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가의 기적 (2disc)
윤제균 감독, 하지원 외 출연 / CJ 엔터테인먼트 / 2007년 6월
평점 :
품절



이 영화의 포스터가 어떠냐는 설문조사도 이메일로 받은 적이 있었는데, 나의 첫 느낌은 '진부하다'는 거였다.  영화 프로그램에서 맛보기로 보여주는(맛보기 치고는 많이 보여주는...;;;;) 것을 보고는 눈물 자아내는 슬프지만 해피엔딩...(제목이 '기적'이니까)일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총체적 평가를 내린다면, 그 짐작이 비켜가진 않았지만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단순히 신파로 눈물 억지로 짜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슬퍼서 눈물 펑펑 흘리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영화의 시작은 명란(하지원)의 아버지(정두홍)가 링 위에 서는 장면과 이 영화의 거의 끝부분이 될 명란의 시합 장면이 교차되어 보여준다.  동양챔피언을 먹은 아버지의 그 경기는 어머니의 제사날이었고, 아버지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아버지로서 링 위에 서지만, 시합은 KO패로 끝났고 그는 반신불수가 되고 만다. 

이제 시간을 뛰어넘어 이곳 달동네에 철거주민들의 도장을 받으러 등장한 자칭 불량배 필제(임창정).

그렇지만 이곳 주민들 심상치 않다.  첫 대면부터 맞닥뜨리게 된 것은 일동과 이순 남매.  순수함과 순진함으로 무장한 꼬마 남매의 활약은 이 영화의 60%를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란은 소박하게(?) 동양 챔피언을 꿈꾸며 권투 연습에 땀을 빼고 낮동안에는 노가다로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진다.  아버지는 욕창이 번진 몸으로 끙끙 앓으며 하루하루 고된 세월을 보내고 있고, 철없는 동생 덕구는 비행을 목표로 날마다 날아오르지만 날마다 추락한다.





선주(강예원)는 공장을 뛰쳐나가 다단계 사업장에 취직한다.  그 회사의 자판기를 운영하는 태석(이훈)이 화장실 수돗물을 받아다가 자판기에 물을 채우는 것을 목격(?)하고서 둘의 실랑이는 시작되고 인연도 시작된다.

영화의 초반은 일동 이순 남매의 구수한 사투리와 필제가 수퍼맨(!)이 되어가는 과정이 코믹하게 어우러지면서 한판 신나게 웃게 만든다.  그가 비록 말과 행동이 거친 녀석이기는 해도 마누라 패는 놈이랑 아이들 패는 놈이 세상에서 제일 나쁘다고 항변할 때 그의 본바탕이 착하다는 것을 은연중 알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그의 원래 목적이 달동네 재개발 철거인 이상 이어지는 비극의 싹을 막을 수는 없다.

영화는 어린 아이들의 세계에서부터 철저하게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없이 사는 사람이 얼마나 비참할 수 있는 지를 처참하게 보여준다.  영화에서 가장 많이 마음을 쥐어뜯는 장면이 바로 '토마토' 이야기인데, 실제 열연을 해준 두 아역 배우들이 고생을 많이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가진 것은 자존심뿐인 선주가 태석의 다가섬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진심인 것을 알면서도 거짓으로 자신을 지키려하는 그 마음이 감정이입되어, 그녀가 내팽개치던 그 구두에 그녀의 지난한 삶이 묻어있어 내 마음도 아려왔다.

철거가 시작되고 집이 무너지는 아이들의 억장도 무너지고, 필제는 그 아이들에게 철거되고 있는 집이 아닌, 그 반대편 푸른 숲을 보여주며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를 부르게 한다.  목청껏 외치지만 등 뒤에서는 폭삭 주저앉는 집의 투박한 외침과 하늘로 피어오르는 먼지만이 대답을 할 뿐이다.  즐겨 불렀던 그 동요가 그토록 슬픈 노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미어지는 마음으로 들어야 했다.

덕구는 여전히 날아보겠다고 하늘로 발돋움을 하고, 동양챔피언에 도전하는 명란의 힘겨운 경기가 같은 시간대에 진행된다.





이 영화를 찍고 나서 바로 황진이를 찍었다던데, 근육 만들고 다시 근육 풀고... 참 독하게 연기했을 거란 짐작이 든다.  체육관 관장으로 나온 주현이 하지원과 임창정을 보고는 자신의 연기가 너무 안이했다고 반성했더라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난다.

영화의 마무리는 아름답게 지어진다.  제목에서 보여주듯이 기적이 일어나니까.  하지만, 난 그 만들어진 기적이 뜨겁도록 아팠다.  '희망'을 갖고 있으니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말을 하지만, 때로 그 '희망'이라는 것은 내포하고 있는 그 의미로 인해 얼마나 잔인해지곤 하던가.

영화에서처럼 일상의 모든 서러운 소시민이 다 챔피언이 되고 집 나간 엄마가 돌아오고, 가난한 여공이 멋지고 성실한 남편을 만나진 못한다.  하늘 향해 뛰어올랐던 덕구의 그 몸짓이, 나는 오히려 땅으로 땅으로 추락하고 마는 가난한 이들의 절망어린 몸짓 같아 보여서 눈을 가리고 싶었다.




그럼에도, 영화의 마지막이 행복한 모습이어서, 나는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었다.  탄산음료 대신 내리 쥬스를 마시며 살 수 없는 형편의 그들일지라도 '고장'이라고 써있는 저 메시지 하나로도 진심을 전할 수 있는 그들의 소박한 삶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서 기뻤다.

감독은 색즉시공과 낭만자객을 만든 윤제균인데, 낭만자객을 보진 못했지만 색즉시공의 그 배꼽잡는 웃음 뒤의 불편함과 달리 이 영화는 안쓰러움 가운데서도 따스함을 느낄 수 있어 더 돋보였고, 역시나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의 열연에 호감도 급상승이다.  계란탁 파송송에서의 캐릭터와 약간 비슷하지만, 임창정의 속깊은 날건달 연기가 너무 잘 어울렸고, 마지막 하지원의 그 파워풀한 씬도 기분 좋은 여운으로 남는다.

그나저나... 그렇게 달동네에서 쫓겨난 우리의 이웃들은 지금은 또 어디에서 서러운 일상을 보내고 있을까...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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