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나무판자 덧대놓고 ‘일본거리’라고요?
[한겨레 2007-04-02 19:57]    

[한겨레]
건축인가 가면인가. 도시 거리가 가짜 세트장으로 바뀌어도 좋은가.

인천 중구청 앞거리(사진)가 ‘일본 거리’로 변했다. 인천 중구청은 지난달 초 개화기 때 일본 조계지였던 인천 중구청 앞길 도로에 접한 건물들 앞면을 일본식 장식물로 꾸몄다.

중구청 앞길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거주지역이었는데, 이 길을 당시처럼 보이게 일본풍으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이 사업은 인천 옛 도심인 이 지역에 남아있는 개화기 건물들을 보존하는 한편 주변 건물들을 당시 분위기로 꾸미는 ‘개항기 근대 건축물 리모델링 사업’의 하나다. 거리를 일본식으로 꾸며 바로 옆 인천 차이나타운과 이어지는 관광지로 부각시켜 낙후된 지역 경기를 되살리려는 것이 사업 목적이다.

이렇게 꾸민 중구청 앞길은 얼핏 보면 19세기나 20세기 초 일본 거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건물 앞면에 30㎝ 정도 두께의 목재 장식물을 덧댄 것뿐임을 금세 깨닫게 된다. 건축주가 리모델링에 동의하지 않은 건물들은 일본식 치장을 하지 않은 채 중간중간 이빨 빠진 듯 원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이 일본 거리 사업은 2005년부터 추진되기 시작해 거의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일부 언론에서 조선을 수탈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역사인식 부재라는 관점에서 비판한 것 외에는 별다른 보도조차 없었다.

하지만 일부 학계와 시민들은 제대로 된 건축이 아니라 껍데기를 장식하는 문제와 정확한 고증 부재 등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건물 디자인이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일본식 건물들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며 정확한 고증 없이 대략 일본의 19세기 가옥처럼 꾸민 것이기 때문이다. 이에 인천 중구청과 시공 업체 쪽도 자료 부족으로 정확한 재현이 불가능해 임의로 일본풍으로 디자인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일부 시민들은 이 거리가 인천의 수치거리가 될 것이라며 졸속 전시행정 측면을 비판한다. 지역 문화시민단체 ‘터진개문화마당 황금가지’ 대표인 이종복(44)씨는 “‘짝퉁’ 건물조차 아니고 건물에 가면 같은 화장만 씌우는 식으로 재현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놀랍다”며, “실제 거리를 조악한 드라마 세트장처럼 만들어버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역시 인천 시민인 건축평론가 전진삼씨는 “정확한 고증으로 제대로 재현한 것이 아니지만 이를 모르고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당시 이 지역에 이런 건물들이 있었을 것으로 잘못 알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잘못된 정보와 행정으로 시민들을 우롱하는 셈이며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문화적 수준을 높이기는커녕 오히려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낼 것이란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한 건축 전공자는 “일본 건물이라고 하지만 오히려 중국 건물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중구청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을 더욱 확장할 방침이다. 3억6천여만원을 들여 1차적으로 14채를 새로 꾸민 데 이어 구의회에서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시작할 2차 사업에서는 20억원을 투입해 모두 96채의 건물 앞면을 일본식은 물론 다른 외국풍으로 꾸밀 계획이다. 중구청 관계자는 “1차 사업에선 디자인이 획일적이었는데 2차에서는 공청회를 열어 의견도 수렴하고 고증에도 최대한 신경을 쓸 예정”이라고 말했다.

인천/글·사진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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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03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참. 기가 막힌 노릇이군. 한국 안의 '재팬 타운'~???
차라리 그 돈으로 한국 전통 거리나 더 재현하는게 백번 좋을 듯 합니다만.

마노아 2007-04-03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화기 때의 모습을 재현한다라고 한다면 역사적 의미를 둘 수 있겠는데, 저렇게 거죽만 바꾸는 시늉을 하는 것은 솔직히 우습습니다. 어떤 '의미'와 어떤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