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빠가 최고야 킨더랜드 픽처북스 9
앤서니 브라운 글.그림, 최윤정 옮김 / 킨더랜드 / 2007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리던 시절에 부모님이 자식에게 미치는 영향, 또 차지하는 위상은 어마어마하다.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혹은 좋은, 멋진 부모님이 나의 부모님이 될 테니까.

모두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체로 그러하지 않을까 싶다.  내 어린 시절도 비슷하다.  어릴 적에,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라는 질문에, 난 늘 주저하지 않고 '아빠'를 외쳤다.

사실, 왜 그랬는 지는 모르겠다.  유달리 자상하거나 인자하거나 혹은 나와 잘 놀아준다든지... 그런 분은 아니셨다.  말수가 적었고, 우리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던 분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는 늘 아빠가 좋았다.  막내라는 것을 무기로 아빠 무릎 위에 오랫동안 앉아 있었고, 유독 질문도 많이 했다.  아빠는 내 질문에 막힘이 없었다.  주로 걸어다니는 '사전' 역할을 해주셨다.

중학교 때에는 한문 시험을 보기 전날이면 옥편을 찾는 대신 아빠와 함께 시험 공부를 했고, 아빠는 기꺼이 밤샘 공부도 같이 해주셨다.  효용 면에서는 혼자 하는 공부보다 시간이 더 걸려 버렸지만, 그렇게 함께 갖는 시간은 소중했고, 그래서 기뻤었다.  수학 시험도 아빠와 함께 준비하는 단골 메뉴였고 말이다.

이 책의 어린 아이처럼 아빠는 누구보다 힘이 세고, 못하는 게 없으며, 심지어 달조차 뛰어넘고 빨랫줄 위를 건너갈 수 있는 천하무적으로 아빠를 여긴 것은 아니지만, 아빠와 함께 장기를 두거나 오목을 두고, 역사적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최고의 즐거움이었다.  다른 식구들이 함께 하지 않는 시간을 내가 독차지 한다는 어깨 으쓱함이 있었는 지도 모르겠다. 

너무 조용하셨던 아빠는 식구들이 부러 말을 붙이기 전에 먼저 입을 여시는 일이 거의 없으셨다.  아빠 만큼이나 무뚝뚝한 식구들로 포진되어 있는 까닭이다.  그 사이에 별종처럼 막내 딸은 종알종알 수다를 그치지 않았다.  아빠는 언니들처럼 시끄럽다고 면박을 주지 않았고 나만큼 많은 대답을 해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내 얘기를 들어주는 청자였다.

조카는,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라는 질문에 언제나 '아빠'라고 대답한다.  그 이유를 물어보면 아빠가 함께 '축구'를 해주기 때문이란다.  늘 밥을 챙겨주고 옷을 챙겨주고, 어린이집 준비물을 챙겨주는 엄마보다, 함께 땀 흘리며 실컷 놀아주는 아빠가 조카에게는 더 멋진 존재다.  언니는 서운할 테지만, 난 그런 조카의 마음이 이해가 간다.  나의 아빠도, 남들 보기에 별로 티는 안 났다지만, 내게는 좋은 놀이 친구이기도 했으니까.

이 책의 아빠처럼 운동회날 다른 아빠들과 달리기 시합을 해주신 적은 없었다.  대부분의 아빠들이 그랬을 테지만.  소풍날 엄마가 쫓아가질 못하는데 아빠가 같이 가주셨을 리 만무다.  그래도, 아주 드문 기억이지만 고등학교 시절 도시락을 집에 두고 갔을 때, 물어물어 우리 학교에 친히 와주셨던 아빠가 기억이 난다.  야쿠르트 한줄도 간식으로 사들고.  그냥 매점에서 사 먹어도 되고, 친구들이랑 나눠 먹어도 되는데 딸자식의 교실 밖에서 서성이던 늙고 메말랐던 얼굴이 이 시간 사무치게 떠오른다.

살아 계셨다면, 오늘 엄마와 함께 결혼 기념일을 축하 받으셨을 아빠 생각이 유독 난다.  하필, 오늘 읽는 게 아니었다는 후회가 살짜쿵 든다.

이 책의 화자인 어린 아이는 우리 아빠가 최고인 이유를 '아빠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아빠 품에 안기며 외친다.

이미 다 자라버린 나는, 아빠가 세상에서 '최고'라는 말은 이미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낯 간지러워서 못하겠다.  그렇지만, 아빠가 내게 정말 아름다운 존재인 것은, 아빠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아빠를 사랑하기 때문이란 것도 알고 있다. 

오늘따라 유독, 생각나네요.  아빠, 보고 싶어요. 아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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