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깔깔이 부대] '苦役' 알바 방청객
[한국일보 2007-03-01 20:06]    

7시간 동안 꼼짝달싹 못하고 번 수당 1만1,000원

● 뜨거운 조명에 "목 말라요"… "물 없다 참아라" 핀잔 일쑤
● "그냥 중간에 나갈래요"… "돈 한 푼 못 준다" 협박
● "버스 놓쳐요 일당 주세요"… 줄서다 택시비로 수당 날려

KBS 1TV 의학정보 프로그램 <생로병사의 비밀>에 참여했던 보조 출연자 김모(55)씨가 지난달 15일 갑자기 숨진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밤을 새며 스트레스와 남성 호르몬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한 여러 가지 실험을 촬영한 뒤였다. 엑스트라는 쥐꼬리 만한 출연료를 위해 밤샘 촬영을 밥 먹듯 한다. 각종 연예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의 썰렁한 말에 박수치고 웃어대는 방청객 아르바이트 역시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방송사와 용역업체들은 “연예인도 직접 보고 돈도 벌 수 있다”며 10대들을 꼬드긴다.

‘깔깔이 부대’로 불리는 이들은 ‘약방에 감초’ 같은 존재지만, 시간 당 받는 돈은 2,000원 남짓이다. 그러면서도 출연 연예인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물 한 모금 구경 못한 채 몇 시간씩 뜨거운 조명 아래 앉아 있어야 한다. 신보경, 이경진 두 인턴기자가 지난달 27일 모 방송사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방청객 아르바이트로 참여했다.

두 기자가 서울 목동 방송회관 1층 로비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45분. 용역회사 직원은 30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방청객 수가 70명에 이르고 여기저기서 웅성거리자 경비원들이 “저녁 7시가 녹화 시작인데 왜 벌써와서 떠드느냐”며 밖으로 쫓아냈다. 서모(17) 양은 “내일 그룹 SS501이 나오는 다른 프로그램을 방청하려고 했더니 용역회사에서 ‘거기 가려면 오늘 와서 자리를 채워야 한다’고 했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1시간30분이 지나서야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여대생 이모(20)씨는 “자리 배치도 얼굴 따라 다르다. 화면에 잘 나오는 예쁜 언니들 먼저 앞 자리에 앉힌다”고 말했다. 뒷좌석은 다리를 뻗기 힘들 정도로 좁았고 옆 사람과 어깨가 자꾸 부딪쳤다. 저녁 7시30분에 시작한 1회분 녹화는 9시20분께야 끝났다.

순간 입구 쪽에서 소동이 일었다. 지친 방청객 몇 명이 “그냥 집에 가게 해달라”고 했다. 용역회사 직원은 “중간에 가면 돈을 한 푼도 못 준다”고 위협했지만, 10여명이 끝내 자리를 떴다. “5분 쉬고 다시 시작”이라는 말에 화장실도 못 간 방청객들은 출연자를 40분 넘게 기다렸고, 10시가 넘어서야 2회분 녹화에 들어갔다. 몇몇 방청객이 “목이 마르다”고 호소했지만, “물이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진행자가 “방청객 100명에게 ‘예’, ‘아니오’를 묻겠다”며 버튼을 누르라고 했다. 10명 넘게 빠져나가 방청객 수는 90명이 안됐고 버튼도 하나뿐이었지만, 결과는 ‘예’ 45명, ‘아니오’ 55명이었다. 각본대로 결과를 조작한 것이다.

2회분 녹화는 밤 11시40분에 끝났다. 녹화 전 받은 번호표를 주고 방청객들이 받은 돈은 1만1,000원. 자정이 넘어서 건물 밖으로 나왔지만 막차는 떠난 뒤였다. 두 인턴기자가 지불한 택시비는 2만3,000원. 7시간이 넘는 노동이 남긴 것은 만신창이 몸과 텅 빈 지갑이었다.

신보경ㆍ이경진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2년)

박상준 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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