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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처녀
권교정 지음 / 길찾기 / 2007년 3월
평점 :
절판
주문한 지 꽤 된 것 같은데 책더미 속에 깔려 있어서 잊고 지냈었다. 뒤늦게 퍼뜩! 떠올라 부랴부랴 읽었다.
책은 하드커버에 이중 표지인데, 표지를 걷어내면 전통문양만 그려져 있어 표지만 보고는 만화책으로 보이지 않는 느낌이 든다.
이 책 전에 나왔던 '왕비님 이야기'와 관련된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그래 보이진 않고, 작가가 구상하고 있는 커다란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마법과 모험이 살아있는 가상 세계를 주무대로 하고 있고, 그곳에 용맹한 임금 데트의 전설이 내려온다. 이 책은, 그 데트 임금이 노년에 왕비를 잃고 통 잠을 못 이루게 되자, 어린 소녀 아이를 데려다가 키우게 된 이후의 짤막한 이야기이다.
책을 덮고나서는 조금 황당했다. 이게 끝이야?라는 기분.
그런데 큰 이야기의 일부라는 것을 알고나니 한시름 놓으면서 역시 권교정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랄까... 서두르지 않고 조근조근 풀어야 할 이야기 한토막을 천연덕스럽게 독자에게 보여준다고나 할까.
이 이야기 말고도 청년왕 데트의 젊었을 적 모험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고, 그 데트 왕의 80년 전 이야기도 준비되어 있다고 한다.
작업 속도로 보건대 다 보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 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는 데 그 정도 기다림은 애교라고 하겠다.
데트 임금은 참 짓궂었다. 딸자식처럼 키운 그 처녀에게 많은 재물과 권력을 쥐어주고, 처녀를 사랑한 청년에게는 목숨을 살려주며 선택의 기회를 준다. 구속받고 있던 처녀였을 때와, 지금 자유의 몸이 되어 자신보다 더 많은 것을 갖고 있는 처녀에게 청년은 똑같은 마음과 각오로 사랑을 속삭일 수 있을 지, 임금은 흥미를 갖고 지켜볼 것이다.
그가 단순히 그들의 사이를 훼방놓거나 어깃장을 놓지 않고, 그 사랑이 더 탄탄해질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 독특하다. 물론, 그들의 사이가 틀어진다고 하여도 그건 임금의 탓이 아니다. 운명을 부르짖었던 청년 헨지가 과연 처녀와의 사랑을 자신의 운명으로 만들 수 있을 지 궁금하다.
책이 고급스럽게 만들어지긴 했지만, 이 적은 페이지에 이 가격은 솔직히 너무하다. 아니었다면 별 다섯을 아낌 없이 주었을 텐데... 페이지가 전혀 표시되지 않은 것도 그 때문 아니었을까? (ㅡ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