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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ㅣ Comic mook 2
나예리 외 지음 / 거북이북스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코믹 무크 1호 BOB은 기대가 컸던지라 다소 마음에 부족했다. 그래서 나중에 방출해야지...하고 따로 책을 분류해 놓았는데, 이 책 코믹 무크 2호가 너무 마음에 들어 다시 책꽂이로 옮겨가게 되었다. 3권 '거짓말'이 나오면 함께 콜렉션으로 남겨두기 위함이다. ^^
아무래도 두번째 발간이다 보니 훨씬 안정된 느낌이다. 지난 이야기는 하나의 주제로 묶였다지만 너무 산만하고 따로 노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 주제는 한 주제 아래 다양성을 허락했고, 또 제 각각의 상상력을 동원하여 기발한 맛들을 보여주었는데도 묘하게 통일감이 있다.
그리고 수위가 높아지다 보니, 이 작가가 이런 얘기도 쓰는구나... 싶은 작가가 여럿 보였다. 작품 뿐아니라 작가도 다시 보게 된 셈.
표지부터 발칙하다. 띠지를 걷어내면 이 책이 19세 미만 구독 불가인 이유가 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런 깜찍한 아이디어라니..;;;;
첫번째 작가 석정현. 그의 책 '석정현 소품집'의 표지가 작가라고 생각했던 나는 여자 작가인줄 알았다. 세상에, 내가 작가 본인이 굉장히 예쁘군...했던 것은 그림이었고..;;;; 작가는 남자였다. 쿨럭....ㆀ
정물을 볼 때는 흔들리지 않던 원초적 본능이, 살아있다고 여기는 순간 꿈틀거리며 흔들린다. 짧은 페이지였지만, 충분히 공감이 가는 이야기였다. 아니라면 누드를 보아야만 하는 사람은 얼마나 난감할까..;;;
두번째 '선생님'의 작가 이유정. 그 옛날 토마토를 먹는 재미난 흡혈귀가 나오던 그 만화가와 동일인물일까? 상당히 충격적인 전개였다. 그 대상이 학생과 교사였다는 점에서. 이 정도 수위가 표현될 수 있다는 것에 경이로움까지 느껴졌달까. 19세 미만 구독 불가라는 딱지가 작가들에게는 오히려 '자유'를 준 것일까?
작가 홍윤표는 무려 마감을 3개월이나 늦었다고 하는데, 작품의 내용이 그의 지각을 대변해 준다. 어쩜 그렇게 사실적일까^^ㅎㅎㅎ
나예리의 작품은 감춤으로써 더 드러내는 욕망을, 그 심리적 변화에 의한 충동을 무척 섬세하게 그려내었다. 무엇을 보여주어서가 아니라 어떤 대사를 던지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면서.
박무직의 '숟가락 님이 보고 계셔2'는 폭소를 자아낸 작품이다. 세상에, 식욕과 성욕이 그렇게 닮아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포툰이라고 해서 작가가 요새 심혈을 기울이는 장르라고 하는데 '구름빵'을 떠올리면 되겠다. 실사와 만화가 결합을 했는데, '에로틱'이라는 주제를 200% 살려서 눈에 뻔히 보이는 식빵이나 마요네즈 만으로도 얼마나 음란해질 수 있는지 결정타를 날린 셈.
채민의 '그 여자는 거기 없었다'는 단편 영화 한편을 본 기분이다. 대사도 별로 없다. 컷의 변화도 많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건너뛰는 것과 함께 생각의 폭이 같이 뛰어버린다.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독자는 무언가를 읽게 된다. 그 여자는 거기 없었지만, 독자는 이미 보고 말았다.
'동물의 왕국'은 요새 유행하는 CF를 연상시킨다. 지금 필요한 것은 '스피드'라는 광고인데, 꼭 그런 느낌이다. 적나라하고, 그만큼 집요하게 웃겼다.
'섹시한 남자'는 굉장히 반어적인 작품이다. 허무 개그와의 접목이 연상되는데, 어이 없고, 그 이상으로 재밌었다. 하핫, 일상 속에서 이렇게 에로틱한 소재가 있다니...;;;;
'맘에 들어' 역시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으면서 많은 것을 보여준 경우다. 독자는 백지 상태에서도 충분히 그려지지 않은 무언가를 상상해낼 수 있다. 그 감정을 자극해 내는 작가의 솜씨에 감탄을...
한혜연의 '완전변태'는 충격 그 자체였다. 스릴러와 공포와 에로가 다 결합되어 있다고 할까. 이름값 톡톡히 해냈다. 크리스마스 때만 되면 공포 만화를 단편으로 소개하곤 하는 그녀의 엽기적인 상상력에 갈채를.
조관제의 '흔적'은 작가의 나이만큼이나 '연륜'이 느껴지는 내용이었다. 사랑만으로 사람이 살 수 없듯이 또 최소한의 인격이라던가 양심이 없이도 사람은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기적인 주인공에게 돌을 던지고 싶다.
김병수의 '한 번도 못해 본 남자'는 정말 가련했다. 저자의 실제 경험이 들어가 있어서 더 그랬다. 미안하다. 작가의 아픔에 독자는 웃었다.
전진석은 스토리 작가로, 이나래는 그림을 담당하면서 호흡을 맞췄다. 나이 어린 작가가 이번 주제에 당황하지 않았을까 내가 다 걱정이 되었다. 그밖에 편현아 김지혜와 함께 모두 청강대학교 학생들인데, 어린 학생들이 나이 이상의 역량을 보여주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었다. 그 학교에 지원하고 싶어서 해당 지역으로 멀리 이사를 가며 전학을 갔던 옛 학생 생각이 난다.
다시금 앞 표지를 보니 '에로틱에 관한 발랄한 상상, 은밀한 유혹 열다섯편'이라는 부제가 눈에 띈다.
은밀한 유혹이라... 은밀하게 전달하지만 독자는 헤어나기 힘든 구애에 헐떡인다. 이 작품, 후유증 있다. 감당은 할 만 하다. ^^
꼬리글, 몇몇 오타는 다음 번에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