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 프랑스 만화가의 좌충우돌 평양 여행기
기 들릴 지음, 이승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4년 9월
평점 :
절판


평양 프로젝트를 읽을 즈음 같이 봐야지...하고 꼽았던 책이다.  평양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 하나는 남한 사람이고 하나는 캐나다인이라는 차이 외에도 다녀온 시점에 차이가 있고, 체류 기간도 차이가 있고, 무엇보다도 정서 차이가 크기 때문에 얼마만큼 다른 관점을 보여줄 것인지 궁금했다.

평양 프로젝트는 좀 더 해학적이고 코믹적인 요소가 많았는데, 그럼에도 그것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많이 씁쓸했었다.

이 책은, 철저히 이방인의 관점에서 들여다 보는 북조선의 모습인데, 두 달이라는 체류 기간 동안 그가 느낀 감정은 아마도 다른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북한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너무도 폐쇄적인, 자유라고는 없는, 강요되고 강제된 사상과 노동, 그리고 감정의 표현.

노상 따라다니는 가이드와 통역은 사실상 감시자이고, 보여주기 위해서 꾸며놓은 전시관이라던가 백화점, 지하철 등등.  어디에도 실제 '필요'를 위한, '생활'을 위한 대상이 없다.  전력 부족으로 조명도 켜지 않는 그곳에서 라스베이거스를 연상시키는 지하철 역사에 작가가 당황한 것은 당연하다.  그 지하철이 달랑 한 정거장만 운행되고, 누구도 두 정거장을 가본 사람이 없다는 것에 웃음 아닌 웃음을 지어본다.

김일성의 가슴에는 김정일의 배지가, 김정일의 가슴에는 김일성의 배지가 박혀 있었다.  그 배지를 들여다 보면 또 다시 서로의 얼굴을 박고 있는 부자의 모습이 계속 교차할 테지.  마치, 어디서든 내려다 보고 있고 굽어 보고 있고, 감시하고 있는 그들 부자의 모습인 듯 해서 섬뜩함마저 일었다. 작가가 거울에 비친 김정일의 모습에 소스라치게 놀라던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단지 벽에 걸린 초상화가 비친 것뿐이지만 노이로제처럼 따라다니는 망령에 작가는 제 얼굴을 잊은 듯한 착각을 느꼈을 것이다.  그게 생활이고 인생인 그곳 주민들은 얼마나 진저리 날까.  아니... 그게 문제가 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알아도 안다고 말하지 못하고 살 터인데...

너무도 빈약한 물자에 낙후된 환경, 생기라고는 없는 박제된 도시의 전형.  그 안에서 앵무새처럼 반복되어지는 찬양과 고무의 외침들.

작가가 외국인이어서 말을 다 못 알아들었기에 그 정도로 끝났지,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두달이 지나기도 전에 머리에서 비상신호가 울리지 않았을까.

갑갑했다. 답답하고, 안스럽고, 답이 없는 그 물음에... 끝이 보이지 않는 출구에 참으로 막막했다.  달리 무엇을 해야할 지도 모르겠고, 무엇을 할 수 있는 지도 모르겠고, 아니, 무엇을 하고자 하는 의지라는 게 나에게 우리에게 있는 지도 자신이 없다.  '남'의 얘기가 아님을 알지만, '나'의 얘기로, 나의 일로 체득되지도 않는다.  답답하지만 그 답답함을 해소할 어떤 행동도 나오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는 것도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지만, 빛이 보이지 않는 동굴 속에서 사는 듯한 북한 동포들의 모습은 너무 잔인하게 보인다.  (아이러니하게도, 남한으로 귀순한 동포들이 그쪽에서보다 잘 살고 있다는 소리도 별로 들리지 않는다ㅠ.ㅠ)

그들 내부의 소위 선택받은 사람들은 그 상태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울까?  모두의 피값을 대가로 제 배만 부르는 게 감당되어질까?  아니, 그런 사람은 여기도 많고 어디에도 많으니 다르게 물어보자.  억만 금의 크기로 그곳에서의 삶이 보장된다 할지라도, '유지'하고 싶은 가치를 스스로 부여하고 있는 것일까?  다수의 피폐한 사람들 말고 선택받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말이다.  힘 없는 자의 바람이 커지면 혁명이라도 일어날 테지만, 무엇을 바래야 하는지, 무엇을 원하는 지도 모르고 산다면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있을까.  그들 안과 바깥의 차이를 아는 사람들이 영원토록 그 체제의 유지를 바라고 산다면?

비약이 심했을까.  갑갑한 마음에 두통만 커진다.  그들만큼이나 이곳에도 그들과의 공존 공생을 원치 않는 사람이 많은 듯해서...... 어쩐지... 못 견디게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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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3-15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를 읽으면서 저도 갑갑한 마음이 드네요. 잘 읽고 갑니다.

마노아 2007-03-15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오랜 숙제죠. 딱히 해답이 보이지 않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