 색깔을 모으고 있다고 대답했다.  겨울엔 온통 잿빛 뿐이니 색깔을 모아둬야 한다고.

아무래도 프레드릭의 머리 속은 4차원 같다. 

또 어느 날, 마치 조는 것처럼 보이는 프레드릭은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고 대답한다.  프레드릭은 과연 긴긴 겨울을 어떻게 버틸 생각인 것일까?

드디어 들쥐들은 겨울나라에 도착한다.  하얀 눈이 소담스럽게 내릴 때, 들쥐들은 돌담 틈새로 난 구멍으로 들어갔다.  처음엔 넉넉했던 먹이들이 차차 줄어들고, 들쥐들은 이제 아무도 재잘대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때, 프레드릭이 앞으로 나선다.  그가 여름 내내 모았던 양식은 햇빛과 색깔과 이야기!  이제 그것들이 힘을 발휘할 차례다.

추위에 떠는 들쥐들은 눈을 감고 프레드릭이 펼쳐보이는 마법에 젖어든다.  그것은 햇빛을 떠올리자 몸이 점점 따뜻해진다고 느끼는 만족감이었고, 파란 덩굴꽃과 노란 밀짚 속의 붉은 양귀비꽃, 또 초록빛 딸기 덤불 얘기 속에서 화사한 색깔을 보는 충족감이었다.  뿐만 아니다.  프레드릭이 모아두었던 온갖 다채로운 이야기들은 마치 라이브 콘서트라도 보는 것처럼 신나는 흥분을 들쥐들에게 선사해 주었다.

이제 그들에게 겨울은 춥고 무미건조한 잿빛 계절이 아니다.  찬란하고도 따뜻한 아름다운 계절이 되었다.  모두가 걷는 길과는 다른 길을 걸었던 프레드릭이 선사해준 계절의 선물.

모난 정이 돌 맞는다고, 체제에서 벗어난 사람을 향한 시선은 곱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때로 그들로 인해 오히려 뜻밖의 기쁨과 선물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사람들은 역시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더 이상 베짱이가 손가락질 받는 대상이 아니게 된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 프레드릭은 꿈을 잃지 않는 예술가일지도 모른다.  그의 사색과 그의 깊은 고뇌는 추운 겨울을 보낼 수 있는 양식만큼이나 중요한 것이기도 하다.  나와 '다름'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당연한 인식이 우리에게도 필요함을 책은 말해준다.

많은 칼라를 쓴 것이 아닌데, 책이 주는 색감은 강렬하다. 콜라주 기법으로 일일이 오려 붙였는데, 그 자연스러움은 어수룩함에서 오는 풋풋한 맛이 있다.  자로 잰듯한 깍듯함이 아니라, 눈대중으로 맞춘 듯한 털털한 재미가 책에는 한가득이다. 구름빵의 입체 기법이 연상되는 오래된 책에서 싱그러운 기쁨을 맛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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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7-06-28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프레드릭, 넌 시인이구나!" "나도 알아."
"나도 알아" 할 때의 빨개진 프레드릭 얼굴, 저는 그 장면을 가장 좋아해요!

마노아 2007-06-28 13:15   좋아요 0 | URL
그 쑥스러워하면서도 뿌듯해 하는 얼굴이 예뻐요. 참 귀엽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